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의 포커스온] 중국의 놀라운 '과학기술 굴기'
국가 주도 산업혁신 전략 펼쳐 성과
공대로 인재 몰리고 기술 혁신 활발
전기차·태양광 등 세계 1위 기업 배출
제조에서 창조 시대로 패러다임 전환
한국은 의대 쏠림·이공계 기피 심화
파격적 대우·교육으로 엘리트 육성을
20여 년 전 중국 저장성 항저우와 산둥성 칭다오에 취재를 간 적이 있다. 당시 항저우의 수산업 현장과 인건비 절감을 위해 칭다오에 진출한 부산 기업의 제조 현장을 둘러보았다. 그때만 해도 중국은 제조업 하청 국가 정도로 여겨졌고, 그 이미지는 상당 기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달 방영된 KBS의 ‘다큐 인사이트-인재전쟁’에 나온 중국의 변화된 모습은 꽤 충격적이었다. 특히 ‘공대에 미친 중국’ 편에는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를 창시한 량원펑의 모교로 항저우에 있는 저장대가 나왔다. 이 대학은 1999년부터 상위 1%가 들어가는 창의 혁신 인재 육성을 위한 엘리트반인 ‘주커전 반’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 출신들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창업한다. 최고의 교수진과 연구 환경을 제공하고, 정부와 선배들이 물심양면 도와주기 때문이다. 주커전 반 출신인 량원펑이 성공하며 막대한 부를 거머쥘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이 AI를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며 대대적으로 지원하고, 인재들을 모아 열정적인 연구 문화를 조성한 덕분이다. 중국의 어린 학생들이 량원펑을 모델로 삼아 프로그래머를 꿈꾸며 공대 진학을 원하는 모습은 ‘의대 열풍’에 휩싸인 한국과 대비됐다. 물론, 엔지니어가 의사보다 높은 연봉을 받는 중국의 정치·사회·경제 체제가 한국과 다르기는 하다.
중국은 국가 주도적인 과학기술 기반 산업 혁신 전략을 펼쳐 성과를 거뒀다. 대표적인 것이 2015년 수립한 ‘중국제조 2025’ 프로젝트다. 2025년까지 첨단산업을 중심으로 10대 제조업 분야를 집중 육성해 제조업 강대국이 되겠다는 계획이다. 미국은 트럼프 1기(2017~2021년) 이후 중국의 기술 굴기를 좌초시키기 위해 각종 제재를 강화해 왔다. 하지만 중국 제조업은 막대한 정부 지원을 발판으로 기술 자립을 단계적으로 이뤄냈고, 미국의 기술 패권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특히 전기차(BYD), 전기차용 배터리(CATL), 태양광(론지솔라), 5G 통신(화웨이), 드론(DJI), 고속철도(CRRC) 등의 분야에선 세계 1위 기업이 탄생했다. 국가의 과감한 규제 혁신, 치열한 기업 간 경쟁, 첨단산업 성장을 주도할 혁신 인재 양성 등이 종합적으로 작동한 성과로 보여진다.
특히 중국의 10대 부자 대부분이 공대 출신으로, 혁신 기술 창업을 통해 자수성가했다. ‘공학 천재’를 동경하는 분위기 속에 공대로 인재가 몰리고, 기술 혁신의 붐이 이는 이유다. 중국 정부는 적극적인 재정 지원으로 창업 생태계를 활성화해 실패에 따른 리스크를 줄여준다. 또 과학기술 분야 최고 학자를 ‘원사’로 지정해 한 해 많게는 1조 원 규모의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맡기는 ‘원사제도’와 해외 고급 인재 유치를 위해 기본 연봉의 최대 5배와 연구비의 최대 100배 조건을 내걸고 2008년부터 추진한 ‘1000인 프로젝트’ 등은 과학기술 혁신의 기반이 됐다.
중국의 놀라운 과학기술 굴기는 글로벌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한국에 큰 위협이 된다. 메모리반도체·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디스플레이·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 등 일부를 제외하면 기술적으로 중국이 한국을 넘어선 지 오래라고 한다. 특히 AI·로봇 분야는 격차가 상당하다. “한국이 하는 건 중국이 다한다. 중국이 하는 것 가운데 한국이 못 하는 게 많다”는 과학계 인사의 지적이 뼈아프다. ‘메이드 인 차이나’(중국 제조)가 아닌 ‘인벤티드 인 차이나’(중국 창조)의 시대로 패러다임이 전환됐다.
중국이 과학기술 굴기를 통해 인재를 육성하는 사이 우리나라에선 인재의 의대 쏠림과 이공계 기피는 더욱 심화하고 있다. 열악한 연구 환경, 낮은 보상, 양질의 일자리 부족으로 공학자와 과학자의 길을 선택했을 때 의사 이상의 경제적·사회적 대우를 받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이공계 인재 발굴·육성·처우에 관한 국가 차원의 파격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매년 최상위권 이공계 인재를 대거 선발해 파격적 대우와 교육으로 과학기술을 선도할 엘리트를 집중 육성해야 한다. 두려움 없이 창업에 도전할 수 있는 혁신 창업 생태계 정착, 공격적 투자와 대학의 체질 개선을 통한 인재 해외 유출 방지, 이공계를 존중하는 분위기 조성, 대대적인 연구·개발 예산 확충 등이 뒤따라야 한다.
정부는 6월 ‘국가과학기술 경쟁력 강화를 위한 이공계 지원 특별법’ 시행에 들어갔다. 대학원생, 박사후연구원, 고경력 과학기술인 등 과학기술 인재 전주기 지원에 나선 점은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정부가 장기적인 이공계 발전 전략을 갖고 인재 육성, 창업 인구 증가, 유니콘 기업 성장, 첨단산업 생태계 조성, 국가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김상훈 논설위원 neato@busan.com
김상훈 논설위원 neat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