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진의 기록으로 그림 읽기] 변혁을 외치는 세상이지만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은 있다
해운대 모래밭에 깔린 어마어마한 파라솔을 비추며 피서철이 왔음을 알리는 뉴스는 이제는 예전 일이 될 듯하다. 촘촘히 솟은 건물로 감싸인 백사장을 오가는 파도만 있는 풍경은 예전만 못하다. 바닷바람의 시원함도, 풍경이 주는 낭만도 없는 해운대가 될지 조금 걱정스럽다.
도상봉이 부산에 있는 딸 집에 잠깐 머물며 1966년에 그린 ‘해운대 풍경’은 지금과는 전혀 다르다. 작가가 모래밭 한가운데서 달맞이고개 방향으로 화구를 놓고 그린 이 그림은 멀리 모래밭 뒤로 늘어선 얕은 집들과 달맞이고개 아래를 바다와 함께 굽이 도는 기찻길 따라 늘어선 집들이 보인다. 그 위 와우산에는 그 시절에 있었던 골프장을 그린 듯 황토색 길이 나 있다. 모래밭에는 파라솔 몇 개가 흩어져 있고, 오가는 사람, 파라솔 그늘에 있는 사람,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 언뜻 보기에 담담하게 해운대 풍경을 캔버스에 옮겨낸 그림이다.
그러나 이렇게는 눈으로만 보는 것이고 마음으로 읽지 못하는 것이다. 도상봉은 1902년 함경남도에서 태어났고, 1917년 보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해 근대기에 일본에 유학해 첫 번째로 서양화를 배운 고희동에게 그림을 배웠다. 이후 메이지대학 법대로 진학했으나 부모 뜻을 어기고 몰래 1923년 동경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한다. 근대기 1세대 화가인 도상봉은 주관적인 창작 의지보다는 일관되게 고전적인 자연주의 시각으로 보편적이고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과 그림에 엄격한 자세를 유지하며, 자연과 대상을 관찰하고 분석하여 철저하게 이해한 그림을 남기려 했다. 정밀한 화면구도와 풍경이 가진 시각적 구현을 위해 화면 구석구석 작은 붓질로 그리는 자신만의 원칙에 충실했다. 연도와 이름을 똑같은 필체로 항상 정확하게 쓴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원칙주의자인지 알 수 있다.
그렇다고 그가 온갖 일에 고집만으로 원칙을 지킨 사람은 아니었다. 대학생 시절 고향에서 처음 본 나상윤에게 첫눈에 반해 연애를 시작했지만 양 집안이 반대하자 둘이 대담하게 일본으로 가버리는 사랑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 보통학교 때에는 3·1 만세운동으로 투옥당한 뒤로는 총독부가 주최하는 선전에는 한 번도 출품하지 않았다. 하지만 국전에는 세상을 떠나기 이태 전까지 매년 출품해, 누구에게도 강요하지 않고, 자신만의 국가관을 실천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아름다움(美)을 추구하고 도덕을 지키는 삶은 인간 사회를 유지하는 중요한 기초였다. 그래서 공자도 칸트도 도덕과 미를 함께 이야기했다. 변화가 중요한 시대이긴 하지만 지켜야 할 원칙을 간과해 우리 사회를 유지하지 못한다면 어떤 것도 의미 없다. 부산현대미술관 학예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