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반도체발 ‘슈퍼리치’ 시대 열리나?

김상훈 논설위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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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반도체의 투톱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리면서 성과급 논쟁 이슈가 국내를 강타하고 있다. 반도체 슈퍼 사이클을 타고 삼성전자는 올 1분기 57조 원대, SK하이닉스는 37조 원대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SK하이닉스의 올해 연간 영업이익이 250조 원대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기본급 1000%라는 성과급 상한을 폐지했으며, 연간 영업이익의 10%를 재원으로 초과이익분배금(PS)을 지급한다. 이에 따라 올해 SK하이닉스 임직원이 받을 성과급은 수억 원대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노조도 올해 영업이익 15%(약 45조 원 추산)의 성과급 지급과 상한선(연봉의 50%) 폐지를 요구하는 상황이다. 이 부분이 현실화한다면 반도체발 ‘슈퍼리치’ 시대가 열리는 셈이다.


경기도 이천시 SK하이닉스 본사 모습. 연합뉴스 경기도 이천시 SK하이닉스 본사 모습. 연합뉴스

경기도 수원시 삼성전자 본사 모습. 연합뉴스 경기도 수원시 삼성전자 본사 모습. 연합뉴스

■ “하이닉스느님” 밈 열풍

SK하이닉스가 사상 최대 실적 행진을 이어가면서 회사를 소재로 한 각종 밈(온라인 유행 콘텐츠)이 쏟아지는 상황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가장 대표적인 밈은 ‘SK하이닉스 로고 조끼’다. 한 게시물에는 조끼를 입은 남성 사진과 함께 ‘대한민국 현시점 최고의 소개팅 룩’이라는 문구까지 붙었다.

4월 25일 예능 프로그램인 ‘SNL코리아’에서는 SK하이닉스 직원을 소재로 한 코너까지 공개됐다. 한 남성이 편한 옷차림으로 명품 매장에 들어서자 직원이 막아선다. 실랑이 끝에 남성이 외투를 벗고, SK하이닉스 로고가 있는 조끼가 드러나자 직원은 곧바로 “하이닉스느님”이라며 태도를 바꾼다는 내용이다. 직원 조끼가 ‘명품 매장 프리패스 룩’이 된 것이다. 최근 임직원 1인당 평균 성과급이 수억 원을 넘을 것이라는 SK하이닉스의 위상을 풍자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생성형 인공지능(AI)으로 만든 패러디 이미지도 확산하고 있다. SK하이닉스 주차장에 고가 외제 차가 빼곡히 주차된 모습을 담은 이미지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인기를 반영하듯 SK하이닉스 입사를 목표로 하는 강좌까지 등장하면서 ‘하닉고시’ 열풍도 분다. SK하이닉스가 올해 생산직 공개 채용을 시작하자 학원가에서 ‘단기 합격반’을 개설했으며, 온라인 서점에선 관련 교재가 실시간 판매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학원 건물에 의학 계열 관련 입시 홍보물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학원 건물에 의학 계열 관련 입시 홍보물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 대학 입시 지형을 흔들다

의학 계열의 인기 전공을 통칭하는 ‘의치한약수’(의대·치대·한의대·약대·수의대)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취업이 보장되는 ‘반도체 계약학과’를 더한 ‘의치한약수반’이 등장한 것도 새로운 풍조다. ‘의대’의 독주 속에서 반도체 계약학과의 기세가 만만치 않다. 2026학년도 수시 모집 결과,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와 고려대의 반도체공학과의 합격선은 2021년 첫 신설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수시 최종 등록자 70% 컷을 분석한 결과,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의 학생부교과전형 합격선은 2024학년도 1.47등급에서 2025학년도 1.20등급, 2026학년도 1.14등급까지 수직 상승했다. 고려대 반도체공학과의 학생부종합전형 합격선도 전년도 1.82등급에서 올해 1.47등급으로 올랐다. 의대 비선호 상위권 학생들에게는 이들 학과가 확실한 선택지로 자리 잡은 것이다. ‘삼전닉스 열풍’이 의치한약수의 불패 신화를 넘어 이공계의 부활을 보여준다는 면에선 희망적이다.

2027학년도 입시에서도 ‘반도체 계약학과 독주’는 의대 증원 변수와 함께 상위권 합격선을 뒤흔들 핵심 변수다. 2027년 대입에서 삼성전자는 연세대, 성균관대 등 7개 대학에서 350명을, SK하이닉스는 고려대, 서강대, 한양대 등 3개 대학에서 110명을 선발한다. 두 기업은 합산 총 460명의 정예 인원을 뽑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셔틀버스가 지나는 ‘셔세권’(셔틀버스+역세권)으로 떠오른 동탄역 주변 아파트 단지 전경. 연합뉴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셔틀버스가 지나는 ‘셔세권’(셔틀버스+역세권)으로 떠오른 동탄역 주변 아파트 단지 전경. 연합뉴스

■ 각광 받는 ‘반도체 셔세권’

시장의 관심은 삼전닉스의 역대급 성과급이 만들어낼 ‘낙수 효과’로 쏠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셔틀버스가 지나는 곳을 일컫는 ‘셔세권’(셔틀버스+역세권)이 부상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최소 3~4년간 반도체 호황이 이어져 실제 성과급으로만 수십억을 벌게 된다면 풍부한 유동성의 종착지는 결국 부동산일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주요 셔세권 단지 리스트’까지 공유되는 상황이다.

기흥·화성 등에서 사업장을 운영하는 삼성전자는 약 1700개의 노선을 통해 매일 5만여 명의 직원을 실어 나른다고 한다. 이천과 청주에 사업장을 둔 SK하이닉스 역시 500여 대의 통근 버스가 2만여 명의 직원 출퇴근을 책임진다. 총 7만여 명에 달하는 고소득 인구의 이동 경로가 곧 ‘부동산 입지 지도’로 이어지는 것이다. 실제로 ‘셔세권’으로 꼽히는 지역은 시장 평균보다 높은 가격 상승률을 보인다고 한다. 셔틀 노선이 집중된 서울 동남권(강남·서초·송파·강동)과 경기 남부권(분당·수지·동탄·영통)이 대표적이다.


■ 산업 생태계 확장 연결을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역대급 성과급 예상에 부러움과 함께 노동소득 격차를 둘러싼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 노동소득 차이가 미래 자산 형성 능력 차이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소득 격차에 따라 ‘K자형’ 양극화가 더 심화하고 일각에선 ‘H자형’으로 굳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H자형 양극화란 위아래 계층 간 격차가 굳어져 이동 사다리가 약해진 현상을 알파벳 H에서 착안한 용어다. 같은 출발선에서 계층이 갈라지기 시작하는 K자형 양극화를 넘어 H자형은 격차가 고착된 상태를 의미한다. 노동시장 이중 구조가 인생 경로를 좌우하고 이로 인해 부동산, 사교육, 채용시장의 양극화가 더 깊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반도체 호황에 따른 일부 대기업 중심의 임금 상승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분위기는 있다. 기업이 투명한 규칙에 따라 이익을 나누는 것은 권장할 일이다. 다만 이러한 성과가 특정 기업과 계층에만 머문다면 산업 전반의 불균형을 심화시킬 수 있다. 이를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는 정책적·구조적 대응이 필요하다. 반도체 호황이 촉발한 임금 상승의 과실이 신규 일자리 창출과 산업 생태계 확장으로 이어지고, 협력사와 중소기업, 서비스 분야까지 파급된다면 바람직할 것이다. 반도체 호황을 어떻게 우리 경제 전반의 성과를 연결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 됐다.


김상훈 논설위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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