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부산비엔날레 더부살이 이제 그만!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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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날레 전용관 없는 현실 안타까워
관람객 편의성·흥행성 기반으로 해
향후 10년 내다보고 착실히 준비해야
옛 창고 건물 재활용 방안 등도 고려를


여전히 더부살이는 계속되고 있다. 부산비엔날레 얘기다. 지난 8월 16일 개막식과 함께 시작된 2024 부산비엔날레가 오는 10월 20일까지 부산현대미술관을 비롯해 부산근현대역사관, 한성1918, 초량재 등 지역 4곳의 전시장에서 열리고 있다. 2002년부터 부산비엔날레라는 명칭을 사용한 이후,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는 단 한 번도 비엔날레 전용관을 보유한 적이 없다. 2002년부터 2016년까지는 부산시립미술관을 중심으로, 2018년부터 현재까지는 부산현대미술관 등에서 더부살이 전시를 하는 실정이다. 부산현대미술관을 지을 당시에는 비엔날레 전용관으로 활용될 예정이었으나 이는 실현되지 않았다. 부산현대미술관은 비엔날레 메인 전시관 역할을 하고 있지만, 전용관은 아니다. 이렇게 보면 부산비엔날레의 역사는 더부살이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부산비엔날레조직위 사무실도 부산시청에서 동래구 사직동(아시아드주경기장 내), 그리고 동구 초량동으로 이전을 거듭하며 더부살이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부산시가 퐁피두센터 분관 부산 유치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지역 문화에 대한 중요성과 가치를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나가거나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단순히 새로운 것만 추구하거나 외국의 문화나 명성에만 기대는 것은 올바른 문화 행정이라고 할 수 없다. 이제 부산시는 부산비엔날레의 더부살이를 더 이상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지금의 좌표를 살피고 나아갈 길을 점검해야 한다.


■ 비엔날레 전용관 왜 필요한가

부산비엔날레는 이제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 미술 행사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이 행사는 국내 미술을 해외에 소개하고 지역 문화 발전을 선도해 왔다. 특히 국제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다양한 미술적 시도를 통해 지역의 문화적 위상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광주비엔날레와 함께 국내 양대 비엔날레로 자리매김했다. 2022년에는 영국 현대미술 전문지 프리즈(Frieze)로부터 세계 10대 전시 중 하나로 소개되기도 했다.

부산비엔날레는 그동안 부산시립미술관, 부산현대미술관, 부산문화회관, F1963, 부산항 제1부두 등 지역의 다양한 공간을 활용해 왔다. 이에 따라 시민들은 다양한 장소에서 세계 미술을 접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관람객 입장에선 장소의 신선함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보다는 부정적인 요소가 더 많다. 예술가들은 매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불편함이 발생한다. 비엔날레의 일관된 정체성과 지속 가능한 운영이 어려울 수 있다. 미술계 일각에서는 전용 공간이 없는 상태에서 비엔날레가 운영되다 보니 자칫 전문성이 축적되지 않고 휘발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관람객 입장에서도 매번 다른 장소에서 전시를 관람해야 해 일관된 예술적 경험을 얻기 어렵고, 교통 편의성 문제도 존재한다. 특히 비엔날레 주 전시장인 부산현대미술관은 접근성이 떨어지고 다른 전시 공간과의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꾸준히 있었다.

비엔날레는 흥행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한데 교통 불편과 흥행은 대척점이다. 관람객의 편의성, 흥행성을 기반으로 한 전용관이 꼭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024 부산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는 부산 사하구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시민들이 설치된 작품들을 감상하고 있다. 이재찬 기자 chan@ 2024 부산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는 부산 사하구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시민들이 설치된 작품들을 감상하고 있다. 이재찬 기자 chan@

■ 전용관의 파급 효과는

미술계에서는 비엔날레 전용관이 지역 문화와의 연계를 강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보고 있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반영한 예술 작품을 통해 주민과의 소통을 증진하고, 지역 문화 자산을 예술적으로 재해석할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전용관은 또 지역 사회에 깊이 뿌리내리는 데 중요한 역할도 할 수 있다. 이를 테면 전용관을 통해 비엔날레 기간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작가 레지던시(창작 스튜디오), 작가 교류, 시민 소통 또는 교육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전용관이 필요한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비엔날레 기간에 현대미술관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산비엔날레의 일부 전시가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열리면서, 미술관은 비엔날레 준비 기간을 포함해 짧게는 3~4개월, 길게는 5~6개월 비엔날레 측에 임대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전문가들은 전용 공간 확보가 비엔날레 행사 운영의 안정성을 높이고, 예술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전용관은 부산비엔날레의 정체성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비엔날레의 질적 향상을 가져올 수 있어서다. 전용관이 마련되면 상시적인 작업 공간이 확보돼 비엔날레 행사 때보다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일 수도 있다. 여하튼 전용관의 건립은 비엔날레의 안정적 운영 기반 조성, 세계적 수준의 부산비엔날레 이미지 구축, 전시행사 이외 다양한 비엔날레 행사 개최 등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부산비엔날레는 단순히 문화관광 상품으로서의 경쟁력을 넘어, 이제는 문화예술 생태계의 발원지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요구를 받고 있다. 행사 기간만 반짝하는 비엔날레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2024 부산비엔날레 주 전시장인 부산현대미술관. 부산비엔날레 제공 2024 부산비엔날레 주 전시장인 부산현대미술관. 부산비엔날레 제공

■ 국내외 전용관 활용 사례

성공적인 비엔날레들은 어떻게 전용 공간을 활용하고 있을까. 12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비엔날레는 1895년부터 지아르디니와 아르세날레 두 전시 공간에서 전시를 이어오며 국제적인 명성을 쌓았다. 아르세날레는 역사적인 조선소를 개조한 공간이며, 지아르디니에는 각국의 국가관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고정된 전시 공간 덕분에 지

속적인 인프라 투자와 효율적인 운영도 가능했다.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도 1951년 이후 이비라푸에라 공원 내 시시리오 마타라조 파빌리온에서 꾸준히 전시를 이어오며 예술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1932년 시작된 미국의 휘트니 비엔날레 역시 고정된 공간에서 비엔날레를 개최함으로써 그 위상을 꾸준히 높여왔다. 이들 비엔날레는 세계 3대 비엔날레로 꼽히며, 전용 공간이 안정적인 운영과 미술적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부산비엔날레와 함께 인지도를 자랑하는 광주비엔날레도 1995년 첫 시작부터 전용관을 갖고 출범했다. 최근 건물의 노후화로 인해 습도와 온도에 민감한 작품을 수용하지 못하게 되자, 광주비엔날레 측은 2027년 완공 예정인 새 전용관을 현재의 비엔날레 전시관 주차장 위치에 건설 중이다. 광주는 전용관에서 주요 작품을 소개하고, 인근 광주시립미술관과 대인시장, 광주극장, 무각사 등 광주의 특징적인 장소에도 전시를 배치했다.

2024 부산비엔날레가 열리는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시민들이 설치된 작품들을 감상하고 있다. 이재찬 기자 2024 부산비엔날레가 열리는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시민들이 설치된 작품들을 감상하고 있다. 이재찬 기자

■ 다시 전용관 진지하게 고민할 때

부산비엔날레는 이제 전용관을 확보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당장 전용관을 새로 짓자는 것이 아니라, 향후 10년을 내다보고 착실히 준비하자는 것이다.

전용관을 새로 짓는 대신, 2022 부산비엔날레에서 사용된 북항 1부두 창고와 같은 지역의 옛 창고 건물을 재활용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다. 부산에는 교통 편의성도 뛰어나고 비엔날레의 상징적 공간으로 기능할 수 있는 적합한 장소가 제법 있다.

부산비엔날레는 이제 전용관을 통해 새로운 도약을 준비해야 한다. 이를 통해 더 많은 예술가의 참여를 유도하고, 부산비엔날레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 나가야 한다. 전용관을 통한 지속 가능한 미래 구축은 부산을 넘어 국내는 물론, 국제 미술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부산비엔날레를 베네치아 비엔날레나 휘트니 비엔날레처럼 세계적인 행사로 성장시키려는 꿈이 있다면, 부산시는 비엔날레의 더부살이를 더 이상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문화 도시를 꿈꾸면서 부산비엔날레에 전용관 하나 없는 현실은 치명적이다. 앞으로 30년, 100년을 내다보는 문화 정책, 문화 행정을 기대한다. 아울러 부산시의 문화 행정이 퐁피두센터 분관과 같은 외형적 화려함만 좇지 않기를 바란다.


정달식 부산일보 논설위원 부산일보DB 정달식 부산일보 논설위원 부산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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