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의 시그니처 문화공간 이야기] 건축가들의 연속된 문장으로 진화 중인 휴스턴 미술관
아트컨시어지 대표
미국 텍사스주 최대 도시인 휴스턴은 미국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로 나사(NASA) 본부가 있는 항공우주 도시이자 석유 도시이다. 하지만 현재는 건축과 미술을 통해 문화도시라는 새로운 서사의 장을 열어가고 있다. 도심 내 휴스턴 뮤지엄 디스트릭트는 북미를 넘어 전 세계에서 가장 고도로 집중된 문화 지역 중 하나로 메닐 컬렉션, 마크 로스코 채플을 포함 무려 21개의 문화시설이 밀집해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있는데, 그 중심에 휴스턴 미술관(MFAH)이 있다.
휴스턴 미술관은 건축사적 실험이 축적된 거대한 건축 복합체다. 100년 전 처음 문을 연 후 거의 한 세기에 걸쳐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차례로 손길을 더해 왔고, 지금도 진화는 진행 중이다. 1924년 휴스턴 출신의 건축가 윌리엄 워드 왓킨이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세운 본관 캐롤라인 뷔스 로 빌딩은 미술관의 공공성과 품격을 보여주는 출발점이었다.
이후 현대건축의 주요 흐름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독일 건축가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에 의해 만들어진 컬리넌 홀(1958)과 브라운 파빌리온(1974)은 건축가의 미국 내 대표작이다. 1980년에 들어서 휴스턴 미술관은 또 다른 미학적 전환을 맞게 되는데, 스페인 출신의 프리츠커 수상 건축가 라파엘 모네오가 설계한 오드리 존스 벡 빌딩은 석재의 질감과 지붕 채광 장치를 통해 자연 채광을 다루는 섬세함을 미술관 건축에 도입했다. 이처럼 시대를 달리하며 서로 국적이 다른 개성있는 건축가들의 연속된 작업은 휴스턴 미술관의 중요한 건축적 장치이자 특징이다.
캐롤라인 뷔스 로 빌딩과 오드리 존스 벡 빌딩을 연결하는 통로에 설치된 제임스 터렐의 ‘The Light Inside’는 빛을 매개로 하는 설치 작업으로 단순한 이동 통로를 감각적 체험의 공간으로 승화시킨다. 최근에는 미국 건축가 스티븐 홀에 의해 글래셀 스쿨 오브 아트(2018)와 현대미술을 분리해서 전시하고 있는 낸시 앤 리치 킨더 빌딩(2020)이 증축됐다. 빛과 공간의 실험을 통해 미술관의 현대적 정체성을 확립했다. 특히 킨더 빌딩의 튜브형 파사드는 텍사스의 강렬한 기후에 대응하면서 현대미술을 위한 안정적인 전시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이밖에도 이사무 노구치가 디자인한 릴리 앤 휴 로이 컬렌 조각 정원은 미술관 건축과 조경이 하나로 맞물려 도시라는 맥락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휴스턴 미술관의 특징은 단일한 아이콘이 아니라 연속된 건축적 대화에 있다. 다국적 건축가들의 컬래버는 마치 이종교배 하듯 시대와 기술, 전시 철학을 건물에 새겨 넣었고, 그 누적이 지금의 미술관을 만들었다. 관람자는 한 건물을 보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넘나드는 건축적 회화를 느끼며 미술을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