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비평] 미디어 '정치'가 아니라 '정책'을 바란다
임영호 부산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명예교수
정권이 바뀐 지 두 달이 넘었다. 미디어 업계에도 이미 정권 교체의 여파가 감지되고 있다. 민주당의 정청래 신임 대표는 앞으로 추진할 3대 개혁 과제의 하나로 언론개혁을 지목했다. 실제로 공영방송의 지배구조와 관련된 ‘방송 3법’이 일사천리로 통과됐다. 현재 분위기는 2017년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된 후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하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우선, 미디어 정책 중에서 정치성이 강한 공영방송 지배구조 문제에 대처하는 방식이 유사해 보인다. 새 방송 3법의 지향점은 방송사 이사 추천제에서 ‘정치적 후견주의’라는 문제점 해소에 있는 듯하다. 현재 KBS 이사회는 이사 추천권이 여야에 7 대 4로 배분되어 있는데, 정치권의 나눠먹기식 운영 탓에 공영방송 이사회가 정파의 목소리만 대변해 여야 간의 정쟁을 재탕하는 문제가 생겨났다.
공영방송 정파성 심화 정쟁·파행 되풀이
정당에 영미식 이사 후보 거부권 검토를
전통 매체 '공공 규제'하면서 위축 뚜렷해
플랫폼·글로벌 미디어 규모 역전 시정을
정당 추천 이사는 정치적 사안 표결에서도 거수기 역할에 그치고, 방송사 사장 역시 임명자인 대통령에게만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경향이 있다. 윤석열 정권 시절 김건희 여사의 명품 수수 의혹에 ‘자그마한 파우치’라는 발언으로 빈축을 산 KBS 박장범 사장이 전형적인 예다.
정권에 따라서는 여당의 독주라는 문제점도 심각하게 드러났다. 현 방송 제도는 행정기관에 기능을 집중시키는 ‘독임제’가 아니라 다양한 세력 간의 타협을 중시하는 ‘합의제’ 정신에 입각해 있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에서는 임기가 끝난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을 공석으로 둔 채, 대통령이 지명한 두 명으로 중요 결정을 강행하는 식의 파행이 빈번했다. 위원회가 사실상 독임제로 전락하는 제도적 허점이 드러난 것이다. 현재 방통위는 나머지 한 명이 사임하면서 실제로도 이진숙 위원장 1인 체제가 됐다. 민주당은 방송 3법의 이런 허점을 보강하기 위해, 이사 추천권을 정당 독점에서 시청자위원회, 종사자, 학회, 법조계 등으로 분산하고, 공영방송과 보도전문채널의 사장 선임방식을 바꾸며, 방송 종사자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담았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이러한 제도 개편이 방송의 정치적 후견주의와 과잉 정치화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비율을 어떻게 바꾸든 정파별 지분 추천 제도가 존재하는 한 지금처럼 충성심만 강하고 발언과 행동이 ‘튀는’ 강성 인사로 채워지는 일은 막기 어렵다. 이 점에서 추천제의 결점을 보완하는 방안으로 영미권 사법 제도의 배심원 선출 방식은 참고할 만하다. 배심원 구성에서 원고와 피고 양측은 배심원 후보자 중에서 몇 차례의 거부권만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최선이 아니라 최악을 피하는 방향으로 선택을 내린다. 만약 각 단체와 정당의 복수 추천을 받아 전문성과 중립성이라는 엄격한 요건을 통과한 인물로 후보자군을 구성한 후, 이 각 정파에게 몇 번의 거부권을 행사할 기회를 주면 어떨까? 아마 적어도 위원들의 정파성은 줄어들고 정당과 위원과의 연계는 상당히 느슨해질 것이다.
또한 문재인 정권의 미디어 정책에서 유독 소홀히 다루어진 부분이 있는데, 바로 미디어 정책 전반을 다루는 기구 구성 문제였다. 이전에는 방송·통신 관련 정책 권한이 방송통신위원회에 집중되어 있었는데, 박근혜 정권은 이를 방통위와 미래창조과학부로 분리했다. 이 때문에 규제와 지원, 육성 등 상반된 방향의 정책이 동시에 시행되는 혼선이 빚어졌다. 문재인 정권은 부서 이름만 바꾼 채 이전 정권의 정책 기구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이 같은 구조로는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대처하기 어렵다. 현재의 상황을 보면 전통적 미디어보다는 CJ, 네이버, 카카오 등의 플랫폼 사업자나 넷플릭스, 유튜브 등 글로벌 미디어 자본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커졌다. 미디어 정책이 혼선을 거듭하면서 주요 현안이 방치되는 사이 이 두 산업의 위상은 역전됐다. 미디어 정책이 방송 매체의 공공성 유지에만 주력하면서 나머지 큰 변화에는 거의 손을 쓰지 못하는 사이에, 전통 매체는 대자본과 글로벌 자본의 작은 부속품 신세로 쭈그러들었다.
전국언론노조의 김동원 정책협력실장은 2022년 문재인 정권 5년 간의 미디어 정책 혼선에 대해 “위축되는 공공성의 영역에는 규제를, 성장하는 미디어 자본의 영역에는 지원과 방임을 처방”했다고 꼬집었다. 방송 정책에서 정치적 색채를 배제하고 공공성을 지키려는 노력은 중요하지만, 이를 둘러싼 정치적 갈등의 시급성과 가시성에 매몰되어 미디어 산업의 큰 흐름과 현안을 놓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는 미디어 ‘정치’가 아니라 좀더 장기적 안목에서 정책 난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