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비하인드] 창원 아파트 흉기 살인사건 왜 막지 못했나
피의자, 직장 동료인 여성에 과도한 집착 보여
주변에 ‘죽이겠다’ 언급…이미 범행 징조 감지
피해자, 경찰에 스토킹 상담했지만 예방 못해
“강력 범죄 발생했다고 합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기 시작한 지난달 27일, 막 점심을 마친 경남경찰청 출입 기자 무리에서 누군가 외쳤다.
취재 결과, 이날 오전 11시 35분 경남 창원시 성산구 상남동 한 상가 앞 주차장에서 20대 여성 1명이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30대 남성 1명도 중상을 입어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했다. 속보를 마감하고 급히 현장으로 달려갔다.
한 아파트 단지 내 상가 앞 현장은 여전히 어수선했다. 낭자한 혈흔이 40m 떨어진 아파트 한 동 현관 출입구까지 이어졌다.
주변을 지키던 한 경비원은 “이른 아침부터 남녀 둘이서 주차장 근처에 앉아 이야기하고 있기에 술에 취했나 하고 밥 먹으러 간 사이에 일이 벌어졌다”고 했다.
사건 이튿날, 심정지 상태로 이송돼 병원 치료를 받던 여성이 끝내 숨졌다. 남성 역시 사흘 만에 사망 판정을 받았다.
동반 사망이라는 비극적 결말의 시작은 무엇이었을까. 지금까지 확인된 사실을 종합해 사건 당일로 거슬러 가봤다.
이날 이른 오전, 30대 남성 A 씨가 집에서 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서 누군가를 기다렸다.
마침 그는 이날 회사를 그만뒀다. 건강 문제로 앞당겨진 퇴사였다.
1시간 20분쯤 지났을까, A 씨는 20대 여성 B 씨를 목격하고서 곧장 뒤를 쫓았다. 길가에서 마주친 이들은 대화를 나누다가 택시를 타고 함께 이동했다.
이들은 A 씨 주거지인 한 아파트 단지에 도착해 경비원 진술처럼 한참을 더 대화했다.
오전 11시 35분, A 씨는 자신이 사는 동 현관 출입구에서 미리 준비한 흉기로 B 씨를 공격하고 곧바로 자해했다. 계획 범행에 무게가 실리는 대목이다.
둘은 한 중견기업 창원 사업장에 다니던 직장 동료 사이였다. 지난해 10월 서로 호감을 확인한 뒤 연락하고 지냈다.
그러나 B 씨는 무슨 이유인지 더 이상 관계 진전을 거부했다. 배신감을 느낀 A 씨는 상대방에게 과도하게 집착하기 시작했다.
B 씨는 올해 1월 회사를 그만뒀다. 가족을 간호하겠다는 이유와 더불어 실제 A 씨의 집착이 부담으로 작용한 사실이 확인됐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회사를 그만두는 것만으로는 A 씨의 집착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고, 수개월 후 끔찍한 비극을 맞이하게 됐다.
더욱 아쉬운 건 B 씨가 회사를 그만 둔 이후로도 비극을 막을 수 있는 기회는 수차례 있었다는 점이다.
우선 A 씨는 그즈음 주변에 ‘B 씨를 죽이겠다’는 취지로 말하고 다녔다. 징조가 감지된 이때가 A 씨 범행을 멈출 ‘첫 번째 기회’였던 것이다.
B 씨가 회사를 그만둔 시점부터 두 달 넘는 기간 동안, A 씨는 다섯 차례 정도 문자 메시지를 전송했다.
정확한 내용은 유가족 요청으로 공개되지 않았지만, 경찰이 보기에 B 씨가 위협과 불안감을 느끼기 충분한 내용이었다.
지난달, A 씨 집착 정황을 알게 된 B 씨 가족은 경찰 상담을 권유했다. B 씨는 지난달 5일 창원중부경찰서 여성청소년과를 직접 방문했다.
“한때 연락하던 사람인데, 지금은 연락하지 않는다. 그런데 계속 연락이 오고 있다. 어떻게 하면 좋겠나.” B 씨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경찰에게 설명했다.
상담 경찰관은 명시적 거부 의사를 표시하라고 권유했다. 다른 경찰관은 피해 사실이 있다면 지금 진술하라고 제안했다.
B 씨는 10분 상담 끝에 ‘한 번 더 연락이 오면 그때 신고하겠다’는 취지로 말한 뒤 A 씨 인적 사항과 구체적인 피해 사실을 알리지 않고 경찰서를 떠났다.
B 씨를 붙잡지 못한 탓에 끔찍한 범죄를 막을 수 있었던 ‘두 번째 기회’마저 무산됐다. 현행 체계는 피해자와 가해자, 피해 사실 모두 확인돼야 비로소 작동한다.
학대 예방 경찰관(APO) 전산망에 입력되지 못한 A 씨 스토킹 범행은 결국 살인이라는 강력범죄로 불거졌다.
현직 경찰관인 C 경감은 “경찰이 위험 신호를 인지했다면 시스템, 매뉴얼을 떠나 경찰서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했어야 한다”고 탄식했다.
사건 당일, 흉기에 찔린 B 씨는 40m가량 떨어진 상가로 도망쳐 구조 요청한 뒤 쓰러졌다. 흉기를 들고 뒤를 쫓은 B 씨도 몇 걸음 떨어져 지켜보다가 쓰러졌다.
“강아지가 베란다에서 밖을 보며 자꾸 짖더라고. 시끄럽다고 타일렀는데, 그때 밖에서는 그 사달이 났던 거지. 근데 사람을 왜 죽여, 죽이긴….”
사건 발생 이틀째, A 씨가 살던 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한 주민은 안타까운 심정을 숨기지 못했다.
살인 피의자 A 씨가 숨지면서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될 예정이다. B 씨는 결국 돌아오지 못했고, 지키지 못한 죄책감은 살아있는 이들 몫으로 남겨졌다.
최환석 기자 ch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