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읽기]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드는 일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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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 이름은 코리안 민트/홍은택

쌀을 100번씩 문질러 씻고, 찐 밥을 펼쳐 식히고, 삭히고, 거르고, 옮기고, 따르며 수양하듯 빚는다. 실패하면 모두 버려야 한다. 뭘 만드는지 눈치챈 이들도 있겠다. 바로 술 만들기, 양조이다.

이 책은 생각하고 그걸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로 만드는 일을 했던 사람이 완전히 다른 세계, 양조에 도전하는 이야기이다. 마침 그 사람이 꽤 유명해서 화제가 됐다.저자 홍은택은 1980년대 말 동아일보 기자로 시작해 마흔에 퇴사를 한 후 미국 라디오 PD, 번역가, 작가, 인문사회학 교수, 편집국장, 콘텐츠 전문가, 네이버 서비스 운영 총괄, 카카오커머스 대표 등을 지냈다. 그는 책상물림, 관념에 사로잡혀 살아온 이들이 흔히 품는 동경이 목공과 그림인데, 자신은 도저히 그런 재주가 없어 근육의 움직임을 실현할 수 있는 종목으로 양조를 선택했다고 한다.

18개월 동안 7평 방에서, 100여 종의 술을 빚으며 양조 지식부터 술과 관련된 세계사, 식물학, 문화의 인문학을 섭렵했다. 그동안 전통주 소믈리에, 우리 술 제조 관리사 등 자격증도 취득했고 수많은 실패 끝에 영어로 ‘코리안 민트’, 한국어로 ‘방아잎’이라고 불리는 식물을 주재료로 한 과하주를 탄생시켰다.

술은 발효와 숙성의 시간이 꼭 필요하다. 아무리 조바심을 내도, 엄청난 권력이 있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다가 뒤처져 버리는 오늘날의 흐름과 완전히 반대다. 시간을 뒤쫓는 게 아니라 시간이 따라와 줘야 하는 세계, 자기만의 속도로 창조할 수 있는 세계가 양조라고 말한다. 양조 과정을 담은 책이지만, 그 과정이 인생과 닮았다. 홍은택 지음/브레드/240쪽/2만 2000원.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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