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마이크' 저널리즘을 외치다] ① MBC뉴스가 왜 이리 짧아?
"MB 나팔수 더는 못참겠다" 기자·PD들 공정방송 외침
"MBC 뉴스가 왜 이리 짧아?" 지난 주말 모처럼 느긋하게 아홉시 뉴스를 시청하던 L씨. 서울에서 방송되는 중앙 뉴스의 분량이 평소의 절반인 15분에 블과해 깜짝 놀랐다. 기자들이 눈·비를 맞아가며 현장에서 전하는 소식도 거의 없었다. 싱겁게 끝난 뉴스의 말미엔 '노조의 불법 파업으로 뉴스 진행에 차질을 드려 죄송합니다'란 사과 문구가 보였다. 그래도 요즘 최고 인기라는 수목드라마 '해품달'의 최고 시청률은 40%나 된다고 했다. 도대체 MBC에 무슨 일이 있나.
■지금 MBC에서는
MBC 사원들이 집단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 정신과 의사 정혜신 박사와 함께 한 고백과 치유의 시간 '화(火)를 품은 달'. 지난 16일 MBC시사교양국이 만든 파업 프로그램이었다.
PD수첩의 김동희 PD는 남북경협을 취재하던 중 부장의 취재 중단 지시를 받고 울화가 터졌다고 했다. 김민욱 기자는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119전화 관등성명' 건과 관련된 뉴스에 비판 목소리를 넣었지만 데스크에 묵살당했다. 김 기자는 "우리는 경기도청 기자가 아니다"며 항의했지만 뜻을 관철하지 못했다.
"자신들이 너무 보잘 것 없이 느껴졌다"는 기자와 PD들의 고백에 정혜신 박사는 "공권력, 조직의 폭력 등 막강한 힘 앞에 개인은 무기력해지고 내 탓을 하게 될 수 있다"며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고 위로했다.
정혜신 박사는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치유 프로젝트 '와락'을 진행하고 있다.
기자들 발로 뛴 기사
윗선 입맛대로 짜맞춰 보도
'FTA날치기' 등 아예 누락
사측, 공정성 훼손 밥먹듯
논설위원·부장급도 동참
"정권 꼭두각시 이제 그만"
■현장에서 쫓겨나다
"하루하루 지시를 받아 기사를 '찍어내는' 것보다 두려운 일은, 기자들이 어떤 식으로 취재를 해 오든 결과물은 윗선의 의도대로 짜맞춰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사에서 'MBC뉴스 아무갭니다'라는 문장을 빼버리고 싶은 적도 많았습니다." MBC기자의 말이다.
지난 1월 25일, MBC 기자들이 제작 거부에 돌입했다. 정권 편향적 불공정 보도를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이유였다. MBC뉴스의 시청률은 지상파 꼴찌로 전락했다. 사내 홈페이지에는 취재 현장에서 쫓겨나고 있다는 기자들의 글이 줄을 이었다. "더이상 참을 수 없다"는 기자회 기수별 성명이 사내에서 이어졌다.
MBC 기자회는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에 대한 불신임 투표를 진행해 86%라는 압도적 표차로 가결시켰다. 그러자 회사는 기자 회장 등을 인사위원회에 회부했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위원장 정영하)는 보도본부장 등의 쇄신인사를 요구하며 공정방송협의회를 세 차례나 열었으나 회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단체협약에 따르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사장은 공정방송협의회의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 결국 1월 30일 노조는 총파업에 돌입했다.
■도대체 어떤 일이
MBC의 공정성 훼손 사례는 20여 건에 달한다. 국토부 장관 인사청문회 등 검증 보도를 전혀 하지 않았다. 노골적인 보도 통제의 하나는 KBS 국회 도청 의혹 사건 당시, 김재철 사장이 "신경을 쓰라"고 지시했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 중계권을 따내야 한다는 명분이었다. 국민의 알 권리가 회사의 이익에 가려진 것이다.
시청자들에게 그대로 보여주고 판단하게 만든 게 아니라 회사가 기사를 아예 빼버린 것이다. FTA날치기 통과 시위를 하자 경찰이 영하의 날씨 속에 물대포를 쏘는 사건이 있었지만 이마저도 묵살됐다.
MBC의 대표 시사교양프로그램 'PD수첩'은 최승호 책임 피디를 비롯한 6명의 제작진을 타지로 발령내며 초토화 시켰다.
이용마 노조 홍보국장은 "국장직선제, 국장임명동의제 등의 요구를 회사는 거부했다"며 "이번 파업은 정권의 꼭두각시 김재철 체제에 종결을 고하는 끝장 투쟁이다"고 말했다.
■기자 출신 선배 사장
노조는 최근 서울 서래마을에 'MBC 사장을 찾습니다'란 공개수배 전단을 붙였다. 재미로 그런 것이 아니라 정말 사장을 만나 대화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파업이 시작되자 사장은 출근을 하지 않고 있다.
노조는 이명박 대통령의 고려대 후배인 기자 출신 김 사장은 정치편향성이 강하기 때문에 정권을 대리해 방송 장악을 시도할 가능성이 커 줄곧 반대했다.
노조는 2010년 39일간의 낙하산 사장 반대 파업을 진행했고, 당시 이근행 노조위원장이 해고를 당했다. 김재철 사장은 작년 2월 연임했다. 그러는 사이 지난 4년간 조합원 1천명 중 100여 명이 사측의 징계를 받았다.
하지만 이번 파업은 다르다.입사 25년차 논설위원과 부장급의 파업 동참이 이어졌다. 지난 17일에는 문화과학부장, 국제부장, 사회1부장 등 보직 부장 3명이 보직 사퇴의사를 밝히고 파업에 참여했다. 보직 부장의 파업 참여는 MBC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MBC 김진숙 홍보국장은 "사장은 노조의 불법파업으로 로비가 점거된 상태라 옆문으로 출입할 수는 없어 외부에서 정상 업무를 보고 있다"며 "노조가 불법 파업을 멈춘다면 언제든지 대화 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노조는 지난 17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3천명이 모인 가운데'으랏차차 MBC' 파업 콘서트 행사를 여는 등 22일 째 전면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심층기획팀=이재희·박세익·이자영 기자 deep@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