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가루에 도전장 낸 생선살 가루 매력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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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진어묵은 왜 CES에 참가했을까
빵처럼 가루로 어묵 만들 수 없을까
동결건조 100% 완벽 재생 기술 개발
폭발적 성장 대체 단백질 시장 도전장

매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세계 최대 규모의 전자제품 박람회 CES(Consumer Electronics Show)가 열린다. 올해 초에 열린 ‘CES 2025’에 삼진어묵이 참가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삼진어묵은 ‘블루미트 파우더’를 해외시장에 최초로 공개했고, 외국인들이 시식용으로 내놓은 어묵 피자를 맛보고는 “어메이징(놀라워)”과 “딜리셔스(맛있어)”를 연달아 외쳤다는 내용이었다. 대체 블루미트 파우더가 무엇이고 어떤 의미가 있길래, 어묵 업체가 CES까지 나갔는지 내내 궁금했다. 마침, 삼진어묵이 코스닥 상장에 도전한다는 새로운 소식도 들려왔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어묵 업체를 3대째 이어가는 박용준 대표를 만나 어묵으로 꾸는 새로운 꿈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했다.


삼진어묵이 올해 초에 열린 ‘CES 2025’에 삼진어묵에 참가해 ‘블루미트 파우더’를 선보이고 있다. 삼진어묵 제공 삼진어묵이 올해 초에 열린 ‘CES 2025’에 삼진어묵에 참가해 ‘블루미트 파우더’를 선보이고 있다. 삼진어묵 제공

-‘블루 미트 파우더’는 무엇인가. 어묵 업체가 왜 이런 걸 만드나.

“생선 살을 밀가루처럼 곱게 간 ‘바다 고기 가루’다. 여기다 물을 부어 반죽을 만든 뒤 튀기면 어묵이 된다. 어묵빵이나 어묵 피자, 면, 수제비도 만들 수 있다. 밀가루처럼 보관하기 편하고,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다. 어묵 베이커리를 해보니 빵은 밀가루로 쉽게 만드는데 우리는 왜 냉동 연육으로 어렵게 반죽을 해야 하는지 의문이 생겼다. 그래서 밀가루를 열심히 파 보았다. 밀가루가 보편화되면서 관련 산업이 발전했더라. 저렴한 원료가 대량 생산되면 산업의 형태가 바뀐다는 깨달음이 왔다. 우리도 빵처럼 가루로 어묵을 만들고 싶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그런 시장을 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주고 싶다.”

-생선 살인 어육을 어떻게 가루로 만든다는 말인가.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방법을 알면 어렵지 않다. 동결건조와 열풍건조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어육 온도를 급격히 낮추는 동결건조를 통해 나온 가루를 어묵으로 100% 완벽하게 만드는 기술을 개발했다. 다만 아직은 냉동 방식의 동결건조가 전기를 많이 사용하기에 품질은 좋아도 비싸다는 단점이 있다. 열풍건조는 뜨거운 바람으로 수분을 태워서 날리는 방식이다. 수분이 빨리 날아가고 저렴하게 만들 수 있지만 영양소가 파괴되는 단점이 있다. 열풍건조는 과자를 만들 때의 밀가루 형태로 보면 된다. 블루미트 파우더는 동결건조 방식을 사용한다. 어묵으로 원형이 완벽하게 복원되는 가루는 어떤 시장을 대체할 수 있을까 상상하면서 라스베이거스로 날아갔다.”

-CES는 전자제품 박람회가 아닌가. 어묵 업체가 참가했다는 게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

“CES는 단순한 전자제품 박람회가 아니다. CES 2025의 주요 키워드 중 하나가 ‘Food Sustainability(식량 지속가능성)’였다. 농업 기술, 대체 단백질, 푸드 테크(음식 기술)가 크게 주목받았다. 대체 단백질 시장은 2022년 기준 148억 달러(약 19조 원)였다. 2030년까지 연평균 성장률 14%를 기록하며 400억 달러(약 52조 원) 규모 이상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체 단백질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삼진어묵은 부산 어묵의 푸드 테크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참가했다.”


삼진어묵은 CES에서 블루미트 파우더를 밀가루 포대처럼 쌓아 관심을 끌었다. 삼진어묵 제공 삼진어묵은 CES에서 블루미트 파우더를 밀가루 포대처럼 쌓아 관심을 끌었다. 삼진어묵 제공

- CES에서 가장 이질적인 존재였을 것 같다. 현지 반응은 어땠는가.

“우리가 있던 존 쓰리(3)에는 컴퓨터 관련 업체만 있었고 식품업체로서는 유일했다. 블루미트 파우더를 우리 부스에 밀가루 포대처럼 쌓아 두었다. 생선 살을 밀가루처럼 곱게 갈아 포대에 담았다는 사실 자체가 현지에서 큰 관심을 불러왔다. ‘블루미트 파우더’를 믹서에 물과 함께 넣어서 나온 반죽으로 도우를 빚어 어묵 피자를 만들었다. 외국인 바이어들은 생선을 먹는 혁신적인 방식이라며 놀라워했다. 당장 이걸 가져가서 빵처럼 만들고 싶다는 반응이었다. 심지어 NASA에서도 우주 식량으로 쓰고 싶다고 관심을 보였다. 대량생산이 이전의 실험 단계라고 답변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밀가루 같은 시장이 되는데 10년은 걸리겠지만 맛보기는 보여준 셈이다.”

-블루미트 파우더는 자체적으로 개발한 것인가.

“새로운 걸 상상하고 기획하는 R&D 연구소 ‘어메이징 스튜디오’를 몇 년 전부터 운영하고 있다. 여기서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고 테스트도 한다. 내부적으로는 당장 돈이 안 되는 일을 한다고 욕도 많이 먹는 편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어묵 업체 가운데 누군가는 총대를 메야 한다. 투자 포트폴리오가 다양한 대기업은 어묵만을 힘들게 연구하지는 않는다. 우리처럼 많은 사랑을 받은 선도 업체가 어묵 업체들을 위해 희생한다는 정신으로 투자해야 된다.”

-‘어메이징 스튜디오’에서 만든 신제품에는 또 어떤 것이 있는가.

“지난달에 새로운 베이커리 간식인 어묵빵 13종을 출시해 지금 팝업스토어를 진행하고 있다. 시그니처 메뉴인 어묵고로케도 빵으로 만들어 속에다 어묵을 넣었다. 사실 내부에서도 어묵빵을 만들어 얼마나 팔리겠느냐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성심당 빵만 하더라도 부재료로 소시지가 많이 들어간다. 그 소시지를 어묵으로 대체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빵에 어묵이 제대로 쓰이기만 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고 생각한다. 물론 새로운 세상 이야기만 할 게 아니라, 그 시장이 얼마큼 되는지 분석하고 얘기해야 한다는 분도 있어서 맨날 혼나고 있다. 그래도 어메이징 스튜디오에는 길이 좀 험난하고 눈보라가 쳐도 우린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니,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목표치까지 올라가 보자고 이야기한다.”

-삼진어묵을 운영하는 삼진식품이 지난달에 상장 예비심사를 청구해 9월 초에 공모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상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묵 베이커리 시장은 10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 했다. 도전하지 않으면 어묵 산업은 또다시 사양산업이 될 수밖에 없는데, 그건 싫다. 상장해서 체력이 되면 수산물로 산업의 가능성을 만들고 싶다. 양식해서 횟감으로 제공하는 게 아니라 밀가루 대신에 생선을 가루로 만들어서 대체 단백질로 쓰는 것이다. 제분 회사로 출발한 CJ처럼 삼진어묵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블루미트 파우더에 대한 특허 신청은 했나.

“특허 출원 중이지만 특허는 명목상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2014년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는 ‘우리의 모든 특허는 당신의 것’이라는 글을 통해, 테슬라가 보유한 모든 특허를 누구나 선의로 사용할 경우 특허 소송을 제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테슬라가 전기차 시장을 주도하고 있지만 전기차 시장은 아직도 성장하고 있고, 지금도 완전히 전기차 시장으로 바뀌지 않았다. 그때 테슬라 혼자만 했으면 전기차 시장이 지금처럼 커지지 않았을 것인데 어묵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문화는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우리만 만든다고 해서 시장이 생기는 게 아니다. 많은 업체가 경쟁하면서 파이를 키우는 게 맞다. 우리가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면 어묵 산업은 좋아질 수밖에 없다.”

-생각보다 꿈이 큰 것 같다. 박용준 대표의 꿈은 뭔가.

“블루미트 파우더는 밀가루와 비교해 어분이라는 차이뿐이다. 밀가루를 대체하려면 생산 가격이 더 낮아져야 한다. 횟감이 아니라 어묵 가공을 위해서 생선을 양식하면 수산물 가격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수산물은 어묵처럼 가공하는 방식이 가장 섹시하다고 생각한다. 자연에서 나오는 것과 양식 수산물의 비율을 잘 맞추는 방식으로 원료를 구해 대량으로 가공하고 더 다양한 맛으로 구현하는 6차 산업을 생각하면 너무나 매력적이고 가능성이 있다. 블루미트 파우더는 오늘날 라면처럼 세계의 주요한 식량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이 사업에 미쳐서 계속 투자하고 있다. 이 산업이 파이가 커지면 삼진어묵의 기업 가치가 달라지고, 어묵 업체들은 너도나도 다 좋은 상황이 된다. 지금 사랑받는 기업이 해야 할 역할인 것 같다.


삼진어묵 박용준 대표가 CES에서 블루미트 파우더를 알리고 있다. 삼진어묵 제공 삼진어묵 박용준 대표가 CES에서 블루미트 파우더를 알리고 있다. 삼진어묵 제공

삼진어묵의 CES 2025 참가는 어묵 업체가 전자제품 박람회에 등장했다는 흥미로운 사건 그 이상이었다. 전통 산업이 첨단 기술을 접목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직접 보여 줬다. 가장 오래된 기업 삼진어묵의 야심찬 도전이 성공해 다른 어묵 업체를 비롯한 지역 경제에도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켜보게 된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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