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귀신은 누구일까?
영화평론가
'서독제' 대상 2년 만에 개봉
노영석 감독의 'THE 자연인'
공포와 코미디 장르 오가며
현대인의 공허·광기 비틀어
연출부터 촬영, 편집 등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 모든 과정을 홀로 진행하는 감독들을 가끔 볼 수 있다. 대체로 독립영화인들이 1인 제작 방식으로 영화를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 독창적인 비전과 스타일을 담아내는 새로운 방식이라고 본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제작비 충당이 어려운 독립영화 감독들의 많지 않은 선택지 중 하나처럼 보여 씁쓸하다.
2014년 ‘조난자’ 이후 무려 10년 가까운 공백기를 지나 2023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노영석 감독의 ‘THE 자연인’의 사정도 이와 다르지 않다. 게다가 대상을 받고도 극장 개봉하는 데 2년이 걸린 이 작품을 두고 감독은 “생존 신고를 해야겠다”는 절실한 마음으로 모든 과정을 직접 해냈다고 말한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감독에게 1인 제작 방식은 흠이 아니라 독특한 개성과 주제를 완성하는 힘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THE 자연인’은 귀신을 찾아다니는 유튜버 ‘인공’(변재신)과 그의 친구 ‘병진’(정용훈)이 산골짜기에 사는 자연인으로부터 자신이 살고 있는 산에 귀신이 있다는 제보를 받고 길을 떠나면서 시작된다.
두 사람은 숲속 깊은 곳까지 찾아갔기에 어느 정도의 불편함을 예상했지만, 화장실에 가는 것부터 먹는 것까지 모든 것이 상식적이지 않아 이상하다.
그런데 이 낯선 상황은 감독의 전작 ‘낮술’처럼 기상천외한 상황들이 끊임없이 터지면서 웃음을 유발한다. 물론 이 웃음은 재미있어서 나오는 폭소와는 거리가 멀다. 어이없어 웃게 되는 실소에 가깝다. 코미디물인 줄 알았더니 어떤 장르로 규정할 수 없어 난감할 정도다. 귀신을 쫓는 호러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뜬금없는 웃음과 섬뜩한 긴장감을 오가며 관객을 혼란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처녀 귀신이 입는다는 소복을 입은 여자, 낫을 휘두르며 나타나는 자연인의 이야기까지 모든 것이 미스터리하지만 그 속에서 튀어나오는 대사들은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자연인의 얼굴에 묻어 있는 검은 칠은 아무리 봐도 짜장면을 먹은 흔적인데도 절대 아니라고 우기거나, 소금잼을 먹거나 코로 휘파람을 부는 등의 상황은 능청스러우면서도 괴랄하다. 이는 노영석 감독만이 보여줄 수 있는 공포와 코미디의 절묘함이기도 하다.
이때 감독은 단순히 웃음으로 끝날 수 있는 영화를 만들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영화는 구독자 수를 늘리기 위해 귀신을 찾아간 유튜버들이 겪는 기이한 경험도 중요하지만, “진짜 귀신은 어디 있는가”를 묻는다. 귀신은 바로 ‘유튜브’(혹은 유튜버)로 상징된다. 사람들의 관심을 얻기 위해 가짜와 진짜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점점 더 자극적인 콘텐츠를 찾아 헤매는 유튜버들의 모습은 우리의 초상과 다름없다. 그로 인해 영화의 진정한 귀신은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아님을 눈치챈다.
유튜버 인공의 시선을 뒤따르던 관객은 무엇이 가짜고 진짜인지 판단하기 위해 애쓰다가 그것이야말로 의미 없음을 깨닫는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파헤치려는 욕망이야말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가짜를 진짜로 만들고 진짜가 가짜가 되는 것이 지금의 시대가 아니던가.
다시 말해 ‘THE 자연인’은 끊임없이 콘텐츠를 만들어 내야 하는 현대인의 공허와 광기를 비틀어 보여준다. 그래서 노영석의 이름으로 채워지는 엔딩 크레딧은 단순히 제작 정보를 전달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감독 스스로가 하나의 콘텐츠가 되어 모든 것을 완성했다는 선언인 동시에, 영화의 주제와 맞물려 1인 미디어의 속성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것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