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협동조합 임원 연임 제한 규정 폐지해야
허현도 중소기업중앙회 부산울산중소기업회장
대한민국 경제의 허리인 중소기업들이 대내외적 위기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원자재 가격 상승, 고금리, 인력난이라는 3중고를 넘어 디지털 전환(DX)과 AI 전환(AX)이라는 거대한 파도까지 마주한 상황이다. 이러한 격변의 시기에 중소기업들의 구심점인 중소기업협동조합의 역할은 어느 때보다 막중하다. 하지만 현행 중소기업협동조합법은 협동조합의 손발을 묶는 독소조항을 품고 있다. 바로 임원의 연임을 제한하는 규정이다.
이 규정은 협동조합의 가장 근본적인 원칙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이 천명한 협동조합의 7대 원칙 중 가장 핵심이 '조합원에 의한 민주적 관리'이다. 임원의 선출과 신임은 조합원의 고유한 권한이며, 이를 통해 조직의 자율성과 민주성이 구현된다.
그런데 연임 제한 규정은 이러한 자율적 의사 결정권을 원천적으로 박탈한다. 리더의 성과가 아무리 뛰어나도, 조합원들의 신뢰가 아무리 두터워도, 법이 정한 횟수를 채우면 물러나야 한다. 이는 조합원의 판단보다 법률의 획일적 기준을 우선시하는 것으로, 협동조합의 자치 원리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만약 같은 논리를 일반 기업에 적용한다면, 주주총회에서 CEO를 선임하는 기업에 ‘최고경영자는 두 번까지만 연임 가능’이라고 법으로 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민간 자율 조직의 인사권에 대한 이러한 국가 개입은 시장경제 원리와도 맞지 않다.
중소기업협동조합 운영은 단순한 기업 경영의 차원을 넘어선다. 수십, 수백 개 조합원사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공동사업을 기획·실행하며, 정부 정책과의 연계를 도모하고, 업계 전체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한다. 이는 고도의 전문성과 깊은 경험을 요구하는 영역이다. 특히 협동조합의 주요 사업들은 중장기적 관점에서 추진되는 경우가 많다. 협동화단지 조성, 공동물류센터 건립, 기술개발 협력, 브랜드 공동개발 등은 짧게는 3년, 길게는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한 과제들이다. 이러한 사업들을 성공적으로 완수하려면 리더십의 연속성은 필수적이다.
임원의 임기를 인위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해당 분야에서 충분한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한 리더십이 안정적으로 조직을 이끌어갈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다. 리더가 바뀔 때마다 조직의 비전과 전략이 변경되고, 추진 중이던 사업이 중단되거나 축소되는 일이 반복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조합원인 중소기업의 몫이 된다.
연임 제한을 옹호하는 입장에서는 장기 집권으로 인한 권력 집중과 부패의 가능성을 우려한다. 그러나 협동조합에는 이미 이를 방지할 수 있는 충분한 견제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첫째, 정기총회 제도다. 협동조합 이사장은 매년 총회에서 사업보고를 하고 조합원들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성과가 부족하거나 문제가 있으면 조합원들의 질타를 받게 된다. 둘째, 감사 제도다. 중소기업협동조합법은 의무적으로 감사를 두도록 하고 있으며, 감사는 조합의 업무와 회계를 감독하고 총회에 보고할 책임이 있다. 셋째, 이사회의 견제다. 이사장은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주요 사항을 결정해야 하며, 독단적인 운영이 불가능한 구조다. 넷째, 조합원의 직접 선거다. 이사장은 총회에서 조합원들의 직접 투표로 선출된다. 만약 리더의 성과가 부족하거나 문제가 있다면, 조합원들은 다음 선거에서 그를 선택하지 않으면 된다. 이것이 가장 강력하고 민주적인 견제장치다.
협동조합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조합원의 자율성을 보장하며, 조직 운영의 전문성과 연속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임원 연임 제한 규정을 반드시 폐지해야 한다. 협동조합의 힘은 조합원의 자발적 참여와 민주적 의사결정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법률의 획일적 제한이 아니라, 조합원의 자율적 선택과 책임 있는 판단이 협동조합을 강하게 만든다. 이제 법이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협동조합 본연의 가치를 존중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