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의 생각의 빛] 진달래, 지려고 피는 마음씨에 묻은 빛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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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4월, 국가 권력 희생자들의 메시지는
집단이데올로기 빌미로 소수 겨냥한
기만과 폭력 행사 끊어야 한다는 것

“진달래야 진달래야 어느 꽃이 진달래지 내 사랑의 진달래 너만 홀로 진달래야/ 진달래 나는 진달래 임의 짐은 내질래”(유영모 ‘진달래’ 중에서)

이맘때쯤이면 마을 뒷산을 붉게 물들이던 진달래가 생각난다. 따뜻하고 화사한 봄볕 바람에 흔들리며 잔잔한 향기 번지던 진달래 군락지에 앉아 동무들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뛰놀다 저녁 먹으란 소리에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꽃잎을 따던 이들도 있었는데, 화전을 해 먹기 위해서였다. 얇디얇은 분홍빛 이파리 한 움큼씩 전을 부쳐 찬가지 몇 없는 밥상에 올려 먹던 기억도 새록새록 난다. 진달래, 짧은 동안 활짝 피고 온 산을 순간 붉게 물들이곤 영락없이 지고야 마는 그 꽃을 생각하는 날이다. 김소월(1902~1934)의 시에도 등장하는 진달래는 국화나 장미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이 나라 산천 곳곳 봄의 들목에서 개나리와 함께 가장 먼저 피어나 다른 봄꽃의 길잡이가 되어준다.

‘진달래꽃’의 시인 소월이 다녔던 오산학교의 제8대 교장을 지냈던 다석 유영모(1890~1981)도 ‘진달래’란 시를 지었다. 그는 서울 구기동에 살 무렵, 진달래를 보고 그 꽃 이름을 한참이나 궁리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면서 누구보다 먼저 피우고 누구보다 먼저 지는 진달래의 모습에서 생명의 신비와 함께 영적인 삶의 본질을 깨달았다. 그가 지은 ‘진달래’는 언뜻 알쏭달쏭한 의미와 맥락으로 이해하기 쉽지 않아 보이지만, 오랫동안 지지 않고 아름다움과 명성을 유지하려고 발버둥을 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뜻이 적지 않다. ‘지기 위해 피우는 꽃’이란 해석을 보태기도 했던 다석의 ‘진달래론’을 곱씹으면, 무릇 죽음을 피해 갈 수 없는 우리가 어떤 정신과 형식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 곰곰이 되짚게 된다.

제주 4·3과 4·19혁명 때 목숨을 잃은 수많은 이들이 다시 한번 우리에게 ‘말 없는 말’을 건네는 달이다. 희생당한 이들이 무슨 거창한 이념과 사상을 펼치기 위해서라든지, 혁명으로 나라를 뒤바꾸려는 장엄한 꿈을 이루려는 마음으로 국가 권력의 ‘제거 대상’이 되었던 건 아니다. 이들은 단지 거짓과 술수와 명분 잃은 폭력의 희생양이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희생되었지만, 살아남은 이들의 기억에서 결코 잊어서도 안 되고 잊을 수도 없는 우리 현대사의 상흔이 되었다. 역사의 한 페이지에서 한참이나 머뭇거리면서 여백에 묻은 젖은 피가 내지르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우리가 끝내 찾아서 잊지 않고 동시대인들에게 전해야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4월 지나 5월이 되면 각종 봄꽃이 피었다 지는 속에 수목은 그 푸르름을 더욱 짙게 가져갈 것이다. 진작에 피었다 진 진달래는 뒤를 줄줄이 이은 봄꽃 무리 속 상춘객의 밝은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스러지기 위해 찬란히 불 밝혔던 ‘사건’으로 남게 된다. 이를 기억하는 이들에겐 생명이 지녀야 할 의무 가운데 하나인 가없는 희생과 사랑만이 마음속에 오롯이 남아있을 것이다. 진달래, 진분홍 이파리의 떨굼이 연두 천지의 세상을 지피고 남긴 고귀한 소식. 우리 앞에 주어진 생명의 길을 내어주고 물러난 역사의 희생자들이 어느 곳 어느 때 불쑥불쑥 입술을 드러내어 참된 삶의 의미를 묻는다면 이에 곧바로 답을 할 자 몇이나 될까.

국가 폭력의 희생자를 기리고 기념하는 목적은 단지 이들이 희생당해야만 했던 역사적 사건이나 진실을 재구성해 오늘날 우리에게 남기는 의미를 되새기는 데에만 놓여 있지는 않다. 수많은 사람의 가슴속에 맺힌 한이 유전되어 면면이 쌓이는 과정에서 반드시 개선해야 할, 집단 이데올로기에 따른 소수자를 향한 기만과 폭력의 유대를 끊어야 하는 절체절명의 기회를 언제라도 붙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담겨 있다. 아울러 ‘살아남은 자’가 반성과 자책으로 값진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순간순간 돋아나는 삶의 뜻을 헤아리면서 잊지 말고 지녀야 할 시선이 들어 있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화학자이자 작가였던 프리모 레비(1919~1987)는 저서 〈이것이 인간인가〉에서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삶의 의미에 대한 믿음은 인간의 모든 힘줄 속에 뿌리박혀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 문제는 훨씬 더 단순하다. 오늘 그리고 여기서 우리의 목표는 봄에 도달하는 것이다.” 희망도 용기도 실종된 극한의 지대에서 부르짖은 말이었을지라도, 그가 힘주어 강조했던 점은 당장 ‘오늘 여기’에서 찾아야만 했던 생명의 목적이었다. 이 목적은 꽃봉오리 활짝 지려고 피었던 진달래가 우리 마음에 물들이는 빛깔이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모든 폭력의 희생자가 입을 열어 전해주려 했던 메시지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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