다카이치 ‘안보 3문서 개정’ 지시… 군사 대국화 시동거나
일본 재기 실현, 안보 자립 강조
방위비 증액·핵잠수함 보유 추진
외교·안보 컨트롤 타워도 교체
평화 헌법 핵심 9조 개정 나설 듯
유신회 손잡고 ‘아베 숙원’ 노려
다카이치 사나에 신임 일본 총리가 군사력 강화를 내세우며 ‘강한 일본’ 재건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다카이치 총리는 방위비 인상을 골자로 한 3대 안보 전략문서(국가안전보장전략·국가방위전략·방위력정비계획) 개정을 지시했고, 외교·안보 정책 사령탑으로도 불리는 국가안전보장국장도 깜짝 교체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방위비 증액 압박과 중국의 해양 진출 가속화 등을 명분으로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과업이었던 ‘전쟁 가능 국가’로의 전환을 꾀하려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22일 현지 언론 등에 따르면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21일 취임 후 기자회견에서 “일미 동맹은 우리나라(일본) 외교 안보의 기축”이라며 “일본과 미국이 직면한 과제에 대해 솔직하게 의견을 교환해 정상 간 신뢰 관계를 심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일본이 방위력을 충실히 하고 있다고 이야기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다카이치 총리는 방위비 추가 증액을 염두에 두고 3대 안보 전략문서 조기 개정을 지시했다. 고이즈미 신지로 신임 방위상은 현지 취재진에 “지시서를 받았다”고 전했다.
일본 정부는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 재임 시절이던 2022년 12월 3대 안보 문서를 개정해 2027년(회계연도 기준·2027년 4월∼2028년 3월)에 방위비를 GDP 대비 2%로 늘리고, 이때까지 방위비 총 43조 엔(약 405조 원)을 확보하기로 했다. 일본 방위비는 2022년에 GDP의 1%를 조금 넘는 수준이었고, 이후 꾸준히 늘어나 2025년에는 GDP 대비 1.8%가 됐다.
다카이치 총리는 해당 3대 안보 문서를 이른 시기에 개정해 방위비 증액 폭을 늘리고 중국 등을 견제한다는 구상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설명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카이치 총리는 일본 외교·안보 정책의 조정 역할을 하는 기구인 국가안전보장국 인사도 단행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21일 첫 각의(국무회의)를 열고 오카노 마사타카 국가안보국장을 퇴임시키고 후임에 이치가와 케이이치 전 국가안보국 차장을 임명하는 인사도 결정했다.
2014년 국가안전보장국이 창설된 이래 역대 국장은 짧게는 2년 6개월에서 길게는 5년이 넘게 임무를 맡았다. 그러나 오카노 전 국장은 취임한 지 고작 9개월에 불과하다. 아사히신문은 “단기간의 이례적인 교체”라며 “다카이치 총리가 매파색 짙은 정책을 진행하려는 생각을 보여준다”고 해석했다.
이처럼 자민당이 연정 파트너로 중도 보수인 공명당을 대신해 우익 성향의 일본유신회와 손을 잡으면서 안보정책 개정과 ‘강한 일본’ 재건에 더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다카이치 내각의 안보 정책 청사진 일부는 자민당과 유신회가 지난 20일 연정 수립 과정에서 작성한 합의문에 담겨있다. 양측은 합의문에서 “국난을 돌파해 일본 재기를 도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방위력 강화와 개헌을 함께 추진한다고 밝히 바 있다.
두 정당은 구체적으로 3대 안보 문서 조기 개정, 적 기지를 공격할 수 있는 ‘반격 능력’ 관련 장비인 장사정 미사일 정비와 배치, 장사정 미사일을 탑재하고 장거리·장기간 이동과 잠항이 가능한 차세대 동력 활용 잠수함 보유를 위해 힘을 모으기로 했다.
이에 다카이치 내각이 향후 군사 대국화를 위해 평화헌법 9조 개정에도 속도를 낼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일본 헌법 제9조는 전쟁과 무력행사의 영구 포기, 육해공군 전력 보유 및 국가 교전권 부인을 규정하고 있다. 자민당과 유신회는 이번 합의문에서 오는 12월까지 이어지는 임시국회 기간에 헌법 제9조 개정을 위한 협의체를 만들기로 했다. 헌법을 개정해 일본을 ‘전쟁 가능 국가’로 탈바꿈시키는 것은 아베 전 총리 숙원이었다.
다만 실제로 개헌이 이뤄지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국회에서 헌법 개정안을 발의하려면 의원 3분의 2가 찬성해야 하는데, 중의원(하원)에서 헌법 개정에 반대하는 정당의 의석수가 3분의 1을 넘기 때문이다.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