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창의 클래식 내비게이터] 살롱음악의 마지막 그림자, 세실 샤미나드
음악평론가
“여자가 작곡하는 건 마치 개가 뒷다리로 걷는 것과 같다더군….” 세실 샤미나드는 여성 작곡가의 처지를 이렇게 비교하며 한숨지었다. 음악사에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주목받지 못한 작곡가들이 많다. 중세 시대의 작곡가 힐데가르트 폰 빙엔, 바로크 시대 프란체스카 카치니, 바바라 스트로치, 그리고 모차르트의 누이인 난넬과 멘델스존의 누이 파니가 대표적인 경우였다. 근대에 들어서도 여성이 직업음악가가 되는 길은 여전히 험난했다. 1857년 8월 8일, 파리에서 태어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 활동한 세실 샤미나드(Cecile Chaminade, 1857~1944)에게도 힘든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그가 8세 때 작곡한 악보를 본 조르주 비제는 세실을 “나의 작은 모차르트”라고 칭찬하면서 파리음악원에 입학시키라고 부모에게 말했다. 그러나 보수적인 아버지는 여성이 음악을 하는 것을 반대했고, 그 때문에 음악원에 들어가지 못한 세실은 비제와 고다르에게 개인적으로 음악을 배웠다. 18세 되던 해에 첫 콘서트를 열었고, 유럽을 돌며 자신의 길을 개척했다.
여성 작곡가를 턱없이 무시하던 환경에서 그가 선택한 분야는 아기자기한 피아노 음악이었다. 당시엔 피아노가 대중화되면서 아마추어 연주자가 집에서 즐길 수 있는 소품들 일명 ‘살롱음악’이 유행했는데, 세실의 음악은 이 분야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도 그의 음악을 좋아해서 직접 윈저궁에 초대해 연주를 들었다. 1913년에는 교황이 수여한 성 요한 훈장을 받았고, 이어 여성 작곡가로서는 최초로 레종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영국과 미국에선 각지에 ‘샤미나드 클럽’이 생길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그의 카네기홀 공연은 금세 매진되었고, 루즈벨트 대통령이 별도로 백악관에 초청해서 연주를 들었을 정도였다.
대중은 그를 좋아했지만, 비평가나 음악계에선 반응이 신통찮았다. 특히 1차 세계대전 이후 음악계가 실험적인 음악과 대중음악으로 양분되면서 그의 인기는 시들해지고 살롱음악은 과거의 유물로 잊혀갔다.
그는 약 350개의 작품을 남겼는데, 특히 피아노 소품이나 바이올린, 플루트를 동반한 소품이 매력적이다. 피아노를 위한 곡으로는 ‘스카프 댄스’, 6개의 연주회용 연습곡에 나오는 ‘가을’, 6개의 멜로디 중 ‘아랍풍의 자장가’ 등이 사랑스럽다. 플루트 입시 과제곡으로 유명한 ‘플루트를 위한 콘체르티노’는 그가 1902년에 파리음악원 입시곡으로 출품한 작품이다. 세실 샤미나드의 대표곡 중 하나이며, 여름밤에 옷과 자세를 다 풀어놓고 멍하니 듣기 좋은 음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