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를 초대하는가” 초량 ‘녀성상’이 던진 질문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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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시간연구소 31일까지 2주년 기념전
김경화, 일상·노동의 흔적 자개로 재구성

변홍례마리아, 초량아지매, 소녀상 등 6명
초대받지 못한 존재를 위한 생일상의 형식

버려진 자개농과 잊힌 노동의 기억 재소환
골목까지 펼친 25일 ‘작가와의 대화’ 눈길

김경화 초대전 ‘초량: 녀성상’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작가. 김은영 기자 key66@ 김경화 초대전 ‘초량: 녀성상’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작가. 김은영 기자 key66@
25일 오후 부산 동구 초량동 낭만시간연구소에서 열린 김경화 초대전 ‘초량: 녀성상’과 연계한 작가와의 대화. 김은영 기자 key66@ 25일 오후 부산 동구 초량동 낭만시간연구소에서 열린 김경화 초대전 ‘초량: 녀성상’과 연계한 작가와의 대화. 김은영 기자 key66@
25일 오후 부산 동구 초량동 낭만시간연구소에서 열린 김경화 초대전 ‘초량: 녀성상’과 연계한 작가와의 대화. 전시장이 좁아서 들어가지 못한 관람객이 골목길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서 모니터를 통해 듣고 있다. 김은영 기자 key66@ 25일 오후 부산 동구 초량동 낭만시간연구소에서 열린 김경화 초대전 ‘초량: 녀성상’과 연계한 작가와의 대화. 전시장이 좁아서 들어가지 못한 관람객이 골목길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서 모니터를 통해 듣고 있다. 김은영 기자 key66@

지난 25일 오후 4시 부산 동구 초량동의 한 골목 안 ‘낭만시간연구소’에서 김경화 초대전 ‘초량: 녀성상’과 연계한 작가와의 대화가 열렸다. 주택을 개조한 작은 전시장 앞 골목에는 50~60명가량의 관객이 담벼락을 따라 빽빽이 앉았고,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이들은 모니터 중계를 통해 이야기를 들었다. 열악한 조건이었지만, 골목은 끝까지 자리를 지킨 청중들로 묘한 집중의 공간이 됐다. 경성대 글로컬문화학부 이수진 교수가 진행한 대화에서 김경화 작가는 자신의 작업이 어디서 출발해 왔는지, 왜 이번 전시에서 초량의 여성들을 불러내게 됐는지 차분히 설명했다.

25일 오후 부산 동구 초량동 낭만시간연구소에서 열린 김경화 초대전 ‘초량: 녀성상’과 연계한 작가와의 대화 모습. 김은영 기자 key66@ 25일 오후 부산 동구 초량동 낭만시간연구소에서 열린 김경화 초대전 ‘초량: 녀성상’과 연계한 작가와의 대화 모습. 김은영 기자 key66@

김경화는 작업의 출발점을 ‘일상’이라고 말했다. 졸업 뒤 곧장 개인 작업에 들어가기보다 작업실을 꾸리고 지역에서 활동하며 예술과 삶이 분리되지 않는 지점을 오래 탐색해 왔다는 것이다. 중앙동 원도심 창작공간 또따또가에 자리 잡은 뒤에는 그 관심이 더 분명해졌다. 그는 “내가 무엇을 만들 것인가보다 내 눈에 보이는 일상에서 어떤 이야기를 꺼낼 것인가를 질문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의 작업에 버려진 한복, 이불, 폐지, 자개 등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미 누군가의 삶을 통과한 물건들을 통해 노동과 시간, 기억의 흔적을 다시 불러내는 방식이다.

25일 오후 부산 동구 초량동 낭만시간연구소에서 열린 김경화 초대전 ‘초량: 녀성상’과 연계한 작가와의 대화 모습. 김은영 기자 key66@ 25일 오후 부산 동구 초량동 낭만시간연구소에서 열린 김경화 초대전 ‘초량: 녀성상’과 연계한 작가와의 대화 모습. 김은영 기자 key66@

이번 전시 ‘초량: 녀성상’은 낭만시간연구소 개관 2주년을 기념한 초대전이다. 김경화는 2주년을 ‘생일’로 읽었고, 생일상은 초대받는 사람이 있어야 차려진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초량이라는 지역의 역사와 기억 속에서 여섯 명의 여성을 불러온 이유다. ‘변홍례 마리아’는 그중 한 명이다. 1931년 초량정에서 일본 철도 관사 일을 하다 의문의 죽음을 당한 그는 식민지 시대의 여성 하녀였다는 이유로 끝내 제대로 규명되지 못했다. 작가는 그 억울함을 위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피난 시절부터 초량을 살아온 ‘초량아지매’,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 텍사스 거리의 이주 여성들, 구봉산과 당집의 할매, 그리고 오늘날을 상징하는 낭만시간연구소를 운영하는 두 여성 기획자(김민서, 여수현)를 상 위에 초대했다.

김경화 가변설치 '그녀들을 위한 생일상', 자개농과 혼합재료, 2026. 낭만시간연구소 제공 김경화 가변설치 '그녀들을 위한 생일상', 자개농과 혼합재료, 2026. 낭만시간연구소 제공
김경화 작가의 다양한 자개 작품. 맨 위가 이주여성에게 기쁨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서 기쁠 희(喜) 두 개인 쌍희(囍)로 표현했다. 가운데는 구봉산 할매에게 드리는 선물로 구봉산 거북을 만들었다. 맨 아래 자개 꽃신은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의 맨발에 꼭 맞는 꽃신이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김은영 기자 key66@ 김경화 작가의 다양한 자개 작품. 맨 위가 이주여성에게 기쁨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서 기쁠 희(喜) 두 개인 쌍희(囍)로 표현했다. 가운데는 구봉산 할매에게 드리는 선물로 구봉산 거북을 만들었다. 맨 아래 자개 꽃신은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의 맨발에 꼭 맞는 꽃신이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김은영 기자 key66@

전시장에 놓인 ‘둥근 밥상’은 위계 없이 둘러앉을 수 있는 구조라는 것도 의미심장했다. 김경화는 이 형식이 초량이 품어온 피난과 이주의 기억, 서로 자리를 내어주며 살아온 공동체의 감각과 닮아 있다고 말했다. 전시가 묻는 질문도 분명하다. 우리는 지금 누구를 초대하고, 누구를 여전히 배제하고 있는가.

이번 전시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자개 작업의 확장이다. 김경화는 오래된 자개농을 해체하고 재구성해 왔지만, 이번에는 자개 자체를 새로 구축하는 단계로 나아갔다. 2021년부터 매축지의 자개장 장인 작업실을 오가며 협업한 결과다. 그는 “그냥 농으로는 안 된다”는 장인의 말에 따라 아교부터 새로 시작해 판 자체를 다시 만들었다고 했다. 자개농에는 수많은 장인의 노동과 기술이 들어 있지만, 시간이 지나며 쉽게 버려지는 현실이 늘 안타까웠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전시장 안쪽의 ‘그녀들’ 시리즈는 이런 문제의식을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작가는 자개장 제작을 남성 중심의 노동으로만 생각해 왔지만, 실제로는 수많은 여성들이 섬세한 공정에 참여해 왔다는 사실을 작업 과정에서 새롭게 알게 됐다고 했다. 그는 자개장 속에서 주체적으로 노동하고 움직이는 여성의 이미지를 찾기 시작했고, 그 결과가 이번 시리즈로 이어졌다. 김경화에게 여성은 단지 성별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초대받지 못했던 존재들을 상징한다. 그의 말처럼 ‘초량:녀성상’은 버려진 자개농과 잊힌 여성의 기억을 다시 식탁 위에 올려놓는 전시였다.

김경화 물방울 1~5 공간 설치, 자개농과 혼합재료, 2026. 낭만시간연구소 제공 김경화 물방울 1~5 공간 설치, 자개농과 혼합재료, 2026. 낭만시간연구소 제공

한편 전시장에는 구봉산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초량의 물길을 상징하는 물방울 설치 작업도 만날 수 있다. 전시는 31일까지 이어진다.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 30분~오후 6시 30분. 전시장이 좁아서 네이버로 예약 후 관람을 권장한다.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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