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재정 분권 등 핵심 빠진 행정통합법 처리 서두를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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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회의서 통합 특별법 처리 예정
여야 갈등 격화… 속도보다 숙고 먼저

12일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 회의에서더불어민주당 윤건영 간사(오른쪽)와 국민의힘 서범수 간사가 충남대전, 전남·광주, 대구경북 지역의 행정통합을 위한 특별법과 관련, 얘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12일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 회의에서더불어민주당 윤건영 간사(오른쪽)와 국민의힘 서범수 간사가 충남대전, 전남·광주, 대구경북 지역의 행정통합을 위한 특별법과 관련, 얘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지방 행정체계를 재편할 행정통합 특별법이 국회에서 급물살을 타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23일 대전·충남, 광주·전남, 대구·경북 통합 법안을 심의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과 일부 지자체의 우려에도 24일 본회의 처리 수순을 밟겠다는 방침이다. 여권은 6월 지방선거에서 통합지자체장을 선출하겠다는 자체 일정에 맞추기 위해 이달 내 법안 통과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안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재정 분권 등 핵심 특례 조항이 상당 부분 빠졌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제도의 뼈대만 세운 채 서둘러 입법을 강행하는 모습에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 행정통합은 ‘언제 통합하느냐’보다 ‘어떤 내용, 어떤 통합이냐’가 중요하다.

행정통합은 단순한 행정구역 조정이 아니다. 지역 발전 전략과 재정 배분, 주민 삶의 질, 더 나아가 국가 운영 구조를 좌우하는 중대 사안이다. 광역 단위 통합은 행정 효율성, 재정 자율성, 주민 대표성 등 복합 요소가 맞물린다. 그럼에도 재정 분권과 핵심 특례가 충분히 담기지 않았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예타 면제, 그린벨트 권한, 특별지방행정기관 이관 등 요구가 반영되지 못했다는 불만도 크다. ‘선통합·후보완’ 방식으로는 실질적 분권 효과를 담보하기 어렵다. 통합 이후 권한과 재정 특례가 불명확하다면 효율성 명분 역시 힘을 잃는다. 행정통합의 전제는 분권이며, 성패는 법 통과가 아니라 실행의 내용과 그 설득력에 달려 있다.

정치적 파장 역시 가볍지 않다. 여권은 통합지자체장 선출 시간표를 고수하고, 국민의힘은 일방 처리에 반발하며 대응을 예고하고 있다. 본회의 당일 맞불집회까지 예고되며 충돌은 불가피해 보인다. 행정통합이라는 장기 과제가 정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면 정책 신뢰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제도 개편은 정치적 승부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어야 한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행정통합 특별법은 여야 합의가 중요하다. 행정통합은 대한민국 미래 구조를 설계하는 중대한 과제”라고 했다. 빈말이 아니어야 한다. 행정통합의 기준은 정치 일정이 아니라 정책 완결성과 사회적 합의다. 절차적 정당성과 공감대 형성 없는 속도전은 설득력을 잃는다.

행정통합은 선거용 카드가 아니라 백년대계다. 앞서 부산·경남 시도지사가 요구한 기본법 제정과 주민투표 절차는 통합의 발목을 잡는 게 아니라 통합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중앙정부와 여권은 이를 반발이 아닌 처방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통합 이후 권한과 재정이 불투명한 채 덩치만 키우는 방식은 실익을 담보하기 어렵다. 지역 규모 차이를 반영한 재정 구조 개편, 실질적 분권 보장, 민주적 의사결정 체계를 갖춘 기본법이 전제돼야 실행력이 생긴다. 부산·경남 시도지사 등의 요구는 특혜가 아니라 지방자치의 조건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결단보다 숙고다. 중앙정부와 여권은 완성도를 채울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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