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산책] 자신과 타자 동일시… 그 뒤엔 깊은 상실감이
길고양이에 집착하는 어머니
18년 함께한 고양이 떠나보내고
길고양이 데려와 자식과 갈등
정신분석학적 개념 적용한다면
버려진 동물에 자신 투사한 것
외롭고 상처 받은 타인 처지를
헤아려보려는 노력이 해결 실마리
클립아트코리아
우울, 불안,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정신과와 심리상담센터를 찾는 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말 못할 고민에 마음 아픈 이들이 기댈 곳은 실상 그리 많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마음산책>은 이들의 아픔을 들여다보고 내적 고통에서 벗어날 길을 보여줍니다. 지난해 동아대병원에서 정년퇴임한 정신과 전문의이자 정신분석가인 김철권 박사와 함께 이메일(gomin119@busan.com) 등을 통해 접수된 사연 중 한 건을 선정해 매월 한차례 고민을 풀어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편집자주)
Q. 아이들과 함께 컸던, 자식과도 다름없던 고양이가 18년 만에 고양이별로 떠났습니다. 독립한 자녀들의 빈자리를 메워준 고마운 아이였기에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펫 로스 증후군을 그럭저럭 극복하면서부터 길고양이들에게 애정을 쏟았습니다. 없던 알레르기까지 생겼지만 길에서 떠도는 아이들의 고단한 삶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먹이 주는 문제로 주변과 다툼이 일면서 지나치게 어린 고양이들은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문제는 자녀들이 고양이 양육을 반대하는 데 있습니다. 고양이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건강을 되찾으라고 하는데, 엄마의 외로움과 슬픔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는 자녀들이 그저 야속합니다. 고양이 문제를 다시 거론할 거라면 집에 더 이상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제가 너무한 걸까요.
A. 이번 사례는 고양이 문제를 놓고 어머니와 자녀들간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정답이 없습니다. 서로 한발씩 양보할 수도 있고 어머니의 뜻을 존중할 수도 있으며, 반대로 자녀의 요구를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자녀 입장에서는 어머니의 행동이 비합리적인 감정에 치우친 것으로 여겨질 것이고, 어머니 쪽에서는 자녀들이 자신의 마음은 이해하지 못하면서 현실적인 조언만 제시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상담을 받아도 양쪽 모두가 흡족할 만한 해결책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서로의 욕망이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우리는 흔히 해결책부터 찾으려 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상대방은 왜 저런 말과 행동을 할까?’라는 질문을 떠올릴 수도 있습니다. 정신분석은 바로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학문입니다. 이번 사례에서 자녀들이 가지는 의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왜 어머니는 자신의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주변 이웃과 불화를 일으키면서까지 고양이를 돌보는 것에 집착할까? 심지어 자식보다도 더 고양이를 우선시할까? 자녀의 눈에는 그런 어머니의 말과 행동이 이해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어머니와 자녀가 각자 자신의 눈으로 상대방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각자 자기 위치에서 욕망하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를 이해하려면 정신분석에서의 ‘동일시’ 개념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코 반 도마엘 감독의 영화 ‘제 8요일’에서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주인공 조지는 동일시 개념을 가장 잘 보여줍니다. 그는 두 팔로 커다란 나무를 안으면서 “나무를 만지면 나무가 된다”고 말합니다. 이게 바로 동일시입니다. 동일시는 나와 사물, 나와 타자가 같아지는 경험을 뜻합니다.
정신분석에서 또 하나 중요한 개념은 ‘타자성’입니다. 우리는 보통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와 너는 다르다. 나는 나고 너는 너다. 너는 바깥에 있는 또 다른 존재다.’ 이것이 일반적인 생각입니다. 그러나 정신분석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너다. 나와 너가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나는 너에 의해 구성되고 만들어진다.’ 이게 동일시입니다. 타자와의 동일시에 의해 나의 자아가 구성되기 때문에 나는 타자라는 말입니다. 19세기 프랑스 시인 제라르 드 네르발은 이를 시로 ‘Je suis un autre(I am an other)’라고 표현했습니다. 자아는 대상과의 동일시를 통해 형성되기 때문에 개인적이고 사람마다 다릅니다. 자아는 단번에 생겨나지 않습니다. 무수히 많은 동일시가 겹겹이 쌓여 형성됩니다. 마치 누더기 옷과 같습니다.
다시 사례로 돌아가겠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을 드러내는 두 구절이 있습니다. ‘길에서 떠도는 아이들의 고단한 삶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와 ‘엄마의 외로움과 슬픔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는 자녀들이 그저 야속합니다’입니다. 어머니는 자신을 길고양이와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외롭고 슬픈지 자기 이야기는 들어주지 않고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말만 하는 자녀들을 보면서, 길에서 떠돌면서 보호받지 못해 춥고 배고픈 길고양이와 자신의 처지가 같다고 여긴 것입니다. 어머니 입장에서는 길고양이를 버린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길거리에 버린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그것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만약 자녀들이 이런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면 지금보다 좀 더 나은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gomin119@busan.com
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