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으로 함께 살아오는 이런 맛에 야구합니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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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가 못한 거 올인이 하자!” 열광적 응원에
예능 ‘야구 여왕’서 선전한 부산올인여자야구단
감독·투수·타자 1인 3역 이혜영 비롯 21명 등록
“구기 종목 중 사람으로 점수가 나는 건 야구뿐”
사람이 먼저인 야구, 함께하는 매력에 푹 빠져

한국 프로야구는 2년 연속 1000만 관중을 돌파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1200만 명이라는 역대 최다 관중을 기록했는데, 그 주역은 여성팬이었다. 지난해 프로야구 팬 중 여성 비율은 57.5%로 이제 야구장에는 여성이 더 많다. 특히 20대 여성이 모든 연령·성별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그동안 야구는 남자들의 운동으로 인식되었다. 요즘 여성들은 왜 야구에 열광하는 것일까?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야구의 재미에 푹 빠진 여성들을 만났다. 말 그대로 야구에 올인하고 있는 ‘부산올인여자야구단(이하 올인)’ 선수들이다.


‘부산올인여자야구단’ 선수들은 “야구는 사람이 먼저인 운동이다”라고 말한다. ‘부산올인여자야구단’ 제공 ‘부산올인여자야구단’ 선수들은 “야구는 사람이 먼저인 운동이다”라고 말한다. ‘부산올인여자야구단’ 제공

■롯데가 못한 거 올인이 하자!

지난달 초 무심코 TV 채널을 돌리다 새빨간 유니폼을 입은 ‘올인’을 처음 보게 됐다. 채널A의 여성 스포츠 예능 프로그램 ‘야구여왕’이었다. 올인과 블랙퀸즈가 막상막하의 흥미진진한 경기를 펼치고 있었다. 프로그램의 주인공 블랙퀸즈는 신생이지만 예삿팀이 아니었다. 추신수 감독과 박세리 단장을 필두로 윤석민 투수코치, 이대형 주루코치 등 화려한 코치진을 자랑했다. 블랙퀸즈의 선수 15명도 대부분이 테니스, 배드민턴, 핸드볼 등 각 종목에서 국가대표를 지낸 레전드 선수들이 주축이었다. 이에 맞선 올인도 만만치 않았다. 2022년 디비전 리그 영남권 우승, 2023년 전주시 클럽 대항 야구대회를 비롯해 그 해만 준우승 4차례를 기록한 강호였다.


‘부산올인여자야구단’ 선수들이 블랙퀸즈와의 시합을 마치고 상대팀 코치와 기념촬영하고 있다. ‘부산올인여자야구단’ 제공 ‘부산올인여자야구단’ 선수들이 블랙퀸즈와의 시합을 마치고 상대팀 코치와 기념촬영하고 있다. ‘부산올인여자야구단’ 제공

올인은 얼마나 연습을 많이 했는지 내야 수비가 아주 탄탄했다. ‘슈퍼소닉’이라는 별명을 가진 올인의 1번 타자 박명숙 선수는 발이 무척 빨랐다. 전직 태권도 국가대표 선수로 소개되었는데, 어쩌다 야구장에서 뛰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선발투수인 이혜영 선수는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는 감독이면서 6회까지 홀로 완투하며, 3번 타자로 1인 3역을 소화했다. 주자 견제 동작도 알품이었다. 2008-2010 국가대표상비군 투수에 2025 여자 야구 올스타라는 경력은 확실히 달랐다.

“올인의 힘을 보여줘!”라는 선수들의 응원 구호는 흥겨웠고, ‘롯데가 못한 거 올인이 하자!’는 관중들의 응원 문구도 재미 있었다. 이날 경기는 6회까지 양팀이 초박빙 접전을 펼친 결과, 올인이 블랙퀸즈에 3 대 4로 아쉽게 역전패하고 말았다. 원정경기에서 일방적인 응원과 편파 중계(?)에도 주눅들지 않고 잘 싸운 부산 올인 선수들을 격려해 주고 싶었다.


■남자에 비해 100년 늦게 출발

한국 야구는 1904년 미국 선교사들이 가르치며 시작되었다. 하지만 한국 여성 야구는 100년 가까이 늦게 시작했다. 대한야구선수협회에 정식으로 등록한 첫 여성 야구 선수는 안향미 씨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야구를 시작한 안 씨는 고등학교에 가서도 계속 야구가 하고 싶어 남녀공학인 덕수정보고(현 덕수고) 문을 두드렸다. 여자 체육 특기자 종목에 야구가 없을 때라 안 씨 가족은 규정을 고쳐 달라고 교육청에 요구했다. 우여곡절 끝에 안 씨는 야구 특기생으로 덕수정보고에 입학한다.

안 씨는 3학년 때인 1999년 대통령배전국고교야구대회 배명고와의 준결승전에서 선발투수로 등판해 여자로서 공식 경기에 나선 첫 선수가 되었다. 안 선수는 2002년 일본 사회인 야구팀에 입단해 투수와 3루수로 2년간 활동했다. 2004년에는 대한민국 첫 여성 야구팀인 ‘비밀리에’를 창단했다. 비밀리에(Bimylie)라는 이름은 ‘Baseball is my life’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들었다.


올인 선수들은 일요일마다 모여서 연습한다. ‘부산올인여자야구단’ 제공 올인 선수들은 일요일마다 모여서 연습한다. ‘부산올인여자야구단’ 제공

부산에서는 빈 여자야구단이 같은 해 한 달 뒤에 전국에서 2번째로 창단됐다. 올인은 그 뒤를 이어 2004년에 창단했다. 한국여자야구연맹(WBAK)이 출범해 아마추어 여자 야구 활성화 발판을 마련한 것은 2007년이었다. 70년 만에 부활한 미국 여자 프로야구 리그(WPBL)에 올 시즌 김현아(보스턴), 김라경(뉴욕), 박주아(샌프란시스코)가 입단해 한국인 최초의 여자 프로야구 선수가 되었다. 실업팀 하나 없이 이루어 낸 기적 같은 일이었다.

한국에서 여성이 야구로 성공하기는 매우 어렵다. 초등학교와 리틀야구단에는 여학생도 입단할 수 있지만, 중·고·대학에 학교 소속 여성 야구부가 그동안 전무했기 때문이다(2024년 창원의 마산무학여중·고에서 전국 최초로 여자 야구부를 창단했다). 그 빈자리를 대신해서 전국 49개의 여자 사회인 야구팀에서 1100명이 넘는 여자 야구 선수들이 뛰고 있다.


■야구는 사람이 먼저인 운동

지난 8일 부산 북구 화명생태공원 리틀야구장에서 연습을 앞둔 올인 선수들을 만났다. 처음 만나는 선수들이었지만 방송을 본 덕분인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혜영 감독도 “식당에서 모르는 분이 자신을 알아본 뒤 우리 밥값을 계산하고 가서 당황했다”라고 재밌는 경험담부터 이야기했다. 다른 선수들도 방송이 나간 뒤부터 많이 알아보고 인사도 받는다고 했다. 덕분에 여자 야구에 관심이 늘며 신입 단원 모집하기가 수월해졌다. 등록 선수가 21명인 올인에는 지난 6개월 동안 신입이 7명이나 들어왔다.

올인은 20~40대가 주축이지만 10대와 50대도 1명씩 있다. 경찰, 교수, 교사, 운동 처방사, 미용사, 고등학생 등 직업이 다양하다. 사실 남자도 야구가 쉽지 않지만, 야구 하는 여성은 이중고를 겪는다. 일요일마다 모여서 연습하거나 대회에 나가니 가족들도 처음에는 이해를 못 했다. “여자가 무슨 야구 한다고?”나 “가족 행사에 당신이 빠지면 어떡하느냐”라는 소리를 듣기 일쑤였다. 시간이 지나 지금은 가족들이 야구에 대한 열정을 인정해 주고 운동장에도 가끔 나와 응원과 격려를 보내기도 한다.


올인 트레이너가 허리 치료를 하고 있다. ‘부산올인여자야구단’ 제공 올인 트레이너가 허리 치료를 하고 있다. ‘부산올인여자야구단’ 제공

올인 선수들에게 야구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 물었다. 18년 차 야구인 지미정 코치는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지만 주로 개인 운동을 했다. 야구라는 팀 운동을 하면서 매번 새로운 걸 배우고 있다. 개인 운동은 나만 잘하면 되지만, 야구는 내가 실수하는 부분을 다른 팀원이 메꿔주면서 같이 잘하는 매력이 있다”라고 말했다. 발 빠른 박명숙 선수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박 선수는 “야구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서로 응원해 주는 데서 희열을 많이 느낀다. 아무리 야구가 좋다 해도 사람이 좋지 않으면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진주가 직장인 박 씨는 매주 1시간 반 넘게 운전해 부산까지 와서 훈련에 참여한다.

입단 6개월 차인 정혜미 선수는 “야구는 내가 실수하거나 삼진을 먹어도 응원해 주고, 다른 선수가 안타 치면서 내 실수를 덮어주는 데서 희열을 느끼게 된다. 우리 사회는 개인주의가 만연해 있지만, 야구하는 일요일만큼은 나는 개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감독도 “구기 종목 중에 사람으로 인해 점수가 나는 건 야구밖에 없다. 농구든 축구든 공이 들어가면 점수가 난다. 그런데 야구는 사람이 들어와야 점수다. 그래서 사람이 먼저인 운동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가 야구장으로 이어지며 좋은 성적으로 나타나는 모양이다.


올인 선수들이 부산 북구 화명생태공원 리틀야구장에서 몸을 풀고 있다. 올인 선수들이 부산 북구 화명생태공원 리틀야구장에서 몸을 풀고 있다.

문득 남자도 코치나 스태프로 활동할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이 감독은 “야구를 잘하려면 남자 코치가 필요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남자 코치가 팀 전체에 녹아들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한데, 남자들은 결과가 빨리 나오길 바라는 경향이 있어 우리와 결이 좀 다르다. 우리는 하나씩 만들고, 한 명씩 품고 가야 하기에 기다려줘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남자 코치는 쉽게 받지 않는다고 했다. 곰곰이 생각해 볼 대목이었다.

올인의 미래도 궁금했다. 올인의 올해 목표는 우승팀에게 주는 감독상이었다. 이 감독은 “집에 트로피는 자꾸 쌓이는데 감독상 트로피가 없어서 아쉽다”라고 말했다.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계획이었다. 중학교 때까지 리틀야구를 했던 고2인 강예윤 양이 팀 막내다. 계속 야구해서 국가대표와 메이저리거가 되는 게 꿈이라고 했다.

야구는 아무리 뛰어난 투수가 있어도 모두를 삼진으로 잡지 않는 이상 동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야구는 누구 한 명이 잘해서 이길 수 있는 경기가 아니기 때문에 어렵다. 올인 선수들은 한결같이 “야구는 사람이 먼저인 운동이고, 제일 큰 매력은 함께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요즘 MZ들은 함께 해본 경험이 없어, 오히려 그걸 갈망한다니 의외였다. 젊은 여성들은 야구장에서 한 번 유니폼을 입으면 소속감, 연대감, 그리고 여기서는 안전하다는 생각까지 들어서 쉽게 나가지 않는다. 그래서 올인 선수들은 일요일 아침에 눈 뜨면 무조건 유니폼 입고 야구하러 나간다. 글·사진=박종호 기자


부산올인여자야구팀 로고. 부산올인여자야구팀 로고.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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