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성의 개념 쌓기] 지능과 능지 그리고 교만한 안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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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철학과 강사

고학력자라 해서 사기에 안전한 건 아냐
오만과 공포 더해져 쉽게 속아 넘어가
피해자 조롱하는 태도, 또 다른 교만일 뿐

새삼스러운 지적이긴 하나, 사기가 횡행하고 있다. 곧 대박이 날 주식 정보를 알려주겠다거나 손쉬운 부업을 통해 고수익을 올리게 해주겠다는 등의 온갖 스팸 문자들이 쇄도한다. 금융기관을 사칭해 가짜 정책금융상품 가입을 유도하고 돈을 갈취하기도 한다. 사기는 유행에도 발 빠르게 적응한다. 최근 중동 사태가 불거지면서 주민센터 직원 행세를 하며 유류비 지원을 미끼로 악성 앱 설치를 유도하는 신종 수법까지 등장했다. 통신사와 경찰청 통합대응단이 손잡고 실시간 대응 체계를 구축하려 한다지만, 유감스럽게도 미래를 낙관하긴 힘들다. 지난날을 돌아보건대, 새로운 대책에 맞춘 또 다른 사기 수법이 등장할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인간사에는 사기에 대한 일종의 절대량 보존 법칙 같은 게 작용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사기를 둘러싼 또 하나의 익숙한 풍경은, 가해자보다 피해자의 어리석음을 탓하는 경향이다. 보이스피싱 피해를 다룬 유튜브 영상에는 어김없이 이른바 ‘능지’를 비난하는 댓글이 넘쳐난다. 이 단어는 ‘지능’을 거꾸로 뒤집어 누군가의 지적 수준을 비꼬는 신조어인데, 곱씹어 보면 묘한 함의가 있다. 본래 지능이란 상황을 파악하는 ‘지’혜와 이를 실행으로 옮기는 ‘능’력이 조화를 이루는 개념인데, ‘능지’는 그 순서가 뒤바뀐 상태를 가리킨다. 즉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우둔함을 뜻한다. 결국 이는 수화기 너머의 사기꾼이 던진 미끼를 의심 없이 덥석 무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통상 지능과 양(+)의 상관관계를 갖는다고 여겨지는 고학력자들은 사기로부터 자유로울까? 통상 이들은 사회에서 상황의 본질을 눈치 빠르게 파악하며, 복잡한 정보를 논리적으로 처리하는 존재로 인식되기에, 사기에 대한 절대적인 면역체계를 가졌을까? 자신 있게 대답하자면, 전혀 그렇지 않다. 필자는 직업상 상아탑 안에 있기에, 박사학위 소지자들을 종종 본다. 그런데 여기서도 사기 피해는 낯선 일이 아니다. 당장 지난 겨울에도, 검찰을 사칭하는 사기꾼 꾐에 넘어가 수사 협조를 명목으로 텔레그램을 설치했던 한 선생님의 소식을 들었을 정도다. 또한 회식 자리에서 주식 리딩방에 깜빡 속아 목돈을 급등주에 밀어 넣었다가 큰 손실을 본 교수의 이야기가 오르내리기도 했다. 다시 말해 학력과 사기 피해는 별다른 상관이 없다.

어떤 의미에서 고학력자들이야말로 사기꾼에게는 손쉬운 먹잇감이 될 수 있다. 근본적으로 사기는 심리적 허점과 정보의 불균형을 파고드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 두 요소는 서로를 강화하며 작동한다. 예컨대 사기꾼이 가장 신뢰하는 통로는 오만이다. 자신의 판단이 틀릴 리 없다고 믿는 사람일수록 주어진 정보의 왜곡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동시에 왜곡된 사실에서 비롯된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자만이 더 강화되기도 한다. ‘나 같은 사람이 속을 리 없다’라고 믿으며 감지된 논리적 균열을 애써 외면하는 것이다. 이처럼 오만과 오류는 서로를 조건 지으며 점점 증폭된다. 그렇다면 자신의 지식을 과신하는 경향이 있는 고학력자들이 사기꾼의 눈에 얼마나 매력적인 표적일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사기의 결정적 한 수는 공포다. 공포는 이성을 마비시킨다. 실제로 공포는 사고를 담당하는 대뇌피질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편도체에서 발산된다. 숲속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 후 피하는 것보다 즉시 그 자리서 벗어나는 게 생존에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공포는 정확성보다 신속성을 우선하는 감정이다. 그렇기에 공포가 작동하는 순간, 고학력자들이 자부하던 대뇌피질은 사실상 먹통이 되고 만다. 마치 최첨단 무기는 있는데, 정작 그걸 작동시킬 전선이 뽑혀버린 꼴이다. 그렇다면 사기꾼은 고학력자에게 어떻게 공포를 심어줄까? 이는 어리석은 질문에 가깝다. 오만이 곧 공포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고학력자에게 공포는 자신의 최대 자산인 지능이 무력화되는 순간이다. 그래서 중간에 사기를 의심하게 되더라도, 이를 좀처럼 인정하지 못한다. 금전적 피해를 넘어, 스스로의 지능이 ‘능지’로 전락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찍이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데서 지혜가 시작된다고 말하며, 이른바 ‘무지의 지’를 설파했다. 그러나 상아탑에서도 빈번히 벌어지는 사기 피해를 보면, 이 교훈이 제대로 계승되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 다만 이러한 문제는 비단 박사학위 소지자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시민을 향해 ‘무지의 지’를 강조했듯 자만은 인간에게 보편적인 약점이기 때문이다. 결국 사기 피해자를 조롱하는 이들은, 그들을 통해 자신의 지능은 아직 ‘능지’로 전락하지 않았다는 안도감을 얻는다. 그리고 바로 그 교만한 위안이야말로 사기꾼들이 가장 노리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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