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칼럼] 용기는 어디에서 오는가
명수현 부산대 국어교육과 강사
영화 '왕과 사는 남자' 관객에 큰 반향
단종, 세인들의 인정과 의리에 용기
정의롭지 못한 권력과 맞설 의지 다져
엄흥도, 목숨 걸고 단종 시신 수습 장례
소포클레스 비극 '안티고네' 연상시켜
'국가 명령’‘인간 도리' 우선 가치 질문
어느덧 개봉 한 달이 훌쩍 지난 ‘왕과 사는 남자’의 인기가 좀처럼 식을 줄 모른다. 노산군으로 강등돼 강원도 영월로 유배된 단종과 엄흥도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머지않아 1500만 관객을 돌파하리란 기대도 곳곳에서 심심찮게 들린다. 누구에게나 익숙한 소재의 영화가 오늘날 관객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이 작품이 인정과 의리라는 오랜 가치를 과연 누가 지켜냈는지 새롭게 묻고 있기 때문이다.
계유정난을 일으켜 왕권을 찬탈한 수양대군의 정치적 야욕, 그리고 단종과 그 곁사람들의 비극적 희생을 다룬 서사물은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다. 그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은 춘원 이광수의 〈단종애사〉일 것이다. 그는 1928년 ‘동아일보’에 이 작품을 연재하기 시작하며 단종을 둘러싼 역사적 사실의 핵심이 ‘인정과 의리’에 있다고 말했다.
인정과 의리.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다. 〈단종애사〉를 필두로 수많은 소설과 영화, 드라마는 어떤 역사적 인물이 인정과 의리를 지켰는지, 혹은 누가 그것을 저버렸는지에 주목했다. 권력을 얻기 위해 왕이자 어린 조카인 단종을 죽음으로 내몬 수양대군과 한명회는 신의를 저버린 자들로 재현되었다. 반면, 단종의 복위를 염원하며 목숨을 바쳤던 사육신, 도의가 사라진 세상을 등졌던 생육신은 숭고한 가치를 끝끝내 지켜낸 이들로 널리 칭송받았다. 국어 시간 ‘수양산 바라보며 이제를 한하노라’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사육신 성삼문의 절절한 시조를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런데 ‘왕과 사는 남자’는 이러한 인정과 의리라는 가치를 실천한 주체를 전혀 다른 공간에서 찾는다. 영화는 단종 복위 운동에 가담한 이들을 고문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이 내지르는 처절한 비명을 들으며 식음을 전폐하는 어린 왕 단종이 등장한다. 창백한 혈색, 갈 곳 잃은 눈동자에는 소년 왕의 두려움과 절망, 비탄이 뒤섞여 있다. 이윽고 그는 왕권을 잃은 채 궁궐과는 멀리 떨어진 청령포로 내몰린다. 작품은 한양의 권력 다툼 대신 외딴 유배지와 그곳에 깃들어 살아가는 이들을 서사의 전면으로 끌어낸다.
극 중에서 청령포를 유배지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운 이는 광천골 촌장 엄흥도다. 유배된 한양의 고관대작을 통해 마을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고 자식에게 글공부를 가르쳐 입신양명의 꿈을 이루겠다는 지극히 속되고 사사로운 심산이었다. 하지만 그가 맞이한 유배자는 처절한 권력 다툼에서 패배한 어린 소년 이홍위였다. 기대는 한순간 낙엽처럼 부스러졌다. 그렇지만 엄흥도와 광천골 사람들은 모든 것을 잃은 그를 위해 정성스러운 밥상을 마련한다. 왕과 무지렁이 백성이 마주 앉은 밥상. 그곳에서 맺어진 친밀한 관계와 오가는 사사로운 이야기로부터 인정과 의리가 새롭게 싹튼다.
영화는 역사의 가장자리로 내몰려 잊힌 세인들의 사사로움에 눈길을 준다. 그리고 이홍위는 그들이 보여주는 인정과 의리로부터 정의롭지 못한 권력과 맞서 싸울 용기를 얻는다. 공허하고 무력했던 눈빛에는 다시금 강인한 의지와 결기가 감돈다. 용기를 얻은 것은 이홍위만이 아니었다. 엄흥도 역시 거대한 권력 앞에 마주 서기를 결단하고 그를 따라나선다.
왕위를 되찾으려는 노력은 무산되고 결국 단종은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 그러나 엄흥도의 용기는 그치지 않는다. 단종의 시신을 거두는 자는 엄벌에 처할 것이라는 경고에도 차가운 강물에 떠내려가는 시신을 건져 올려 장례를 치른다. 그 장면은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를 떠올리게 한다. 오이디푸스의 딸 안티고네는 조국 테베를 배신한 오빠 폴뤼네이케스가 전투에서 사망하자, 배신자의 장례를 금지한 국법을 어기고 그의 시신을 매장하려 했다. 그 일로 안티고네는 감옥에서 죽음을 맞는다. 이 비극은 국가의 명령과 인간의 당위적 도리 가운데 무엇이 우선하는가를 날카롭게 질문한다. 엄흥도가 취한 비범한 행동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한낱 산골 촌장에 불과했지만, 인간이라면 마땅히 따라야 할 숭고한 신의와 도리를 지키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어리고 쇠약한 단종의 모습은 언뜻 오늘날 젊은 청년들을 떠올리게 한다. 강파르고 불안정한 현실에 내던져진 청년들의 모습 말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역사를 바꾼 위대한 영웅들의 거대 서사가 아니다. 오히려 힘겹고 숨 가쁜 삶을 버텨 내게 하는 소박하고도 친밀한 인정과 의리의 이야기일 것이다. ‘왕과 사는 남자’가 많은 관객에게 울림을 주는 이유도 여기 있다. 역사는 마주 앉은 밥상처럼 기록되지 못한 평범한 존재들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서 이홍위와 엄흥도가 보여준 진정한 용기가 비롯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