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K조선, 트럼프 마음 사로잡은 이유는?

김상훈 논설위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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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조선업 다시 위대하게’ 마스가
한미 관세 협상 타결 핵심적 역할
미, 중과 패권 경쟁 조선 재건 사활
조선소 건설·인력 양성 등 제안 주효
국내 업계, 미국 시장 진출 기대감 커

최근 타결된 한미 관세 협상에서 가장 주목받은 키워드는 ‘마스가(MASGA·Make America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산업 투자를 넘어 쇠퇴한 미국 조선업을 한국 기술력으로 되살리겠다는 전략적 제안이었다. 마스가 프로젝트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표적 정치 구호인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에 ‘조선업’을 의미하는 ‘Shipbuilding’을 더해 붙인 이름으로,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이다. 마스가 프로젝트는 1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펀드로 미국 현지 신규 조선소 건설뿐 아니라 기존 조선소 인수, 선박 건조, 공급망 재구축, 유지·보수·운영(MRO), 인력 양성 등을 하는 것이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1일 기자회견에서 “오늘 합의에 이르도록 가장 큰 기여를 한 부분은 마스가 프로젝트”라며 “트럼프 대통령도 한국 조선업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왜 K조선의 매력에 빠진 것일까.


한미 통상협의차 미국 워싱턴DC를 방문 중인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7월 29일(현지 시간)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및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과 함께 미국 상무부에서 하워드 러트닉 상무 장관과 통상 협의를 하고 있다. 부산일보DB 한미 통상협의차 미국 워싱턴DC를 방문 중인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7월 29일(현지 시간)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및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과 함께 미국 상무부에서 하워드 러트닉 상무 장관과 통상 협의를 하고 있다. 부산일보DB

■ 트럼프와 한국 조선업의 인연

트럼프와 한국 조선업의 인연은 2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계적인 부동산 투자가였던 트럼프는 1998년 6월 4일 나흘 체류 일정으로 방한해 대우그룹 계열사였던 대우중공업(현 한화오션)의 거제 옥포조선소를 방문했다. 당시 트럼프는 개인 요트로 사용하기 위해 구축함 1척을 발주하겠다는 의향을 내비쳐 화제를 모았다. 방한 당시 옥포조선소에서 건조 중인 구축함을 둘러보면서 즉석에서 발주 의사를 피력한 것이다. 본체를 인수한 후 미국에서 내·외장 인테리어 작업을 거쳐 요트로 개조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계약까지 성사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트럼프는 지난해 11월 재선에 성공한 뒤 당선인 신분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첫 통화에서 “미국의 조선업에 한국의 도움과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트럼프는 “한국의 세계적인 군함과 선박 건조 능력을 잘 알고 있으며, 우리 선박 수출뿐만 아니라 보수·수리·정비 분야에서도 긴밀하게 한국과 협력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27년 전 거제도의 한국 조선소를 직접 방문해 선박 발주까지 검토했을 정도니 한국 조선업에 대한 관심이 예전부터 있었던 셈이다.


7월 24일(현지 시간) 워싱턴DC 미국 상무부 청사 앞에서 한국 협상단이 한미 관세 협상 타결에 결정적 돌파구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 '마스가'(MASGA) 프로젝트 설명 패널을 호텔 식탁보로 감싼 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7월 24일(현지 시간) 워싱턴DC 미국 상무부 청사 앞에서 한국 협상단이 한미 관세 협상 타결에 결정적 돌파구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 '마스가'(MASGA) 프로젝트 설명 패널을 호텔 식탁보로 감싼 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실이 지난 3일 공개한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모자. '마스가'는 이번 한미관세협상 때 조선 분야 협력 내용을 압축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산업통상자원부가 만든 슬로건으로 한국협상단은 이 모자와 대형 패널 등을 준비했다. 연합뉴스 대통령실이 지난 3일 공개한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모자. '마스가'는 이번 한미관세협상 때 조선 분야 협력 내용을 압축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산업통상자원부가 만든 슬로건으로 한국협상단은 이 모자와 대형 패널 등을 준비했다. 연합뉴스

■ 마스가, 관세 협상의 게임체인저

이러한 맥락을 간파했던 우리 정부는 K조선을 지렛대로 삼아 미국과 막판 관세 협상을 벌이면서 마스가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정부는 관세 협상 당시 ‘마스가’ 프로젝트를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 ‘마스가’를 인쇄한 모자를 만들어 갔다. 마스가 협력안을 담은 가로, 세로 1m 패널을 이용해 프로젝트 내용을 압축적으로 담는 치밀함을 발휘했다. ‘마스가’ 모자 시안은 6월에 이미 챗 GPT를 이용해 디자인해뒀다고 한다. 골프를 좋아하는 트럼프의 취향을 반영해 빨간색 모자를 최종 발탁했다. 그 뒤 동대문의 섬유 업체들을 수소문해 직접 찾아가 비밀리에 제작했다. 마스가 모자는 관세 협상이 급진전함에 따라 워싱턴 직항 항공기를 통해 김정관 산업부 장관 등 협상단에 전달됐다. 협상단은 이 모자와 마스가 프로젝트 개요를 담은 패널을 가져가 트럼프 대통령,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 등 미 고위급에 양국 산업 협력의 필요성을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3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마스가 모자’ 실물을 공개하며 “조선이 없었으면 협상이 평행선을 달렸을 것”이라며 “마스가 프로젝트 제안이 이번 협상의 열쇠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조선 투자 아이디어가 협상의 게임체인저가 된 것이다.


7월 16일(현지 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한화 필리조선소에서 한화필리십야드 골리앗크레인이 블록을 인양하고 있다. 연합뉴스 7월 16일(현지 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한화 필리조선소에서 한화필리십야드 골리앗크레인이 블록을 인양하고 있다. 연합뉴스

■ 미국은 왜 조선업 재건에 매달리나

조선업 재건은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제조업 부흥 계획의 핵심 퍼즐 조각이자, 중국의 해양 패권 장악 시도를 견제하는 주요 수단이다. 미국은 한때 세계 최강의 조선 강국이었지만, 이제는 산업 기반 자체가 붕괴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간·해군 조선소를 막론하고 시설 노후화, 인력 유출, 투자 부족 등으로 선박 건조 역량이 급감했다. 미 해군은 기존 함정을 유지·보수하는 것도 벅찬 상태다.

미국 조선업 쇠락을 야기한 원인의 하나로 꼽히는 게 20세기 초 제정된 ‘보호무역주의’ 법률이다. 1920년 제정된 ‘존스법’은 미국 내 연안 해상 운송은 미국에서 건조된 선박과 승무원에 대해서만 허용하고 있다. 1960년대 제정된 ‘번스-톨레프슨 수정법’은 국방·군사 관련 선박은 반드시 미국 내에서 건조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두 법률 모두 외국 기업의 미국 내 조선시장 진입을 사실상 가로막아 왔는데,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시행된 법률이 오히려 산업 경쟁력을 저하하는 부메랑으로 작용한 것이다. 여기에다 1980년대 이후 보조금 축소와 과도한 산업보호정책 등으로 경쟁력을 상실하며 현재 세계시장 점유율이 1% 미만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전 세계에서 발주된 1910척 중 미국 조선소가 수주한 물량은 2척에 불과하다. 특히 간신히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핵항공모함, 이지스함 등 첨단 군함과 달리 상선 부문의 건조능력이 사실상 상실됐다. 이 때문에 상선 건조 능력 부활은 미국에서도 주요 과제다.

미국이 조선 약소국으로 전락한 사이 글로벌 물류의 90%가 움직이는 바닷길을 중국이 잠식하고 있다. 세계 129곳 항만과 글로벌 물류 데이터도 장악하고 있다. 중국의 세계 조선 시장 점유율은 50%를 넘겼고, 보유 군함 수는 미국을 앞질렀다. 미 의회조사국(CRS)은 4월 “중국 해군은 이미 370척 이상을 보유한 세계 최대 해군으로 2030년까지 435척의 함정을 보유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 해군은 지난해 기준 296척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에 비해 조선업 인프라가 절대적인 열세에 처한 미국의 위기감이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


한미 무역협상이 타결된 7월 31일 오후 경남 거제시 아주동 한화오션 거제 사업장에 건조 중인 선박이 보인다. 우리 정부가 미국 정부에 제안한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 '마스가(MASGA, 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가 협상 타결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업계에도 훈풍이 불 것으로 기대한다. 연합뉴스 한미 무역협상이 타결된 7월 31일 오후 경남 거제시 아주동 한화오션 거제 사업장에 건조 중인 선박이 보인다. 우리 정부가 미국 정부에 제안한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 '마스가(MASGA, 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가 협상 타결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업계에도 훈풍이 불 것으로 기대한다. 연합뉴스

■ 조선업계 미국 진출 기회 삼아야

이번 마스가 프로젝트는 한국 조선업계의 미국 시장 진출 물꼬를 터줄 계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가 특히 주목하는 부분은 미국 해군 함정 건조 및 MRO 시장 진출 가능성이다. 미국은 2054년까지 연간 300억 달러(약 42조 원)를 투입해 기존 296척의 보유 함정 수를 381척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마스가 프로젝트를 통해 이 가운데 일부 물량을 한국 조선업체가 수주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현재 한국 조선소는 미국이 안보를 이유로 외국 조선소에서 미 해군 함정 건조를 금지한 ‘번스-톨레프슨 수정법’ 때문에 비전투함 MRO만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예외’를 인정하면 전투함 MRO나 공동 건조도 가능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또 상선 건조 기술이 일본보다 우수하고, 이지스함 등 전투함 구축 능력과 크레인 제작 기술을 모두 갖춘 한국 기업들이 미국 조선업 부활 시장에 올라탈 기회가 될 수 있다. 미국의 조선업 재건 의지는 정권이 바뀌어도 계속 될 수 있어 한국엔 장기적 먹거리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또 미국 조선업 부흥은 한국 조선업에 장기적 성장 기회 제공, 글로벌 시장 진출 교두보 확보, 기술 확산 및 국방·안보 협력 확대에 긍정적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반면 조선은 단기간에 성과를 내는 분야가 아니어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초기부터 과도한 투자에 나서기보다는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내주는 식의 ‘살라미식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국 조선업의 공급망이 끊겨 있고, 숙련 인력도 고갈돼 정상 궤도에 올리기까지 예상보다 시간과 비용이 더 들어갈 수도 있다. 또 미국에 산업 생태계 자체를 이전하는 수준의 기술∙인력 유출을 주의해야 한다는 지적도 업계 안팎에서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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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훈 논설위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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