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화의 크로노토프] 국가(國歌)와 애국가(愛國歌)
피아니스트·음악 칼럼니스트
작사·작곡가 친일 의혹에다 표절 시비
가사도 논쟁거리… ‘정통성’ 오랜 논란
국격에 맞는 새로운 국가 생각해 볼 때
지난 12일 2024 파리 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이런저런 비난과 찬사도 있었지만 지구촌 전체의 축제였던 것만큼은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이번 올림픽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탁구 혼합복식 종목에 참가한 남한과 북한 선수들이 나란히 시상대에 오른 것이었다. 중국 선수들까지 함께한 이 장면은 ‘빅토리 셀피’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 알려졌다. AFP통신은 이것을 올림픽 10대 뉴스 중 하나로 꼽았다.
근대 올림픽은 스포츠를 통해 세계인의 평화와 화합을 이루고자 했던 프랑스인 쿠베르탱에 의해 1896년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나라가 처음 독립국의 자격으로 참가한 것은 올림픽이 생긴 지 50여 년 만인 1948년 런던 올림픽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전범 국가였던 독일과 일본은 참가할 수 없었고,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은 아예 참가를 거부했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14개국은 처음으로 참가했다. 모두 59개국이 참가한 당시 올림픽에서 우리는 복싱과 역도에서 각각 동메달을 하나씩 따왔다. 그리고 이번 올림픽에서는 13개의 금메달을 포함하여 모두 32개의 메달을 가져왔다.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가 누리는 최고의 순간은 금메달 시상식 단상 한가운데 서서 자신의 국가를 듣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우리 선수가 금메달을 따고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순간은 늘 감동이다. 우리 선수들이 따라 부르는 애국가를 들으면서 나라의 노래인 국가가 무엇인가를 다시금 생각해 보았다.
모든 나라에는 그 나라를 대표하는 공식적인 노래가 있고 그것을 우리는 국가라 부른다. 나라의 예식에 사용되는 국가 속에는 각 민족의 역사와 전통을 상징하는 부분도 있고, 자국을 사랑하고 찬양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우리는 공식 국가는 없지만 애국가를 국가로 같이 사용한다. 대한제국 당시 총 250권의 방대한 분량으로 우리 문화를 집대성한 〈증보문헌비고〉에서도 국가를 애국가라 불렀다. 그 속에 ‘대한 애국가’ ‘일본 애국가’ ‘영국 애국가’ ‘미국 애국가’ ‘법국(프랑스) 애국가’ ‘덕국(독일) 애국가’ 등의 표현이 있는 걸 보면 우리는 국가를 애국가와 같이 생각했던 것 같다.
우리 역사의 부침만큼이나 애국가는 정통성에 대한 시비가 많았고 지금도 여전하다. 먼저, 작곡자 안익태가 친일 의혹에다 나치 독일의 제국음악원 회원이었다는 점도 문제였고, 음악 자체에 대한 문제도 있었다. 작곡가 나운영 선생은 애국가는 7·5조의 율격을 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기미가요’나 ‘만주가’ 등과 유사하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애국가를 일본어로 바꾸면 7·5조가 된다.
음악적 표절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1964년 제3회 서울국제음악제 때 내한한 불가리아계 미국 음악가 피터 니콜로프는 “대한민국의 ‘애국가’는 불가리아의 음악인 ‘오! 도브루자의 땅이여’를 표절했다”고 주장해 큰 논란을 불렀다. 이 곡은 알렉산더 크라스테프의 곡으로 1·2차 세계대전 당시 불가리아 군인들이 즐겨 불렀던 군가였다. 실제로 음악을 듣거나 악보를 비교해 보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작사자로 알려진 윤치호가 일본제국 의회의 귀족원 의원이었다는 논란도 있었지만, 가사 자체에 대한 시비는 더 오래된 논쟁거리였다. ‘동해’와 ‘무궁화’란 단어에 대해 문제점을 주장하는 연구는 오래된 것이었다. 필자는 ‘삼천리’라는 표기에 주목한다. 국가의 가사에 강역의 넓이를 구체적으로 넣은 것도 어색하지만,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의 기록과도 다르기 때문이다. 조선과 대한제국의 강역은 ‘삼천리’가 아니라 ‘사천리’였다. 선조 26년(1593) 병부에 ‘조선은 국토 넓이가 동서 이천리, 남북 사천리’라고 정확히 쓰여 있다. 고종 임금 때도 ‘동서 이천리, 남북 사천리’라는 기록이 여러 번 나온다. 명나라 지리서 〈대명일통지〉나 청나라 기록인 〈흠정속문헌통고〉 등에도 조선의 강역은 ‘사천리’라고 명확하게 적혀 있다.
우리 국력도 세계에서 손꼽는 수준이 되었다. 이제는 대한민국을 제대로 상징하는 국가를 다시 고민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프랑스나 중국은 시대 변화에 따라 국가를 8번이나 바꿨다. 오래 사용했다는 이유로 그것을 영원히 유지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조상의 얼이라는 알맹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국가가 나올 시기가 되었다. 식민의 시대가 남긴 찌꺼기는 모두 버리고 새로운 미래를 이야기하는 논의의 장이 열리면 좋겠다. 이를 통해 미래를 준비하고 흩어진 국론을 다시 모으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국가라는 음악은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통해 모든 국민을 통합하는 힘 있는 매개체가 되기 때문이다. 정약용 선생은 음악을 ‘나라의 정신적 기틀’이라 했다. 국가(國歌)는 국가(國家)가 행하는 최고의 의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