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배제의 국경, 예술이 마주한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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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마르골레스, 깃발 I, 2009. 53회 베니스 비엔날레 설치 전경(비평·교육 목적의 부분 인용). 테레사 마르골레스, 깃발 I, 2009. 53회 베니스 비엔날레 설치 전경(비평·교육 목적의 부분 인용).

1917년 2월 5일, 미국 의회는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거부권을 무시하고 ‘이민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무엇보다 아시아·태평양계 이민을 차단하며 국가가 인종과 계급에 따라 이동의 권리를 선별할 수 있음을 제도화한 사건이었다. 국가가 나서 제도적 차별을 국가 정책으로 공식화한 순간이었다. 현재도 이 논리는 사라지지 않았고, 그 결과는 국경에서, 그리고 미국 내에서도 이민세관단속국(ICE)에 의한 시민들의 반복되는 죽음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금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무관용 원칙과 국경 장벽 건설, 가족 분리 정책을 통해, 이민을 범죄화하고 이주민을 위협 대상으로 고착시켰다. 단속은 강화되었고, 국경은 더 이상 국가의 경계선이 아니라, 죽음을 생산하는 정치적 장치가 되었다.

이 폭력의 역사는 예술 안에서 기억되고 있다. 멕시코 출신 작가 테레사 마르골레스는 1990년대 멕시코시티에서 검시관으로 근무한 경험을 살려 ‘시체의 삶’을 공공 공간에서 급진적으로 가시화하는 퍼포먼스, 조각 오브제, 사진 연작을 제작해 왔다. 그녀는 국경을 넘다 사망한 이주민의 현장에서 채취한 물과 흙, 섬유를 사용해 설치 작업을 만든다. 예컨대 시신을 씻는 데 사용되었던 물을 증발시켜 하얀 전시장 공간을 짙은 안개로 채우거나, 멕시코-미국 국경의 살인 사건에서 나온 피로 얼룩진 깃발을 베니스 비엔날레의 팔라초 로타-이반치치 외벽에 거는 식으로, 마르골레스는 규범적 경계를 넘어 관객의 주의를 환기하고 책임을 묻는다.

그녀의 작품은 직접적인 이미지를 보여주지 않지만, 관객은 그 공간 안에서 이미 사라진 몸의 흔적과 마주하게 된다. 여기서 예술은 사건을 재현하는 대신, 죽음이 남긴 감각적 잔여를 통해 침묵의 증언을 수행한다.

그녀의 작품이 공통으로 보여주는 것은, 국경에서의 죽음이 자연재해가 아니라 정책의 결과라는 사실이다. 위험한 것은 사막이 아니라, 합법적 이동 경로를 차단하는 제도이다. 그리고 죽음은 선택이 아니라 강요된 조건 속에서 발생한다. 그럼에도 국가는 이를 ‘불법 이주자의 위험한 선택’으로 설명하며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한다.

트럼프 시기의 이민 담론은 이 전가의 논리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였다. 이주민은 범죄자, 침입자, 위협이라는 언어로 묘사되었고, 국경의 폭력은 정당한 방어 행위로 포장되었다. 그러나 예술이 보여주는 것은 정반대의 현실이다. 국경은 방어선이 아니라 분리의 기계이며, 보호가 아니라 배제를 실행하는 장치다.

1917년의 이민법이 그랬듯, 트럼프 시대의 이민 정책이 남긴 것은 장벽만이 아니라 수많은 무덤 없는 죽음들이다. 그리고 예술은 그 무덤이 되기를 거부하고, 대신 기억의 장소가 되기를 선택한다. 그 선택이야말로 오늘날 미학이 정치와 만나는 가장 절박한 지점이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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