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부 대책에도 현장서는 주사기 품절, 의료 대란 막아야
매점매석 단속 불구 수급난 해소 안 돼
유통망 안정화 통해 환자 불안감 없애야
15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한국백신 공장에서 완성된 주사기의 포장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중동 전쟁 장기화 여파로 석유화학 원료인 나프타 확보에 문제가 생기면서 의료 소모품 수급 불안정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가 지난 14일부터 주사기와 주사침 매점매석 행위를 금지하고 집중 단속을 하고 있지만, 일선 현장에선 주사기 구입이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매일 ‘주사기 생산 등 일일 수급 동향’을 발표하고 있다. 지난 21일 17시 기준으로 주사기 생산량은 435만 개, 출고량은 555만 개, 총재고량은 4646만 개에 달한다. 보건복지부는 22일 주사기, 주사침, 약포지, 시럽병 등 주요 의료 제품 생산량이 전년과 비교해 차이가 없다고 밝혔지만, 정작 의료 현장 체감도는 확연히 다른 셈이다.
실제로 부산 지역 의료 현장에서 벌어지는 의료 소모품 품귀 현상은 심각하다. 의료 소모품 전문 쇼핑몰에선 주사기, 주사침 등이 품절 상태라고 한다. 의료기 재료상도 비슷한 상황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병원들은 주사기, 주삿바늘, 거즈, 알코올 솜 등 의료 소모품 확보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심지어 치과 원장이 생리식염수 팩을 사기 위해 동네 약국을 전전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대학병원도 주사기류 수급 곤란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입찰을 통해 도매상에서 납품받고 있지만, 1주일 단위로 버티는 형편이라고 한다. 정부가 이달 “나프타를 의료 제품 생산에 우선 공급하겠다”고 밝혔지만, 시장 불안은 가라앉지 않는 게 현실이다.
병원들은 재고 부족에 더해 가격 급등으로 인한 이중고를 겪는 상황이다. 부산 지역 대학병원 한 곳은 납품업체로부터 주사기 가격 25% 인상을 비롯해 약 포장지와 투약 병 가격 15~16% 인상을 이미 통보받았다. 의료폐기물 플라스틱 박스값은 벌써 올랐고, 폐기물을 처리하는 골판지 박스도 기름값 상승에 따른 운송비 급등으로 16.7% 인상을 요구받은 상태라고 한다. 의료 소모품 수급난이 갈수록 악화한다면 환자 진료에 차질을 빚을 우려가 크다. 나아가 지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필수 진료까지 영향받는다면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니다. 의료 소모품 수급난이 개선되지 않으면 의료진과 환자의 불안감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지난 20일부터 의료 소모품 유통망 안정화를 위해 특별 단속을 시행 중이다. 부산시도 23~24일 6개 판매업소를 대상으로 현장 점검에 나선다고 한다. 사재기 금지, 현장 단속 등을 통해 시장 불안을 잠재우고, 의료 대란까지 번지는 일은 막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중동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길어질수록 주사기, 의료용 장갑 등을 만드는 나프타 확보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공급망 위기가 고착된다면 의료 소모품 품귀 현상 해소는 쉽지 않다. 정부가 장기적으로 나프타 등 원료 배분과 비축, 대체 조달 체계 구축 등 국가 차원의 공급망을 재설계해야 한다. 위기 때마다 땜질 처방만으론 혼란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