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재난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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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네오 소라 감독의 '해피엔드'
흔들려고 해도 하나였던 청춘
각자의 길 앞 그들에 응원을…

영화 '해피엔드'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영화 '해피엔드'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가까운 미래, 일본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유타’와 ‘코우’는 인생의 절반을 함께 보낸 친구다. 교내 음악 연구 동아리를 만들 정도로 음악을 좋아하는 두 사람은 늘 붙어 다니며 소소한 사고나 장난을 치며 무료한 일상을 보낸다. 그런데 무슨 일을 해도 함께라면 두렵지 않던 둘의 관계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아직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유타와 달리 코우는 일본 사회의 부조리한 시스템을 알게 되면서 두 사람의 생각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모든 교과과정을 이수하고 이제 졸업식만 남은 교실의 풍경은 나른하다. 대학 발표를 기다리거나, 취업을 생각하는 등 아이들은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고민하거나 결정을 끝낸 상황이다. 그 무엇도 확실하지 않은 미래, 아이들은 불확실 속에서 위태롭지만 한편으로는 자유로워 보인다. 이런 아이들의 모습은 영화 ‘해피엔드’의 오프닝 시퀀스에서도 잘 포착된다. 소동을 일으키고 도망가는 아이들의 모습, 그 옆으로 빨간 점멸등이 꺼질 듯 말 듯 깜박인다. 언제 꺼질지 몰라 불안하기 짝이 없는 불빛이지만 어쩐지 지켜보고 싶은 빛이다.

영화는 유타와 코우, 그들이 속해 있는 음악 동아리 친구인 야타, 밍, 톰과의 우정을 통해 진행되고 있기에 학원청춘물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단순히 우정이나 관계의 변화로 설명할 수 없다. 이는 오프닝 이후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테크노 음악을 듣기 위해 클럽을 찾은 아이들은 교복을 입고서 당당히 출입을 요구한다. 미성년자는 출입할 수 없다고 해도 포기하지 않는 아이들은 관계자 전용 구역으로 몰래 들어가 음악을 듣는다. 하지만 유타와 코우가 음악을 듣는 시간은 짧다. 불법 단속을 나온 경찰에게 붙잡히고 말기 때문이다.

경찰은 일본인인 유타에게는 집으로 귀가하라며 훈방 처리하지만, 재일조선인인 코우에게는 체류 허가서를 요구한다. 아버지의 아버지가 일본에 살았음에도 여전히 일본의 국민이 될 수 없는 코우는 매 순간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유령 같은 존재인 것이다. 이는 비단 코우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만 출신이지만 중국어를 못하는 밍과 졸업 후 미국인 아버지가 있는 미국으로 가려는 톰도 차별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네오 소라 감독의 ‘해피엔드’는 아이들의 시선에서 차별과 혐오, 폭력의 세계로 외연을 확장한다. 특히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다. 유타와 코우가 교장의 슈퍼카를 망가뜨리는 장난을 치자, 분노한 교장은 학생들의 안전을 명목으로 AI 감시 시스템을 도입한다. AI는 교내 곳곳을 훑으며 교칙을 위반한 학생들에게 벌점을 부여한다. 처음엔 AI를 재미있는 놀이쯤으로 생각하던 아이들은 대학 입시에 영향을 미치는 벌점을 받지 않기 위해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검열하기에 이른다. 코우도 국가 장학금 수령을 박탈당할까 봐 불안하다.

기술 발전이 삶의 편리함을 가져왔을지 모르지만, 인간의 삶을 과연 행복하게 하는지 묻게 하는 장면에 이르면 이 영화가 그리는 세계가 우정이 아니라 재난으로 점철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일상에서 갑작스레 일어나는 지진, AI 감시하에 통제와 검열이라는 재난, 차별과 혐오를 키우는 사회적 재난까지 연이어 터진다. 이 재난 앞에서 인간은 저항하거나 투항하거나 몸을 숨긴다. 아이들도 AI 감시 시스템이라는 재난을 마주하며 투쟁하거나 침묵한다.

영화는 터질 듯 터지지 않는 재난 앞에서 그 어떤 해결책도 대안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이 재난이 아이들의 세계 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알린다. 졸업식을 마친 아이들은 자신들이 선택한 길을 향해 걸어간다. 드디어 육교 앞에 선 유타와 코우는 헤어짐이 아쉬워 머뭇거리고, 지키지 못할 말을 늘어놓지만 돌아보지는 않는다. 꺼질 듯 꺼지지 않는 점멸등처럼 약한 빛을 내며 멀어지는 두 사람을 보며, 그들의 해피엔딩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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