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도 지시했는데… 혐오 표현으로 얼룩진 현수막 ‘속수무책’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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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국무회의에서 저질 현수막으로 지적돼
이후 가이드라인까지 마련… 실제 철거는 부진
‘정상적인 정당 활동’이라는 시각·해석과 충돌
적극 철거 위해선 상위법 개정 필요 지적 나와

부산 사상구에 걸린 ‘YOON AGAIN(윤어게인)’이라고 적힌 정당 현수막 모습. 부산 사상구청 제공 부산 사상구에 걸린 ‘YOON AGAIN(윤어게인)’이라고 적힌 정당 현수막 모습. 부산 사상구청 제공

혐오 표현이 담겨 지난해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저질 현수막’이라고 콕 집은 정당 현수막이 부산에서는 단 한 장도 철거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가이드라인까지 마련하고 철거를 권고하고 있으나, 현장에서는 법적 다툼 가능성을 우려하며 상위법 개정이 더욱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4일 부산 16개 구·군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기준 최근 한 달 동안 정당 현수막으로 접수된 민원은 모두 66건이다. 수영구가 16건으로 가장 많았고, 북구(15건)와 사상구(14건)가 뒤를 이었다. 민원이 제기된 현수막에는 ‘내란재판 무죄’ ‘YOONAGAIN(윤어게인)’ 등 윤석열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문구나 ‘중국 유학생은 잠재적 간첩’ 등 외국인을 차별·혐오하는 표현이 주로 적혀 있다. 대부분 원외정당인 내일로미래로당이 설치한 것으로 이러한 현수막은 별도의 지자체 신고 없이 정당 이름과 연락처 등만 표시하면 설치할 수 있다. 지난달 부산 지역에 설치된 내일로미래로당 현수막은 270장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해당 기간 실제로 철거된 정당 현수막은 한 장도 없었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혐오 표현이 담긴 정당 현수막을 정비하기 위해 갖은 대책을 내놓았으나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11월 ‘혐오·비방성 현수막 관리 강화 가이드라인’을 발표해 인권 침해, 민주주의 왜곡 등의 표현이 담긴 현수막을 옥외광고물법상 금지 광고물로 규정했다.

이는 지난해 11월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저질스럽고 수치스러운 현수막’이라고 공개적으로 언급한 직후 마련된 조치다. 행정안전부는 지난달에도 금지 광고물에 대한 신속 정비를 당부하며 법적 책임에 대한 불안감 해소를 위해 법령 해석도 지원하겠다는 공문을 전국 지자체에 보냈다.

그러나 일선 구청에서는 상위법 개정 없이 단순 가이드라인만으로 현수막 철거가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옥외광고물법과 정당법 해석이 충돌하는 지점이 있어 법적 다툼으로 발전할 여지가 크다는 지적이다. 실제 울산 동구청은 지난달 문제의 현수막을 철거하려 했으나, 내일로미래로당 측이 제기한 집행정지 신청으로 인해 철거 절차가 중단된 상태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지자체에 현수막 내용 검열 책임까지 지웠다는 반발마저 나온다. 실제 단속을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요하지만 특정인 또는 단체를 비방하거나 모욕할 목적으로 허위 사실을 게시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옥외광고물법 개정안은 국회에 계류된 상태다.

한 구청 관계자는 “현수막 혐오 표현에 대해 선거관리위원회에 물을 때마다 ‘정상적인 정당 활동’이라는 답변을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지자체가 철거를 추진하면 반발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며 “지자체마다 가이드라인과 법을 해석하는 시각도 다르다. 결국 정당법이 개정돼야 현수막 문제도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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