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래의 메타경제] 초국적 기업도 국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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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대 글로벌경제학과 명예교수

경제학적으로 논란 돼 온 문제
쿠팡 사태가 실증적 사례 축적
한국의 신뢰 자본 저버린 행태

부산근현대역사관은 과거 대표적인 식민지 수탈기관이었던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있었던 자리이다. 해방 이후 미국에서 사용하다가 한국으로 넘어온 뒤 역사관으로 재탄생하였다. 그 동양척식회사는 원래 이민회사로 출발하였는데, 일본사람들을 한반도에 많이 이주시켜 조선의 완벽한 일본화를 위한 발판으로 삼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한국인의 반발에 부딪쳐 동양척식주식회사는 이민 대신 농업 및 금융회사로 탈바꿈하였다. 국책회사였던 동양척식주식회사는 이후 당초의 사업에서 벗어나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였는데, 그 일환으로 해외에도 많은 투자를 하였다. 그 결과 동양척식주식회사는 동남아는 물론 남미까지 자회사를 가진 거대한 다국적 기업으로 군림하였다.

여러나라에 걸쳐 사업을 하는 다국적 기업은 물론 17~18세기 영국과 네덜란드가 식민지 개척에 나섰을 때 앞장섰던 동인도회사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당시의 기업들을 굳이 다국적 기업으로 강조하지 않는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등장한 다국적 기업들과 결정적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 차이는 다름 아닌 본사에 의한 일사불란한 통제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다른 나라에 진출한 기업들은 거의 본사의 통제를 받지 않았으며 별개의 기업처럼 행동했다. 그러다가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면서 세계에 흩어져 있는 자회사들은 본사의 지휘 아래 완벽히 통제되기에 이른다. 게다가 상당한 수의 다국적 기업 매출액은 어지간한 나라의 총생산 규모보다 커지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세계무역의 약 3분의 1 이상이 이러한 다국적 기업들의 내부 거래로 이루어지면서 세계무역의 행태도 바뀌고 있다. 이렇게 커진 다국적 기업들이 워낙 많은 나라에서 영업을 하다 보니 국적을 아예 넘어서는 것으로 인식하는 일도 잦아졌다. 1970년대 유엔 산하에 초국적 기업 센터가 만들어지고, 1978년부터는 다국적 기업 대신 초국적 기업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이 그러한 예이다. 더 나아가 아예 무국적 기업으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일부에서 나왔다.

그러나 경제학적 해석은 달랐다. 초국적 기업은 정말로 국적을 넘어서는가 하는 논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는 쪽의 손을 들었다. 국적을 넘어선 것처럼 보이는 것은 외면적인 것일 뿐 결코 자신이 의지하고 있는 국가를 벗어나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세계에서 영업을 하려면 기업 차원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것이 많은데 이런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특정한 국가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특히 힘있는 국가에 의지하는 것이 기업에게는 큰 힘이 되기 때문에 결코 기업들도 국적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 해 수천만 명의 개인정보를 유출시킨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 쿠팡이 사태 발생 이후 보이고 있는 행태가 초국적 기업에 관한 오래된 논쟁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한국 정부의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으로부터 정치적인 메시지들이 지속적으로 전해지고 있다. 쿠팡에 대한 조사를 기업에 대한 억압과 차별로 포장한 압박이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가 국내법에 따라 정당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미국 의회 의원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집단적인 의견을 보내기도 한다.

많은 우리 국민들은 쿠팡이 미국에 상장을 하였지만 국적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한국기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큰 사건이 터지자 쿠팡은 자신의 국적이 어디인가를 명확히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미국 국적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걸 넘어 적극적으로 어필하고 있다. 경제학에서 꾸준히 논란이 되어 온 초국적 기업의 국적 문제는 이번의 쿠팡 사태로 인해 또 하나의 실증적 사례를 축적하게 되었다.

나아가 쿠팡의 정보 유출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더욱 불편해 했던 것이 있다. 그것은 특히 한국이 잘 갖추고 있는 사회자본에 의해 쿠팡이 성장했는데 그에 대한 쿠팡의 배반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점이다. 쿠팡의 성장 아이콘이었던 새벽 배송은 아파트 어디에나 던져놓아도 분실 위험이 없는 한국적 신뢰 위에서 가능한 방법이었다. 이런 신뢰 자본 위에서 성장한 쿠팡이 회원들의 신뢰를 져버린 데 대해 이용자들은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물론 분노까지 느끼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으로부터의 지속적인 압박 메시지 또한 그냥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쿠팡이 적지 않은 금액을 미국에 후원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쿠팡이 한국에 어떤 형태로 환원하고 있는지 이용자들은 별로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도 불편한 기억의 근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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