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진의 기록으로 그림 읽기] 해운대 길거리에서 느닷없이 만난 조깅하는 사람들
부산도시철도 2호선 해운대역에서 부산기계공고 쪽으로 한 2분 걷다 보면 전광판에서 달리는 남녀를 운 좋으면 볼 수 있다. 이것은 영국 출신인 줄리안 오피의 작품인 ‘병사와 변호사’라는 공공조형물로 흔히 ‘건축물 미술장식 1% 법’으로 통칭하는 법에 따라 세워진 것이다.
1만㎡ 이상 건축물을 신축 혹은 증축할 때 건축주가 미술작품을 설치하도록 한 ‘문화예술진흥법’ 제9조에 따라 대략 건축비 1% 정도로 건물 앞에 미술 장식품을 설치한다. 이 법은 1972년 권장 사항이었으나 1995년 의무 사항으로 바뀌면서 많은 작품이 들어서게 되었다. 현재는 작품을 설치하는 대신 문화예술진흥기금으로도 출연할 수 있다. 이 제도와 규정은 미술계에서 찬반이 많이 갈리는 법이긴 하지만 긍정적인 면도 있다. 해운대역 근처를 지나다 줄리안 오피의 작품을 우연히 만나게 되면 이런 생각은 더 커질 것이다.
줄리안 오피라는 이름은 몰라도 서울역 건너편 서울스퀘어(구 대우센터빌딩) 벽에 사람이 걷는 전광판을 아느냐고 물으면 거의 안다고 답한다. 그만큼 줄리안 오피라는 이름보다 그의 작품이 더 유명하다. 밤에 서울역 대합실을 나서면 누구나 처음 대하는 장면은 줄리안 오피의 ‘걷는 사람들’이라는 작품이다. 그는 런던 출생으로 데미안 허스트를 비롯해 ‘영국젊은예술가’(yBa)를 많이 배출해 유명한 런던대학교 골드스미스를 졸업했다. 세부를 과감하게 생략해 굵은 선으로 단순하게 표현한 ‘초상화’ 시리즈와 ‘걷는 사람들’이 유명하다. 또 그의 작품은 평면만 머물지 않고 초대형 설치와 LED 전광판, 액정디스플레이, 렌티큘러 등 새로운 기술과 매체를 적극 활용한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작품 제작 기준에 대하여 “그것을 내 방에 두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가끔 던진다고 한다. 이 질문이 그의 작품을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전 세계 대중이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눈을 즐겁게 하고 삶에 여유를 가지게 하는 미술작품을 우연히 마주치는 이런 경험은 많을수록 좋다. 이런 생활문화를 더 많이 퍼트리기 위해선 우리 눈높이를 높여야 한다. 미술관에도 가고 공연장도 자주 가야 한다. 서울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은 외국에서 온 관광객의 필수 여행 코스가 되었다. 이들 국립기관의 위상도 예전과 달리 높아졌고, 우리나라 젊은이들도 열광하는 정도가 되었다. 무엇보다 좋은 작가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전시 기획력과 전시 디자인이 우수하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지난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 그것도 개관 시각 오전 10시를 막 넘겨 들어간 전시장에는 이미 여러 젊은이와 나이가 머리에 앉은 관람객들이 심심치 않게 보일 정도였다. 5~6년 전과는 사뭇 바뀐 풍경이었다.
부산현대미술관 학예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