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축복과 그늘, 석유
2020년 4월 20일(현지시간) 뉴욕상품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5월 인도분 가격이 배럴당 마이너스 37.63달러에 거래를 마감하는 희한한 일이 발생했다. 사상 처음이었다.
코로나19가 터져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매우 불확실한 상황에서 원유 수요가 급감했고 재고는 넘쳐나면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매수세가 실종됐다. 물론 마이너스라고 해서 돈을 받고 원유를 수입한 것은 아니었고, 선물거래의 특성과 국제 원유시장 구조 때문에 나타난 단기적 현상이었다. 당시 6월 인도분 가격은 배럴당 20달러였다.
하지만 너무 급격한 가격 변동이 발생하자 국내에서는 원유 선물 상장지수증권(ETN)에 대해 거래를 중단시키는 등 시장이 엄청난 혼란을 겪었다. 4월 21일 부산지역 주유소 경유가격은 L당 974원까지 떨어졌다.
당시 상황은 원유를 100% 수입하는 우리로서는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되레 경제 위기가 올 수 있다며 불안감에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중동 사태로 WTI는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다가 다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가격이 뚝 떨어지는 등 원유 가격이 2020년 못지 않게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더구나 호르무즈해협에 이란이 기뢰를 풀었다는 얘기도 흘러나오면서 전망 자체가 무의미하게 됐다.
석유는 지구온난화 주범이라는 시선이 있다. 생산과 소비 과정에서 탄소를 뿜어내면서 기후변화를 촉발시킨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태양광 풍력 등 대체에너지 시장도 급부상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에너지기구(IEA) ‘월드 에너지 아웃룩’ 보고서에는 원유 수요는 2050년까지 꾸준히 증가하는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특히 석유화학 제품 원료인 나프타 수요가 견고해 원유의 지위는 매우 공고하다.
폴리에스테르 등 합성섬유로 제작된 옷은 지구상에 판매되는 의류의 70%다. 반도체를 깎고 씻고 보호하는 데 쓰는 포토레지스트와 각종 용제도 모두 석유화학 제품이다. 석유 없이는 스마트폰도 없다는 설명이다. 항공, 농업, 자동차 등 경제를 떠받치는 많은 산업이 원유에 의존하고 있다. 세계 인구 82억 명 지탱이 가능한 것도 사실상 석유 때문이다.
인류는 상당 기간 석유에 의존해 살아가야 할 운명이다. ‘석유시대의 종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김덕준 세종취재부장 casiopea@
김덕준 기자 casiope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