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뺑덕 어멈과 행정통합, 그리고 정주영 정신

김길수 기자 kks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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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수 중서부경남본부장

뺑덕 어멈의 변명, 오늘의 풍자
17년째 제자리, 반복되는 핑계
수도권 과밀화와 지방 소멸 위기
정주영의 도전 정신이 필요한 때

“삐쭉하면 빼쭉하고~~~, 빼쭉하면 삐쭉하고~~~.” 이렇듯 판소리 심청가 속 뺑덕 어멈의 변명은 끝이 없다. 그녀는 늘 “내 잘못이 아니오”라는 말로 책임을 떠넘기고 억지와 거짓으로 상황을 모면한다. 관객은 그 억지스러운 말에 웃음을 터뜨리지만, 그 웃음 뒤에는 씁쓸한 교훈이 남는다. 공동체 속에서 신뢰를 잃은 사람이 어떤 말로를 맞게 되는지, 뺑덕 어멈은 풍자로 보여준다. 그런데 이 풍자는 단지 옛 이야기 속에만 머무는 것일까. 오늘날 수도권 과밀화 해소와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시작된 광역자치단체 간 행정통합 논의를 들여다보면, 뺑덕 어멈의 그림자가 여전히 짙게 드리워져 있음을 느끼게 된다.

우리나라 광역단체 간 행정통합 논의는 2009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는 부산·울산·경남을 통합해 메가시티를 만들자고 주장했다. 그는 “동남권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행정구역 개편을 포함한 실질적인 대통합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17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부울경 메가시티 논의는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고 있다. 메가시티 형태가 행정연합이냐, 행정통합이냐를 두고 ‘옥상옥’ 논란을 빚었다. 조직이 비대해지고 권한이 중복돼 비효율이 생긴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는 마치 뺑덕 어멈이 “그건 다 심청이 탓이지”라며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과 닮았다. 실제로는 권한 조정과 제도 설계를 통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임에도, ‘옥상옥’이라는 말은 편리한 핑계처럼 소비된다. 문제 해결 의지보다는 현상 유지를 위한 변명에 가깝다.

또 다른 단골 핑계는 “주민투표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주장이다. 물론 민주적 정당성 확보는 중요하다. 그러나 때로는 이 말이 시간을 미루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지방선거가 가까워지면 “시간이 촉박하다”는 이유가 등장한다. 주민들에게 충분한 정보와 토론의 기회는 제공하지 않으면서, 주민투표를 핑계로 결정을 미루는 모습이다. 앞뒤가 맞지 않는 변명을 이어가는 뺑덕 어멈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수도권 과밀화는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수도권에는 인구와 산업이 과도하게 집중되면서 교통·주거·환경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 반면 지방은 인구 감소와 산업 공동화로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균형발전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국가적 과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광주·전남을 제외하면 지방의 광역자치단체들은 서로의 이해관계에 묶여 행정통합 논의를 쉽게 진전시키지 못하고 있다. “중앙정부 지원이 불확실하다”는 말도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지원을 요구하면서도 구체적인 설계와 결단을 미루는 태도 역시 또 다른 변명처럼 들린다.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바로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이다. 그는 “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는 도전 정신으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인물로 평가받는다. 울산 조선소 건설을 위해 영국 은행을 설득할 때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 지폐를 꺼내 보이며 “우리는 이미 오래전 철갑선을 만든 민족”이라고 말했던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작은 이해관계에 머물지 않고 더 큰 미래를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다.

행정통합은 그 과정에 늘 난관이 따른다. 지역마다 이해관계가 다르고, 정치권은 표 계산에 민감하며, 주민들은 정체성 문제로 반발하기도 한다. 그러나 바로 이런 복잡한 현실 속에서 지도자의 결단과 추진력이 요구된다. 정주영의 정신은 국가적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핑계로 시간을 허비할 것인지, 아니면 비전을 향해 나아갈 것인지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

뺑덕 어멈의 변명은 결국 공동체 속에서 신뢰를 잃고 고립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행정통합 논의도 마찬가지다. 변명과 핑계로 시간을 허비한다면 주민들은 행정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되고, 지역 발전의 기회도 사라진다. 중요한 것은 핑계가 아니라 해결이다. 지금까지의 행정통합 논의는 마치 판소리 한 대목처럼 반복과 변주를 이어왔다. “효율성이 의문이다”라는 대목이 나오면 곧이어 “주민 동의가 필요하다”는 후렴이 이어지고, 다시 “중앙정부 지원이 불확실하다”는 변주가 반복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문제 해결의 노래라기보다 책임 회피의 변명에 가깝다.

결국 정치가 뺑덕 어멈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행정통합은 또다시 제자리걸음을 할 것이다. 지도자 결단과 비전이 없는 곳에서는 주민의 신뢰도, 지역 발전의 기회도 사라진다. 수도권 과밀화 해소와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앞에 두고, 지역 정치인들이 뺑덕 어멈의 변명 대신 정주영의 도전 정신을 배워야 할 때다. 그렇지 않다면 행정통합 논의는 끝없는 변명 속에서 표류할 수밖에 없다. 6·3 지방선거 후보들의 공약을 꼼꼼하게 챙겨봐야할 이유다.


김길수 기자 kks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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