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부산항, 이제는 크루즈를 꿈꿔야 한다
김현겸 팬스타그룹 회장·부산크루즈산업협회 회장
세계 해양도시 중심에 크루즈산업 있어
북항 랜드마크에 ‘제2터미널’ 조성 제안
최근 관련 협회 출범, 지금이 골든타임
부산-북극 연결 루트 개발 우선 검토를
6·3 지방선거는 지역 권력 재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16개 시도지사와 교육감, 수많은 기초단체장과 지방의원을 새로 뽑는 이번 선거는 대한민국의 미래 방향성을 가늠하는 정치적 분기점이 될 것이다. 특히 부산은 그 어느 때보다 복합적인 정치 지형 위에 서 있다. 중앙 정치와 지역 정치의 균열, 여야의 역학 관계, 그리고 지방소멸이라는 국가적 과제가 부산이라는 도시 위에서 교차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정치적 혼란 속에서도 분명한 사실 하나는 부산의 미래가 바다에서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는 공감대다. 부산시장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은 예외 없이 해양산업을 핵심 공약으로 제시했다. 물론 세부적인 비전과 접근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그 차이가 도시의 품격을 결정할 것이다.
부산은 오래전부터 해양수도를 자처했다. 그러나 정작 해양수도란 무엇일까를 자문하는 노력은 등한시한 것 같다. 해양수도란 항만 물동량이 많거나 조선소가 밀집한 도시를 뜻하는 게 아니다. 세계적인 해양도시는 산업과 물류를 넘어 사람과 문화, 관광과 소비가 바다를 통해 흐르는 도시다. 그 변화의 중심에 크루즈산업이 있다. 미국 마이애미와 스페인 바르셀로나, 싱가포르와 홍콩은 크루즈를 단순한 관광상품으로 보지 않는다. 도시의 관문이자 국가 브랜드 전략으로 활용한다. 크루즈선이 얼마나 입항하는지, 얼마나 많은 승객이 머물며 소비하는지가 도시 경쟁력을 대변하는 시대다. 부산 역시 산업항 시대를 지나 ‘미항(美港)’으로 진화해야 한다. 지금의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은 그런 점에서 한계가 뚜렷하다. 하루에도 수천 명의 국제여객과 크루즈 승객이 오가지만, 정작 승객들이 머물고 소비하며 부산의 매력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은 부족하다. 세계적인 크루즈터미널의 경쟁력은 외관과 함께 규모, 입출국 수속 속도가 중요하다. 입국에 두 시간, 출국에 한 시간이 걸리는 항만은 글로벌 크루즈 시장에서 선택받기 어렵다. 관광객에게 시간은 곧 돈이다. 그렇지 않아도 제2크루즈터미널 논의가 조심스레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갑자기 늘어난 수요에 임시방편으로 급하게 대응하려는 생각은 부산의 미래를 오히려 망칠 수 있다. 그럴듯한 건물을 하나 더 짓는 데 그치지 말고 부산의 새로운 랜드마크를 만든다는 사명감을 부산시장 후보들이 가지면 좋겠다. 최소 3~4개의 갱웨이를 동시에 운영할 수 있는 시스템, 입국과 동시에 관광과 쇼핑, 문화가 연결되는 동선 설계, 터미널 자체가 소비와 체험이 살아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북항의 랜드마크 부지를 크루즈터미널로 활용하는 큰 그림을 조심스럽게 제안한다. 북항 재개발 사업이 마무리된 지 수년이 지났지만 랜드마크 부지 활용안은 여전히 겉돌고 있다. 이 공간을 부산 크루즈 시대를 여는 핵심 거점으로 활용한다면 부산과 북항의 도시 브랜드를 동시에 강화할 수 있다. 부산역과 북항, 국제여객터미널, 그리고 미래의 제2터미널을 하나의 거대한 해양문화축으로 연결하는 상상도 가능하다. 공중보행로와 복합상업시설, 야간관광 콘텐츠가 유기적으로 결합한다면 원도심 전체를 살리는 촉매제가 될 수도 있다. 지금의 원도심은 자체 수요 창출이 어려운 구조다.
최근 국제정세 변화로 중국발 크루즈선이 부산으로 몰리고 있다. 하지만 외교 환경이 바뀌면 썰물처럼 빠져나갈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부산의 매력을 세계에 각인시킬 골든타임이 바로 지금이라는 생각도 든다. 마침 부산 크루즈업계 종사자들이 힘을 모아 부산크루즈산업협회를 출범시켰다. 선사와 여행사, 대리점 등이 참여했고 크루즈산업 발전을 위한 데이터 구축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접안과 동시에 관광이 시작되는 시스템, 세계적인 크루즈항의 기본 경쟁력을 갖추는 노력도 함께하고 있다. 크루즈는 결코 행정 논리로 성장하는 산업이 아니다. 민간의 상상력과 시민의 공감, 그리고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시민 공감이다. 시민이 어떤 상상을 하느냐에 따라 크루즈산업도 도시의 미래도 달라진다.
북극시대는 그런 공감 속에서 상상하고 실현해 나갈 수 있다. 부산~북극~유럽으로 이어지는 북극 컨테이너 항로 개발은 물론이고, 부산을 모항으로 일본 와카나이(홋카이도 최북단)~사할린 섬~북극으로 연결하는 크루즈 루트 개발을 선제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유럽에 가지 않아도, 미국의 알래스카 크루즈가 아니라 부산에서 빙하와 오로라를 경험하는 북극 크루즈 투어를 상상해야 할 것이다. 부산은 잠재력이 큰 도시다. 이번 부산시장 선거는 단순한 정치적 승패를 넘어 해양수도 부산의 미래를 진지하게 설계하는 시간이 돼야 한다. 부산항은 ‘세계적인 미항’을 꿈꾸고 만들어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