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경 칼럼] 서울 ‘둥지’가 아니라 지역 ‘먹이’가 문제다
논설위원
서울 신고가 속출 수도권 집값 상승세
침체 늪에 빠진 지역은 딴 세상 이야기
부동산 양극화 앞으로 더 심화할 전망
국토부 그린벨트까지 풀어 공급 확대
투기 심화·균형발전 저해 결과 불 보듯
불균형 해결 없인 ‘부동산병’ 못 고친다
서울 집값이 들썩인다고 한다. 최근 서울의 주간 아파트값 상승률이 19주 연속 오름세를 이어 가고 전세가도 63주 연속 상승하고 있다는 것이다. 거래량이 눈에 띄게 늘었고 강남을 중심으로 신고가를 기록하는 단지도 생겼다. 서울 부동산 가격 상승의 불씨는 경기도 과천 성남 하남 용인 광명으로 빠르게 옮겨붙어 수도권 집값 상승을 견인하는 모양새다. 경기도 동탄2신도시 한 아파트단지의 미계약 물량 1가구에 대한 무순위 공급에 294만 4780명이 몰렸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이런 수도권 집값 상승을 바라보는 비수도권 주민의 심사가 편할 리 없다. ‘로또 청약’ 같은 건 애초 딴 세상 이야기다. 전국에서 수도권을 제외하면 비수도권은 지역을 막론하고 부동산 경기가 최악으로 가뜩이나 침체 늪에 빠진 지역 경제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부산의 아파트 매매가는 2022년 6월부터 떨어지기 시작해 2년 2개월 동안 줄곧 하락세다. 미분양 물량이 쌓여 장기 침체 우려가 높은 상황으로 분양시장도 꽁꽁 얼어붙었다. 이대로라면 수도권과 비수도권 부동산 양극화는 더 심화할 전망이다. 수도권에 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벼락 거지’ 소리를 듣게 생겼다.
한국 사회 모순이 집약된 곳이 부동산이다. 한국인에게 집은 생활공간 이상의 의미다. 부동산이 곧 계급이고 복지인 게 우리 사회다. 사회적 불평등도 토지, 부동산 문제에서 비롯되는 측면이 많다. ‘땀이 아니라 땅으로 잘 사는 사회’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자조 섞인 농담이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다. 그래서 부동산 정책은 때때로 정권의 명운을 가르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지금은 한국 사회의 모순이 가장 극명하게 투영돼 나타나는 부동산 문제가 바로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양극화 확대다.
수도권 집값이 들썩이자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또 수도권 공급 위주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다. 이른바 ‘8·8 부동산 공급 대책’이다. 서울을 포함해 수도권 그린벨트를 해제해 8만 호를 공급한다. 재개발·재건축 활성화를 위해 초과 이익 환수를 폐지하는 촉진법도 제정한다. 이를 통해 향후 6년간 수도권에 모두 42만 7000호 이상의 주택을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국민 주거 안정을 위한 주택 공급 확대 방안’이라며 국민을 내세웠지만 지역민 입장에서 보면 정부 재원과 국가 자원을 쏟아부어 가뜩이나 활황인 수도권 부동산을 부양한다는 이야기로밖에 안 들린다.
수도권 주택 공급 확대가 국민 주거 안정은커녕 수도권 집중과 부동산 투기만 심화시켰다는 것은 이미 검증된 결과다. 수도권 집값이 뛰고, 신도시가 발표되고, 인구가 유입되고, 또 집값이 뛰고, 또 신도시가 발표되고, 또 인구가 유입되고, 수도권은 공급이 더 큰 수요를 부르는 악순환을 반복하는 공간이 됐다. 이명박 정부가 2012년 그린벨트를 헐어 만든 보금자리주택도 일시적 집값 안정이라는 착시는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집값은 못 잡고 개발이익 사유화와 국토균형발전 저해라는 부작용만 낳았다는 게 서울연구원의 연구 결과였다.
수도권 부동산 문제는 공급이 아니라 수요 측면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가뜩이나 좁은 국토인데 그 좁은 땅덩어리의 11.8%에 불과한 수도권에 인구 절반 이상이 몰려 사는 이 기형적 상황을 바로잡지 않고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경제적 효율성을 따지더라도 우리의 수도권 같은 기형적 집중은 벌써 붕괴해야 했을 시스템이다. 그 기형적 시스템의 버팀목이 정부다. 수조 원의 예산을 투입해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를 연결하고 그린벨트까지 풀어 택지를 공급하면서 한계에 이른 수도권 투자 효율을 지탱해 주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제 이 시스템도 한계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망국적 초저출생이 이를 잘 보여 준다. 젊은이들이 ‘먹이’를 찾아 수도권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생존 경쟁에 내몰리다 보니 생긴 현상이 초저출생이다. 젊은이가 고향을 떠나는 이유는 수도권이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서가 아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한 공간이 우리나라엔 오직 서울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수도권은 ‘최선’이 아니라 ‘차악’의 선택지라는 이야기다. 일자리만 있으면 부산에서 살고 싶다는 젊은이들이 많다.
결국 핵심은 서울의 ‘둥지’가 아니라 지역의 ‘먹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인데 지역에는 재원이나 정책 수단이 없고 정부에는 의지가 없다. 정말 문제의 본질을 이해한다면 수도권 부동산 공급 확대라는 땜질이 아니라 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 같은 근본적 해결에 나서야 하는데 산업은행 부산 이전 하나 해결 안 되는 게 우리 현실이다. 정치에서도 이제 비수도권은 ‘마이너’다. ‘수도권부동산공화국’의 자연적 붕괴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걸까.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