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베개는 죄가 없다
서정아 소설가
우리가 겪는 고통의 이유
피상적인 원인으로 귀결해선 안 돼
깊은 사유로 근본적인 원인 찾아야
여느 때처럼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목 뒤쪽에 심한 통증이 느껴져 고개를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그 상태로는 하루 종일 일상생활을 제대로 못 하겠다 싶어 부랴부랴 자전거를 타고 집 근처 통증의학과로 향했다. 바닥이 고르지 못한 길을 지날 때마다 자전거의 덜컹거림이 목까지 전달되어 고통스러웠고, 차라리 걸어갈 걸 그랬다는 후회가 뒤늦게 들었으나 이미 절반 이상 와버린 상황이었다. 평소 신경 쓸 일이 없었던 우리 동네의 도로 사정이, 즉각적인 목의 통증으로 명확하게 인지되었다. 아무리 사소한 문제라도 세상 모든 일들은 ‘나’와 관련이 있을 때 입체적으로 솟구친다. 생존을 위한 본능적인 자기 중심성이랄까. 그런 인간의 한계를 고려해 보면 사회적으로 영향력이나 파급력이 큰 일을 수행하는 사람들의 경우, 다양한 상황에서 불편을 겪어보았거나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타인의 불편에 대해 자신의 일처럼 민감하고 세심하게 반응할 수 있는 감수성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큰 불편이나 어려움 없이 살아오고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도 별로 생각해 본 적 없는 사람들의 천진한 얼굴이 나는 때때로 무섭다. 분노로 가득 찬 발길질보다 해맑은 표정으로 가하는 린치가 더 굴욕적이다. 어쨌거나 맞는 사람은 둘 다 아프겠지만, 전자의 경우 가해자 스스로 폭력적 행위를 인식하고 있기에 갈등을 해결하고 분노를 해소함으로써 발길질을 멈추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은 존재한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 가해자가 자신의 주먹질을 폭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때려놓고 해맑게 웃으며 말한다. “이게 아파? 그냥 장난인데? 왜 이렇게 예민해?” 그런 종류의 천진한 폭력을 행하는 이들을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종종 보게 되고, 나는 그들이 우리 사회에서 커다란 힘을 갖게 될까 봐 언제나 두렵다.
통증에서 파생된 무거운 생각들을 시시포스의 바위처럼 굴리면서 병원 문을 열었다. 대기 시간 동안 인간 존엄에 대한 책을 읽고 있으니 그 바위를 들고 스쿼트와 데드리프트를 연달아 하는 기분이었다. 힘들고 그만두고 싶고, 한편으론 도파민이 샘솟고 내 한계를 넘어보고 싶고…. 목도 아프고 머리도 아프고 책을 들고 있던 팔도 아파올 무렵 진료실에서 내 이름을 불렀다. 내원 이유를 묻는 의사에게, 잠을 잘못 잤는지 베개가 문제인지 자고 일어나니 목이 너무 아프고 잘 움직이지를 못하겠다고 대답했다. 의사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베개는 죄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자고 일어나서 목 아프다고 베개만 자꾸 바꾸고 그러는데, 베개 바꾼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동안 쌓여온 몸의 문제들이 마침내 표면에 드러났을 뿐이며, 어떤 베개를 베고 잤든 오늘의 이 사태는 예정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평상시의 스트레스, 근육 긴장, 잘못된 자세나 생활 습관 등이 문제인데, 그것은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 아니라 오랜 시간 누적되어 왔다는 이야기였다. 치료를 받으며 나는 또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가끔 어떤 일들은 내 인생 전체에 대한 은유로서 벌어지는 사건 같기도 하고, 그 통찰은 누군가의 말 한마디 혹은 문장 하나에서 촉발되곤 한다. 설령 발화자가 그러한 통찰을 목적에 두고 한 말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지금 내가 겪는 아픔이나 괴로움의 문제, 더 크게는 내가 속한 세계의 수많은 고통과 절망이라는 문제의 원인을 ‘베개’ 같은 피상적인 데에서 찾아선 안 되는 것이었다. 단일한 하나의 원인으로 쉽게 귀결해서도 안 될 일이었다. 보다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고민해 보고 다양한 측면에서 원인을 찾아보며 잘못된 점이 있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대로 수정해 나갈 때 비로소 고통은 멎을 수 있을 것이다. 아픔이 내게 주는 깨달음을 생각해 보면, 베개는 대체로 죄가 없고 통증은 때때로 유익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