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윤의 세상톡톡] 파스퇴르와 베샹, 그리고 '항생제 정치'
논설위원
프랑스의 국민적 영웅 파스퇴르
세균 멸절용 항생제 이끌었지만
더 독한 세균 창궐 결과만 초래
최근 국내 항생제식 정치판 행보
상대 멸절 시도의 업보만 악순환
더 독한 상대 탄생 토양 만들어
“프랑스에서 사람들이 무정부주의자나 공산주의자가 되거나 심지어 허무주의자가 될 수는 있다. 하지만 안티-파스퇴르주의자는 될 수가 없다.”
우유 이름을 비롯해 도처에서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파스퇴르는 그 친근함과는 달리 동시대인들로부터 이 같은 평가를 받으며 전설적 명성을 떨친 인물이다. 19세기말 프랑스에서 나폴레옹 3세의 후원을 받을 정도로 국가적 영웅이 된 그는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겐 조국이 있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바 있다. 독일 미생물학자 코흐와 국가적 명예를 걸고 경쟁하며 차곡차곡 국민적 지지를 이끌어낸 그의 인기는 우리나라로 치면 한때 국가적 영웅이었던 황우석 박사가 누렸던 인기에 버금갔다고나 할까.
현대 미생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파스퇴르의 인기와 비례해 이후 의학과 보건 분야는 그가 제기한 ‘질병의 세균설’에 기대어 발전을 거듭했다. 그가 주장한 ‘질병의 세균설’은 인간의 몸에 질병이 있다는 것은 그 질병을 일으키는 특정 세균이 몸에 들어와 작용한 탓이라는 것이 주내용이다. 그의 연구에 따라 유럽과 미국은 항생제를 써서 체내 침입 미생물을 전멸시키는 방식으로 질병 퇴치 방법을 발달시켰다. 항균성 약품을 주로 개발하는 거대 의약품 개발 회사와 항생제 사용을 위주로 하는 산업적 축산의 이론적 배경은 그에게서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항생제 투여에도 불구하고 세균은 전멸하기는커녕 더 빠른 진화를 거듭했고 최근엔 이에 따른 재앙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런 파스퇴르의 반대편에 프랑스 내에서 ‘과학의 온화한 거인’으로 불리던 베샹이라는 과학자가 있었다. 의학, 영양학, 유전학 등의 선구자로 불리는 이 과학자는 파스퇴르처럼 애국심에 기대지 않았기에 파스퇴르만큼의 명성은 누리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그의 이론은 면역학과 동양의학 등 새로운 의학의 길과 통하는 것으로 재평가되며 오히려 각광을 받고 있다. 베샹은 수많은 세균에 둘러싸인 인간은 시간당 1만 4000마리의 세균을 호흡으로 들이마실 수밖에 없으므로 질병을 일으키는 것은 특정 세균 자체가 아니라 우리 몸의 상태라고 지적했다. 그의 ‘세포환경론’은 우리 몸이 풍부한 영양을 섭취하고 스트레스 없이 운동을 통해 건강상태를 유지한다면 특정 세균이 들어와도 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세균보다 인간의 몸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베샹이 파스퇴르보다 인기를 누렸다면 현대 의학과 보건의 양태는 지금과 달랐을 터이다.
근대 세균학을 이끈 두 거장을 떠올린 것은 최근 국내 정치판이 가고 있는 길 때문이다. 동시대인이었던 베샹의 존재감을 희미하게 만들 정도로 독보적 존재감을 선보인 파스퇴르가 부르짖은 세균 절멸의 길이 그것이다. 하지만 그가 이끈 항생제 개발은 점점 더 독한 세균을 인류에게 안기는 결과를 낳았다. 그럼에도 우리 정치판의 행태는 ‘항생제 정치’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바로 그 길로 가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국민을 경악케 한 계엄령을 내린 윤석열 전 대통령은 항생제 정치의 표본이다. 그는 지금도 계몽령 운운하며 계엄 선포의 내란죄 성립 여부를 놓고 특검과 씨름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계엄령이 상대 진영을 절멸할 수 있는 무기라는 점을 인식하지 않고 선포했다면 그 가벼움만으로도 대통령으로서는 자격이 없다. 인식하고 선포했다면 범죄 혐의를 벗기는 더욱 힘들 것이다. 결국 그의 이런 선택은 더 독한 상대를 만들어냈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의 당대표 취임은 아마도 윤 전 대통령의 항생제 정치가 만든 결과일 듯하다. 그는 당대표 취임과 동시에 “악수는 사람과만 하는 것”이라며 제1야당인 국민의힘에 적개심을 내비쳤다. 이 같은 적개심은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에 동조한 혐의가 있다며 국민의힘을 위헌정당 해산 심판 대상이라 규정하는 데에서 절정에 달한다. 상대를 절멸시키겠다는 의도를 이처럼 공개적으로 내세운 당대표급 정치인이 이전에 있었던가, 과문한 탓인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쩌면 그의 이런 항생제 정치가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영향을 끼쳤는지도 모른다.
진영 간 정치적 갈등이 심화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지만 정치권이 상대를 아예 절멸시키겠다고 공공연히 나서는 모습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상대 절멸을 향한 항생제 정치는 점점 더 독한 상대를 만드는 업보만 날이 갈수록 심화할 뿐이다.
파스퇴르보다 베샹의 이론이 점점 빛을 발하는 건 절멸을 표방한 항생제가 더 독한 세균이라는 결과만 낳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항생제의 아버지 격인 파스퇴르조차 임종이 다가오자 “세균은 아무 것도 아니”라며 베샹의 세포환경론을 지지했을 정도다. 우리 정치권은 항생제 정치를 끝낼 수 있을까.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