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부마민주항쟁, 헌법에 새겨야 할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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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상임이사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의 거리에서 울려 퍼진 함성은 유신독재의 어둠을 흔들었다. 청년 학생과 평범한 시민들이 함께 외친 “유신철폐, 독재타도”의 외침은 두려움을 넘어선 용기의 언어였다. 그것이 바로 부마민주항쟁이다. 18년에 걸친 박정희 군사독재와 유신 체제 종식을 이끌어낸 위대한 시민항쟁이자 민중항쟁. 이 항쟁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을 예비했고, 1987년 6·10민주항쟁의 바람이 되었으며, 결국 2016년 ‘촛불혁명’으로, 그리고 2024년 말부터 2025년까지 이어진 ‘빛의 혁명’의 마중물이었다. 무엇보다 부마민주항쟁은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의 역사에서 ‘군부독재를 종식시킨 최초의 항쟁’이라는 점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위대한 전환점이자, 민주공화국 정신의 뿌리였다.

1987년 6·10항쟁의 승리로 우리는 ‘87년 헌법체제’를 갖게 되었고, 그것의 정치적 결과물이 대통령직선제였다. 또한 그것은 유신 체제 이후 오랜 기간 빼앗긴 ‘국민주권을 되찾은 민주화 역사의 시발점’이었다. 또한 6월 항쟁의 승리는 헌법전문에 ‘임시정부’와 ‘4·19혁명’을 새길 수 있게 해주었다.

그렇지만 이후 우리 역사는 여러 번 굴곡을 겪었고, 마침내 2016년 ‘촛불혁명’과 2024~25년 ‘빛의 혁명’을 거치면서, 다시 대두한 반헌법·반민주 세력으로부터 ‘형해(形骸)화’된 국민주권을 되찾을 수 있었다. 두 번에 걸친 대통령 탄핵 사태는 우리 민주주의의 허약한 토대와 시민 항쟁의 위대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헌법정신과 가치의 명시적 선언이 바로 헌법전문이라는 점에서 6·10민주항쟁의 또 하나의 성과는 헌법전문에 새겨진 ‘임시정부’와 ‘4·19혁명’이었다. 이제 두 번의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낸 민주항쟁의 성과물은 부마민주항쟁,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을 헌법전문에 새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헌법전문에는 아직 그 이름들이 없다. 국가의 근본 가치와 역사적 의미를 명시하는 헌법전문에 4·19혁명과 함께 이들을 새기는 것은 민주주의 연대기에서 공백으로 남아 있는 한 페이지를 제대로 완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부마민주항쟁’을 헌법에 새기는 일은 단지 지역의 명예를 위한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역사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서사를 완성하는 일이다. 헌법전문은 한 나라의 정신적 좌표다. 거기에는 국민이 어떤 고통을 감내하며 어떤 자유를 쟁취했는지가 새겨져야 한다. 부마민주항쟁은 서슬 퍼런 군부독재의 총칼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은 시민의 용기, 그리고 “국가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던 시민의 각성이 응축된 사건이다. 이 항쟁이 있었기에 유신의 종말이 가능했고, 민주주의의 새 아침이 올 수 있었다. 따라서 부마민주항쟁의 헌법전문 수록은 과거를 기념하기 위한 행정적 조치가 아니라,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의 역사와 민주주의의 원형을 복원하는 헌정사적 책임이다.

문재인 전대통령, 후보 시절의 이재명 대통령, 우원식 국회의장과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와 같은 주요 정치 지도자들과, 국회와 각 지방의회, 그리고 수많은 시민사회가 이미 “부마민주항쟁,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의 헌법전문 수록”을 촉구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 지난해 5월 18일 개헌입장 발표문에서 “더 촘촘한 민주주의 안전망으로서의 헌법을 구축할 때”라며 “부마항쟁과 6·10항쟁, 촛불혁명과 빛의 혁명으로 이어진 국민 승리의 역사가 헌법에 수록될 수 있도록 사회적 논의를 시작하자”고 말했다(‘문화일보’, 2025.5.18.). 그리고 더 나아가 최근 3월 17일 국무회의에서 5·18을 헌법전문에 넣고 동시에 “부마항쟁도 헌정사에 의미 있는 것이기 때문에 같이 하면 형평성도 맞고 논란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2026.3.17. 한겨레). 또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부마민주항쟁은 민주주의의 원형이며, 우리 헌법의 서두에 반드시 기록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오마이뉴스’, 2015.10.13.).

우리가 헌법 속에 부마민주항쟁을 새기는 순간, 국가는 당시 시민의 희생을 공식적으로 기억하고, 그 정신을 미래 세대에 계승하게 될 것이다. 부마민주항쟁은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여전히 우리 안에서 억압에 맞서는 양심의 목소리로 살아 있다. 역사는 잊힌 이름 위에 세워지지 않는다. 4·19, 5·18, 6·10과 함께 헌법 속에 새겨진 부마민주항쟁의 이름이야말로,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역사 속에 올바로 자리매김하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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