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세 도시철도' 문전박대 넋두리[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봉양 독박에도 문 닫아 건 분들께
이 말씀은 꼭 드리고 싶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로 딱 마흔이 된 부산도시철도입니다.
서울 도시철도에 이어 1985년 7월 19일 전국에서 두 번째로 태어나 지금까지 부산시민들의 발이 돼 온 녀석이지요. 그렇습니다. 이 편지가 배달되는 오늘이 바로 제 생일입니다. 범어사역에서 출발한 제가 범내골역까지 처음 달리던 때가 아직 생생한데 벌써 마흔 중년이 됐네요.
태어날 때부터 국내 최초로 중형 전동차를 도입했다는 얘기들로 떠들썩했는데 마흔이 되고 보니 조금 왜소해 보여 체급을 서울만큼 키워서 태어날 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체급이 작다 보니 터널이나 역 같은 시설까지 함께 작아서 유사시에 국철 형님들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단점이 있어 아쉬움이 많이 남거든요.
그래도 마흔이 되는 동안 시민들의 응원 속에 4호선까지 근육도 좀 키우고 하루에만 85만 명이 넘는 분들을 실어나를 정도로 명실상부한 부산 대중교통의 등뼈가 됐다는 자부심은 큽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는 하루 승객이 100만 명에도 육박할 정도였지요. 아마도 내년이면 그동안 실어날랐던 분들이 100억 명에 이를 거 같아요. 부산시민 모두가 1인 당 3000번씩 저를 이용한 셈이 되니 저 스스로도 뿌듯하기 그지없어요. 한 연구에 따르면 통행·교통시간 감소에 따른 사회적 비용 절감, 건강증진 등 저로 인한 사회적 효과가 한해 평균 6800억 원에 달한다네요. 이용 승객 당 한해 90만 원 정도의 이익을 보는 셈이라더군요.
이 정도면 마흔 인생이 헛살진 않았다고 봐도 되겠지요? 그럼에도 제가 한 번은 이런 넋두리를 꼭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습니다. 시민 여러분께는 그냥 알고 계시라고 드리는 말씀이고요, 정책을 쥐고 흔드는 분들께 드리고 싶은 얘기들이에요.
제가 태어나기 한 해 전에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65세 이상 노인들을 대상으로 도시철도를 무료로 탈 수 있도록 하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서슬이 퍼런 시기였기에 대통령의 말은 법이나 마찬가지였고 이듬해 태어난 저에게도 그 지시는 그대로 적용이 됐지요. 노인들에 대한 복지가 그다지 두텁지 못한 이 나라에서 그나마 저런 복지라도 노인들에게 제공하는 것은 환영해야 마땅한 일이라 봅니다. 하지만 이걸 그냥 도시철도 네가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만 내팽개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싶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저의 업계부(집이 아니니 가계부라 할 수는 없고 공기업이라고들 부르니 업계부라 부르는 게 맞지 않겠나 싶네요)에는 해가 갈수록 빨간색 숫자가 늘어만 갑니다. 그 중 60% 정도가 노인 무임승차 봉양으로 발생하고 있으니 허리가 휠 지경이지요. 6년 전만해도 노인 무임승차 봉양으로 인한 적자가 한해 1000억 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었으나 지난해엔 1700억 원을 넘어섰습니다. 그렇게 쌓인 적자만 1조 원이 넘을 정도랍니다. 업계부 적자 폭이 너무 빨리 커지는 바람에 낡은 전동차 교체 등 안 그래도 마흔에 접어들면서 여기저기 들어가야 할 비용들조차 감당하기가 힘들어졌네요.
도무지 혼자 감당하기가 어려워 옆집 코레일 형님네를 기웃거려 보니 그 형님네는 무임 수송에 따른 손실액의 60%를 정부로부터 국고보조금 형식으로 받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저도 정부에 전체 무임 수송액의 절반 정도인 890억 정도라도 좀 주십사 했는데 매몰차게 문전박대를 당했네요. 저는 지자체 소속이라 국고보조금 지급 대상이 아니라면서요….
40년 동안 허리가 휘도록 노인 봉양을 해 왔는데도 그런 논리로 냉정하게 얘기하시니 저도 논리적으로 좀 얘기해 볼게요.
서슬 퍼런 시절 내려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도입된 노인 무임승차를 놓고 제가 어디 소속인지 여부를 따질 필요가 있나요. 노인 무임승차는 당연히 도입 주체가 정부이고 코레일 형님이 적자 보전을 받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지자체가 발의해 추진하지도 않은 시책을 수십년 동안 등이 휘도록 감당해 온 저를 지자체 소속이라는 이유만으로 내팽개친다면 누가 정부를 믿고 기꺼이 일을 하려 할까요.
다음으로 노인 복지는 새로 출범한 이재명 정부가 추구하는 복지정책의 이념과도 궤를 같이하는 ‘기본’복지에 해당하기 때문에 당연히 정부에서 일정 부분을 떠맡아야 한다고 봐요. 다른 복지와는 달리 노인에 대한 복지는 누구나 나이가 들 수 있으므로 차별을 얘기할 수 없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기본복지의 이념에 가장 잘 들어맞기 때문이지요. 특히 부산은 전국 대도시 중에 가장 빨리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으니 선제적으로 이 같은 복지 정책 도입이 필요한 곳 아닌가요.
노인 무임승차에 대한 직접적인 적자 보전이 타지역과의 형평성 문제로 힘들다고 끝내 외면하시려 한다면 다른 방법도 있어요. 부산에만 해당하는 논리적 근거를 적용하는 겁니다. 예를 들면 세계 최고 원전 밀집지 인근 지역에 대한 반값 전기료를 제게 선제적으로 적용해 주는 거죠. 그것만 하더라도 한 해 전기료 760억 원의 상당 부분을 아낄 수 있으니 노인 무임승차 적자분을 감당하기가 수월해질 테죠.
전 이제 막 마흔이 됐을 뿐입니다. 100세가 넘은 외국 도시철도 아저씨들에 비하면 아직 젊디 젊은 교통수단이지요. 앞으로도 부산시민과 함께 더 나은 가치를 만들기 위해 힘차게 뛸 각오가 돼 있어요. 다만, 등이 휠 것 같은 봉양 독박만큼은 정부가 어떻게든 지혜롭게 덜어주시길 바랄게요. 쉰에는 훨씬 건전해진 업계부를 들고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부산시민의 영원한 발 부산도시철도 올림.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