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뽕' 한 사발을 누가 마다하리오[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최근 들어 한 사발 쭈욱 들이키고 싶은 게 막걸리 뿐만이 아니게 됐다는 국민들이 늘고 있다. 부산일보DB
최근 대한민국이 자체 개발한 무기들이 국제 무대에서 큰 관심을 받으면서 시중엔 소위 ‘국뽕’이 차오른다는 표현이 넘실대고 있다. 2010년대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탄생한 단어인 국뽕은 국가와 필로폰(히로뽕·메스암페타민)의 합성어로서 자국에 대한 환상에 도취돼 자국을 찬양하는 행태를 일컫는 비속어에 속했다. 그러던 것이 해가 갈수록 대한민국의 위상이 가슴 벅차도록 올라가는 장면이 반복되자 ‘주모! 여기 국뽕 한 사발 주소’ 같은 밈으로 소비되며 사용빈도가 급격히 올라갔다. 특히 대한민국 방위산업의 발전상에 대한 자부심에서 드러나는 국뽕은 그 어느 때보다 상한가를 치고 있는 중이다.
해군 잠수함 이종무함. 1998년 림팩 훈련에서 작은 고추가 맵다는 사실을 참가국 모두에게 알리며 방산 신화의 서막을 알렸다. 부산일보DB
■방산 신화의 시작
70년이 넘도록 휴전 상태를 지나오면서 차곡차곡 쌓아온 대한민국의 K-방산에 대한 국뽕은 가장 대표적인 국뽕에 속한다. K-방산에 대한 국뽕의 연원은 1998년까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8년 미국이 주도한 환태평양 군사훈련, 소위 림팩이라는 훈련이 진행되던 때. 한국에서는 국내 생산 장보고급 잠수함인 ‘이종무함’이 참여한다. 미국의 항공모함과 일본의 이지스함 등 상대적으로 어마어마한 해군 전력을 지닌 국가들 사이에서 이종무함은 초라하기 그지없어 보였다. 하지만 막상 훈련이 진행되자 이종무함은 단 한 번의 고장도 없이 가상 해전에서 미 해군 핵추진 잠수함을 비롯해 일본의 이지스함 등 모두 13척을 가상 격침시키는 활약을 보였다. 디젤 엔진을 끄고 실내가 찜통이 되는 열악한 환경을 배터리로 버티면서 타국의 대잠 기능을 무력화시킨 결과였다. 인터넷 상의 쇼츠 등에선 ‘한국은 다음부터 심판이나 보라’고 푸념했다는 귀여운 미국, 일본의 모습이 떠돌 정도다. 실전에서 국산 방산무기의 성능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된 이 훈련은 지금까지도 인구에 널리 회자되고 있다.
국산 4.5세대 전투기 KF-21이 시험비행하고 있는 모습. 1600회 시험 비행 무사고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부산일보DB
■차세대 전투기 생산국
최근 양산 체계가 본격 가동되기 시작한 4.5세대 전투기 KF-21은 2015년 8조 원이 넘는 개발 투자로 시작된 국산 전투기 개발 사업의 결실이다. 6.25전쟁 이후 미국이 공급한 전투기에 의존해 영공을 지켜야 했던 대한민국이 자체 전투기 생산에 이르기까지는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개발에 들어가자마자 전투기 핵심 장비인 AESA 레이더 기술 이전을 미국이 거부하는 사태가 결정적이었다. 대한민국은 연인원 6만 5000명에 가까운 연구진을 ‘갈아넣다시피’ 하며 자체 레이더 기술 등 핵심 기술들을 개발했다. 전투기 개발 이후 42개월간 1600여 회 시험 비행에서 단 한 건의 사고가 없었던 점도 세계 전투기 개발사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쾌거. 인도네시아 16대 수출을 시작으로 동남아시아와 중동 국가들의 오픈런이 예고될 정도로 양산 이후 전망은 장밋빛이다. 차후 10년 이내 독자적인 엔진 개발까지 이뤄지고 나면 미국 승인 없이도 전투기 수출이 가능해진다. 그 시기쯤이면 현재 4.5세대인 전투기가 차세대급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도 높다.
국내 기술로 독자개발한 장거리지대공유도무기(L-SAM)의 탄도탄 요격시험 장면. 천궁보다 높은 상층 방어가 가능한 L-SAM은 향후 사드와 어깨를 견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부산일보DB
■미사일 강국
천궁-II가 아랍에미리트 하늘에서 이란의 탄도 미사일을 96%나 요격해낸 사실은 한국 미사일 개발의 한 획을 그은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천궁-II가 가성비까지 보태며 미국의 패트리어트 미사일에 버금가는 요격 미사일로 급부상하는 동안 미국의 사드체계와 어깨를 견주려는 국내 미사일체계도 개발이 착착 진행중이다. LIG넥스원이 지난해 공개한 L-SAM이 그 주인공이다. 천궁-II처럼 수출까지 염두에 둔 L-SAM은 장거리 지대공 미사일 체계다. 천궁-II보다 높은 상층 방어가 가능하기 때문에 사드체계와 곧잘 비교된다. 천궁-II의 중동전 활약 등으로 요격 미사일 실전 데이터가 확보된 이상 L-SAM의 활약도 그에 못지 않을 것으로 기대된다. 국산화한 미사일들은 수비형 미사일만 대단한 것이 아니다. 고고도로 띄운 뒤 수직으로 낙하해 적진을 타격하는 현무 미사일도 핵을 제외한 최강 무기로 세계를 놀라게 하는 중이다. 8톤급 탄두를 장착할 수 있어 북한의 지하 벙커 시설 대부분을 파괴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21년 대한민국 미사일에 대한 미국의 사거리 제한 지침 종료로 국내 미사일 개발은 더욱 날개를 달게 됐다.
중동 사막을 달리고 있는 K9 자주포. 한국은 러시아와 중국을 제외한 자주포 최다 보유국이면서 최근 자주포 수출 강국으로도 떠오르고 있다. 부산일보DB
■자주포의 나라
한국은 지난해 기준으로 K-9을 비롯한 자주포를 3000대 넘게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각각 5000대와 4000대가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러시아와 중국을 제외하면 전 세계 3위이지만 면적당 밀도를 감안하면 세계 최다 자주포 보유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럽 전체 자주포 수와 맞먹는 규모라는 분석도 있다. K-9 자주포는 지난해 중국과 국경 분쟁을 벌인 인도에 4000억 원 상당의 추가 수출이 이뤄졌을 정도로 실전성을 인정받고 있으며 폴란드를 중심으로 한 유럽에서도 큰 호평 속에 수출이 잇따르고 있다. 여타 국가보다 엄청나게 빠른 납기와 탄탄한 후속 수리 서비스는 이미 입소문이 자자하다는 평이다. 더 놀라운 것은 한국이 보유하고 있는 포탄 비축량이다. 지난해 미국과 유럽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포탄이 모자랄 때 대한민국은 포탄 비축량이 ‘7일치’밖에 없다면서 50만 발을 빌려준 바 있다. 그 때 드러난 대한민국의 포탄 비축량은 340만 발. 유럽 전체 규모와 맞먹는 자주포가 하루 수십만 발을 발사함으로써 7일만에 340만 발을 소비한다는 개념이 포탄 비축량 ‘7일치’의 실체였던 것이다.
지난달 25일 경남 창원시 진해구 해군기지에서 열린 '도산안창호함(SS-Ⅲ) 한국·캐나다 연합협력훈련 출항 환송 행사'에서 가족과 지인이 승조원에게 인사하고 있다. 3천t급 잠수함 1번함인 도산안창호함은 이날 진해기지에서 출항해 캐나다 서부 빅토리아까지 편도 약 1만4천㎞를 항해한다. 이는 우리나라 잠수함 항해 거리로 역대 최장 기록이다. 부산일보DB
방산강국 대한민국 신화의 출발점이었던 이종무함의 활약은 최근 캐나다로 출발한 도산안창호함의 위용으로 이어진다. 탄탄한 조선업을 배경으로 이룩한 잠수함 관련 기술은 핵추진 잠수함이 아님에도 독보적인 배터리 기술 접목을 통한 오랜 잠항시간으로 전 세계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한 것으로 알려진다. 독일 등 잠수함 생산국들이 서류를 들이밀며 캐나다의 60조 원대 잠수함 도입 계획에 응찰할 때 대한민국은 실물 잠수함으로 직접 태평양을 건너는 퍼포먼스로 응찰하겠다는 자신감을 내비칠 정도다.
기존 국가 대비 절반 이하의 가격과 엄청나게 빠른 납기로 상징되던 대한민국의 무기는 이제 실전에서 검증되며 신뢰까지 확보했다. 국제적인 안보 위기 고조가 뉴노멀이 돼 가는 지금, 가격과 납기에다 신뢰까지 무장한 대한민국 방위산업의 결과물들은 앞으로 더 빛을 발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런 국뽕이라면 정말 사발로 들이키라 해도 마다할 수 없을 듯하다.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