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AI 시대에도 여행은 결국 '사람'이 만든다
김동주 경제부 차장
SNS 활동 개인 큐레이터가 설계한 여행
AI 추천보다 정교했던 맞춤 일정의 힘
현지인 어울린 식당서 만난 '도시의 일상'
부산 관광이 갈 수 있는 또 하나의 방향
하루 일정에 1만 원. 일본 오사카 여행에서 가장 잘 쓴 돈이었다.
SNS에서 우연히 알게 된 개인 여행 큐레이터에게 맞춤형 일정을 맡겼다. 메시지를 보내 취향을 설명하니, 교통·동선·맛집을 모두 반영한 3박 4일 일정표가 도착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피드백을 주면 곧바로 수정됐다.
챗GPT 같은 인공지능도 여행 일정을 잘 짜주는 시대다. 검색 몇 번이면 인기 관광지와 맛집 정보는 쉽게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이번 경험은 달랐다. 단순한 정보 나열이 아니라 ‘내가 어떤 여행자인지’를 먼저 묻는 과정이 있었다. 여행자 구성이 어떻게 되는지, 걷는 것을 좋아하는지, 줄 서는 것을 싫어하는지, 사진을 중시하는지, 어떤 목적의 여행인지, 현지 분위기를 선호하는지 등등을 세세하게 물었다.
그 결과 나온 일정은 놀라울 만큼 정교했다. 라멘, 야키니쿠, 카레우동, 장어덮밥, 규카츠, 오코노미야키, 다코야키, 텐동까지, 일본과 오사카를 대표하는 음식들이 하루 흐름에 맞춰 자연스럽게 배치돼 있었다. 무거운 메뉴와 가벼운 메뉴, 대기가 있는 곳과 바로 들어갈 수 있는 곳, 관광지와 골목 상권이 균형 있게 섞였다.
특히 인상 깊었던 곳은 의자가 여섯 개뿐인 작은 텐동집이었다. 바로 앞에서 튀김을 튀기고 소스를 끼얹어 손을 뻗어 건네주는 구조였다. 들리는 언어는 대부분 일본어였다. 여행자가 아니라 잠시 현지인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곳은 지하철역과 이어진 지하상가의 우동집이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인근 직장인들이 몰려들었고, 여행자인 나도 그들 사이에서 줄을 섰다. 특별한 연출도, 관광객용 메뉴도 없었다. 그저 도시의 일상이 흐르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그 한 끼는 생생한 기억으로 남았다.
일정은 음식뿐 아니라 이동까지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복잡한 지하철역에서 어느 출구로 나와야 하는지, 어느 노선을 타야 가장 효율적인지, 몇 정류장을 이동해야 하는지까지 안내돼 있었다. 여러 교통패스 가운데 일정에 맞는 카드도 추천했다. 그 일정표를 따라 움직이는 동안, 여행은 더 이상 ‘검색의 결과’가 아니라 ‘설계된 경험’처럼 느껴졌다.
오사카는 세계적인 관광도시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관광객 동선에서 살짝 벗어난 골목과 생활권도 엿볼 수 있었다. 이 경험은 자연스럽게 부산을 떠올리게 했다.
부산에도 지하철역과 연결된 상가가 있고, 점심시간마다 직장인들로 북적이는 식당들이 있다. 서면 지하상가, 남포동 일대, 동래·부전·전포 골목, 범일동과 초량의 오래된 식당들까지. 관광지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도시의 결이 살아 있는 공간은 이미 충분하다.
문제는 ‘없는 것’이 아니라 ‘잘 엮이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특히 외국인 관광객에게 이런 맞춤형 큐레이션은 더욱 필요하다. 언어와 정보의 장벽 속에서 누군가의 설계는 여행의 질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부산에는 로컬 크리에이터도 있고, 여행 블로거와 가이드도 있다.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하는 통역 인력과 관광 스타트업도 활동하고 있다. SNS 계정을 통해 자신만의 코스를 제안하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가능성의 씨앗은 곳곳에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것을 하나의 경험으로 묶어내는 일이다. 어디가 맛있는지 알려주는 수준을 넘어, 어떻게 움직이면 좋은지, 어떤 순서로 만나야 더 매력적인지, 어디에서 잠시 일상에 섞일 수 있는지까지 안내하는 설계가 필요하다.
관광은 더 많은 시설을 짓는 일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이미 존재하는 공간과 일상을 어떻게 연결하느냐에 따라 도시의 매력은 달라진다. 지하상가 우동집에서의 점심 한 끼가 여행의 기억이 되듯, 부산의 평범한 점심시간도 충분히 콘텐츠가 될 수 있다.
인공지능이 일정과 정보를 손쉽게 제공하는 시대다. 그러나 도시의 맥락을 읽고, 동선을 설계하고, 여행자가 일상 속에 스며들 수 있도록 돕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영역에 가깝다.
부산에도 그런 가능성은 이미 곳곳에서 자라고 있다. 이미 시작된 작은 시도들이 서로 연결된다면,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며 도시의 표정은 달라질 수 있다.
관광의 경쟁력은 새로운 랜드마크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때로는 지하철역과 이어진 우동집 한 곳을 어떻게 소개하느냐에서 시작된다. 부산은 이미 충분한 재료를 갖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이 가능성을 더 많은 여행자의 기억으로 만드는 일이다.
김동주 기자 nicedj@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