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의 밤’ 제대로 알고 푹 잘 시간입니다
청소년·청년기엔 대부분 생활습관 원인
‘주말 몰아자기’ 수면 리듬 악화 불러
중장년기 심한 낮 졸림, 단순 불면 아냐
수면 질 저하, 당뇨병 발생·악화 영향
수면 무호흡증, 치명적 질환 부를 수도
‘점심 낮잠’ 3시 전 20~30분으로 짧게
저녁 운동, 잠들기 2~3시간 전 마쳐야
영양제 도움 되지만 ‘잠 기초’ 대신 못 해
클립아트코리아
일생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수면. 하지만 현대인 5명 중 1명은 제대로 잠들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수면장애 환자도 덩달아 늘고 있다. 2020년 처음으로 100만 명을 돌파한 이후 2023년 130만 명에 육박한다. 불면의 밤을 끝내는 방법, 과연 있는 것일까.
■잠 못 드는 이유, 연령대별로 달라
‘잠이 보약’이란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잠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몸과 뇌가 회복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잠을 잘 자면 집중력과 기억력이 향상되고 행복감도 커진다. 면역력이 강화되는 것은 물론 심뇌혈관 질환, 신경계 퇴행성 질환, 당뇨병 등을 예방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고신대병원 김명국 신경과 교수는 “만성 피로를 이겨내고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질 좋은 수면을 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렇듯 중요한 잠이지만 인구의 20% 이상이 수면장애를 경험하고 있다. 젊은 사람보다 50대 이상 중노년층에서, 남성보다 여성에서 더 자주 볼 수 있다. 스트레스 증가와 고령화 추세가 주된 원인이긴 하지만 연령대별로 양상이 크게 다르다.
소아·청소년기와 20~30대 청년층의 수면 문제는 대부분 생활습관에서 비롯된다. 유럽수면학회 수면의학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부산성모병원 이비인후과 고태경 과장은 “이 시기에는 신체적으로 가장 좋은 수면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늦은 밤 스마트폰 사용, 불규칙한 취침 시간 등이 수면 리듬을 깨뜨린다”고 지적했다.
특히 학업량이 많은 청소년의 경우 ‘주말 몰아자기’는 피로 해소는커녕 수면 리듬을 더 악화시킨다. 평일 기상 시간보다 2~3시간 늦게 일어나면 생체시계가 시차를 겪은 것처럼 인식해 ‘사회적 시차’ 현상이 발생하는 탓이다.
40~60대 중장년층에서는 수면이 점점 얕아지고 자주 깨는 현상이 나타난다. 밤중에 자주 깨거나 충분히 잔 것 같은데도 낮에 졸림이 심하다면 단순 불면이 아닐 수 있다. 폐쇄성 수면무호흡증도 흔히 볼 수 있는데, 깊은 잠을 자지 못해 아침에 깨어나서도 개운하지 않고 머리가 무겁다. 만성피로와 주간졸림, 집중력과 기억력 감퇴 등이 뒤따른다. 특히 여성은 완경 이후 호르몬 변화가 심해져 깊은 잠이 줄고 자주 깨는 경우가 많다. 김 교수는 “수면무호흡증이 있으면 산소농도의 저하로 인해 고혈압, 심근경색, 뇌졸중 등의 유병률을 높일 수 있다”며 “수면의 질이 낮아지면서 인슐린 저항성을 높여 당뇨병의 발생과 악화에도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덧붙였다.
60대 이상 노년기에는 수면이 전반적으로 얕아지고 쉽게 깨며, 잠드는 시간과 깨는 시간이 점점 앞당겨지는 경향이 나타난다. 꿈을 행동으로 옮기는 REM 수면 행동장애 등 질환과 연관된 수면 변화도 나타날 수 있다. 특히 새벽에 너무 일찍 깨고 다시 잠들지 못해 불편을 겪는다면 단순 노화가 아닌 ‘앞당겨진 수면위상증후군’일 수 있다.
■숙면에 관한 오해와 진실
잠에 대한 오해는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
‘코골이는 피곤해서 그렇다’는 것이 대표적인 오해다. 고 과장은 “코골이와 수면무호흡증은 단순히 시끄러운 잠버릇이 아니라 수면의 질을 근본적으로 무너뜨리는 대표적인 수면장애”라고 단언했다. 수면 중 기도가 막히면서 숨이 잘 쉬어지지 않을 때마다 뇌는 위험 신호를 감지해 잠에서 순간적으로 깨어난다. 이러한 미세 각성이 밤새 수십~수백 번 반복되면 깊은 수면과 REM 수면이 충분히 유지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유럽수면학회에 이어 국제수면학회에서 수면장애 전문의를 취득한 고신대복음병원 김주연 수면센터장은 의료 전문 채널 등을 통해 수면무호흡증의 심각성을 경고하기도 했다. 수면 중 기도가 막혀 체내 산소 농도가 급격히 떨어지면 뇌는 이를 생명 위협으로 인식해 교감신경을 과도하게 흥분시키는데, 쉬어야 할 심장이 격렬하게 운동하게 되고 혈관이 수축하며 혈압이 치솟는 과정이 반복되면 심부전, 심근경색 등 치명적인 심혈관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점심 후 낮잠은 무조건 나쁘다’는 것도 잘못됐다. 점심 식사 후 졸음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20~30분 이내로 짧게, 오후 3시 이전에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침대보다는 소파나 의자에 기대어 가볍게 눈을 붙이는 정도가 좋다. 단, 40분 이상 자면 깊은 수면 단계로 진입해 깨면 머리가 멍해지는 ‘수면 관성’이 나타나기 쉬워 주의해야 한다.
‘술은 잠을 잘 오게 한다’에 대한 대답 역시 ‘아니오’다. 알코올은 잠드는 시간을 앞당길 수는 있지만 밤새 깊은 수면과 REM 수면을 줄이고 자주 깨게 만들어 전체 수면의 질을 떨어뜨린다. 특히 새벽녘 각성이 잦아지고 코골이나 수면무호흡이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흡연 역시 니코틴의 각성 효과로 잠들기 어렵게 만들고, 밤사이 금단 증상으로 자주 깨는 원인이 된다. 고 과장은 “음주는 취침 최소 3~4시간 전에는 피하고, 매일 마시던 술을 일주일에 하루 이틀 쉬는 것만으로도 수면의 질이 개선된다“며 “흡연은 취침 전 마지막 담배 시간을 점점 앞당기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자기 전 따뜻한 우유 한 잔이 숙면에 좋다’는 건 부분적으로 맞는 말이다. 우유에는 수면 호르몬 멜라토닌의 재료인 트립토판이 들어 있지만, 자기 전에 마신다고 멜라토닌 합성이 직접 증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멜라토닌은 낮 동안 햇빛 노출과 세로토닌 생성 과정을 통해 준비되기 때문에 트립토판이 풍부한 음식은 저녁보다 아침이나 낮에 섭취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다만 우유는 공복감을 완화하고 따뜻하게 마시면 긴장을 풀어주는 효과가 있어 심리적 안정감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
■잠을 잘 자려면 어떻게
잠을 잘 자기 위해선 연령대별로 관리를 달리해야 한다. 신체적으로 가장 좋은 수면 구조를 가지고 있는 소아·청소년을 비롯한 청년기는 기본적인 수면 습관 관리를 하는 것만으로도 수면의 질을 높일 수 있다. 고 과장은 “주말 몰아자는 습관이 있다면 기상 시간을 평일보다 최대 1시간~1시간 30분 이내로 늦추고, 수면 보충이 필요하면 늦잠보다 토요일 밤 취침 시간을 30~60분 앞당기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조언했다.
중장년기엔 수면무호흡증과 같은 숨 문제를 놓치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얼마나 오래 자느냐보다 얼마나 깊이 자느냐가 더 중요한 시기인 만큼 코골이나 낮 졸림이 있으면 수면다원검사를 고려하는 한편 체중 관리와 음주 조절이 필수다. 노년기에는 멜라토닌 생성을 위해 아침에 햇빛을 충분히 쬐고 너무 빨리 잠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 수면제는 단기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의존이나 내성의 위험이 있어 보조적 수단으로 사용해야 한다.
무엇보다 수면의 질을 좌우하는 핵심은 생활 습관이다. 김 교수는 구체적인 생활습관 개선법을 제시했다. 잠자리에 누워 20분 이상 잠이 오지 않으면 억지로 누워 있지 말고 침실에서 나와 독서 등 가벼운 활동을 하다가 잠이 오면 다시 침실로 들어가는 식이다. 조깅, 걷기, 자전거, 수영 등 규칙적인 유산소 운동과 팔굽혀펴기, 스트레칭도 불면증 개선에 좋다. 김 교수는 “주 3회 이상 30분~1시간 정도의 꾸준한 운동이 효과적”이라며 “약간 숨이 차는 정도의 중강도가 적당하며, 저녁 운동은 잠들기 2~3시간 전에 마치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영양제도 도움이 된다. 멜라토닌을 비롯해 비타민 B, 마그네슘, 테아닌, 감태추출물, 락티움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마그네슘은 근육 이완과 신경 안정에, 철분은 하지불안증후군이 있고 철 결핍이 있는 경우 도움이 된다. 카페인이 없고 긴장을 완화하는 캐모마일차, 루이보스차, 대추차, 라벤더차 등도 숙면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영양제는 수면의 ‘기초’를 대신할 수 없으며, 생활 습관 관리와 함께 보조 수단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성이다. 고 과장은 “수면은 건강의 결과이자 출발점”이라며 “수면 문제를 겪고 있다면, 영양제나 수면 보조제에 의존하기 전에 먼저 생활 습관과 수면 리듬을 점검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