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F 2025] “진짜 영화인”… 이란 파나히 감독에 바친 이병헌의 헌사
개막식 현장 스케치
아시아영화인상 이란 거장 파나히 수상
순백 의상으로 등장한 매기 강 감독 등
역대급 게스트 초대 개막작 상영 늦어져
1회 영화제 이끈 문정수·김동호에 박수
“많이 뭇다” 농담에 “서른 잔치 이제부터”
공로상 정지영 “한국영화 많이 봐 달라”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화려하게 개막했다. 17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야외극장에 모인 5000여 명의 관객들은 큰 박수와 환호로 BIFF의 서른 살 잔치를 축하했다. 올해는 특히 화려한 게스트 라인업을 구성, 현장은 뜨거운 열기로 달아올랐다.
자파르 파나히, 매기 강, 실비아 창 등 월드 스타들이 레드카펫에 오를 때마다 객석에서는 카메라 플래시와 환호가 쏟아졌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로 글로벌 K컬처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매기 강 감독은 순백의 의상을 입고 손 하트와 볼 하트를 날리며 팬들의 사랑에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심은경은 미야케 쇼 감독의 ‘여행과 나날’ 주연으로, 동료 배우 감독과 함께 등장했다.
충무로를 수놓는 국내 스타들도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이환 감독의 ‘프로젝트 Y’ 주연 한소희와 전종서가 동시에 레드카펫에 오르는 순간 관중석이 크게 술렁이기도 했다.
1996년 제1회 영화제를 이끌었던 인사들도 레드카펫을 밟았다. 당시 조직위원장을 맡았던 문정수 전 부산시장과 초대 집행위원장 김동호 감독이 플래시 세례 속에 등장해 BIFF의 서른 살을 축하했다. 김동호 초대 집행위원장은 특별상영으로 관객과 만나는 첫 장편 연출작 ‘미스터김, 영화관에 가다’ 감독으로 소개됐다.
레드카펫 마지막은 개막작 ‘어쩔수가없다’ 팀이 장식했다. 박찬욱 감독을 비롯해 손예진, 박희순, 이성민, 염혜란 등 출연진이 입장하자 개막식장의 열기는 절정에 달했다.
야외극장에 자리하지 못한 이들은 초저녁부터 레드카펫 옆 도로를 따라 길게 늘어선 줄어서 영화인들의 등장을 기다렸다. 게스트 차량이 하나둘 도착할 때마다 현장은 함성으로 뒤덮였다. 걸그룹 블랙핑크의 리사가 탄 차량이 레드카펫 대기 줄에 섰을 땐 중국어 손팻말을 든 외국 팬들이 차창 너머로 알아보고 반가워했다. 배우 이수혁은 차량 창문을 열고 휴대폰으로 바깥 사진을 찍기도 했다.
역대급 게스트들의 연이은 등장으로, 예정보다 늦은 오후 8시가 돼서야 시작된 개막식은 배우 이병헌의 단독 사회로 진행됐다.
BIFF 박광수 이사장은 30회를 맞은 영화제에 대한 소감으로 “많이 뭇다 아이가”라는 영화 ‘친구’의 대사를 인용하며 유머를 뽐냈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개막 선언을 통해 "저희는 아직 배가 고픕니다. 서른, 잔치는 이제 시작입니다"라고 말했다.
개막식에서는 까멜리아상, 한국영화공로상,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시상식이 열렸다. 여성의 위상을 높이고 예술적 기여를 한 영화인을 장려하기 위해 지난해 제정된 까멜리아상은 대만 출신의 감독이자 배우, 프로듀서인 실비아 창이 받았다. 클라우스 올데거 샤넬코리아 대표로부터 상을 건네받은 실비아 창은 “50여 년간 영화인으로 살아오며 결혼도 하고 엄마도 됐지만 결코 영화를 포기하지 않았다”면서 “힘들었지만, 그 어려움이 오히려 힘이 됐다”고 감격스러워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자신이 프로듀서로 참여한 ‘타년타일’을 BIFF에서 상영하게 돼 정말 기쁘다는 소감도 남겼다.
한국영화공로상은 정지영 감독에게 돌아갔다. 정 감독은 "보석 같은 한국 영화를 많이 봐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제주 4·3사건을 다룬 신작 ‘내 이름은’을 제작·연출하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은 이란 거장 자파르 파나히 감독에게 안겼다. 장편 데뷔작 ‘하얀 풍선’(1995)으로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받으며 이란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명성을 이어온 그는 ‘그저 사고였을 뿐’(2025)으로 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거머쥐며 세계 3대 영화제 최고상을 석권한 첫 아시아 감독이 됐다.
박광수 이사장은 파나히 감독을 소개하면서 "이 상은 개인을 위해 주는 게 아니다. 수많은 탄압속에서도 창작의 끈을 놓치지 않는 모든 이를 대신해 받는 것"이라며 “아시아영화상 수상자로서 이분을 선정하게 된 것은 세상을 대하는 정의로운 마음, 인간에 대한 따뜻함이 정점을 이뤘기 때문이고, 정부의 어떤 탄압에서도 창작을 멈추지 않은 열정에 존경심을 담은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자 이병헌도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창작자의 열정이 관객, 동료 영화인에게 큰 울림을 줬다. 진짜 영화인이란 무엇인지 보여주는 사람"이라는 헌사를 보냈다.
파나히 감독은 “첫 영화제를 함께했고, 30주년을 함께해 뜻깊고 영광이다”며 “첫 번째 영화를 가지고 부산에 왔는데, 돌아가면서 아시아 최고의 영화를 만들어 다시 오겠다 다짐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17년간 감옥에 갇히면서 훌륭한 영화제에 올 수 없었고, 나라를 떠날 수 없었다”며 “영화를 만드는 표현의 자유를 위해 도전하고 끝까지 나아가야 한다. 싸움의 전선에 있는 모든 독립영화인에게 이 상을 바친다”고 말했다.
이어 개막작 ‘어쩔수가없다’가 상영되며 BIFF의 서른 번째 대항해가 시작됐다.
김희돈 기자 happyi@busan.com , 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 ,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 김동우 기자 friend@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