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칼럼] 세대가 만나면 도시가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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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들 프리랜서

부산시 다양한 ‘시니어 정책’ 선봬
공간·세대 분리 등 경계 짓는 선 있어
도시 전체 지속 가능성 담보 의문

소통 통로 막히면 도시 힘 활용 못 해
세대 교차·기억 공존하는 장소 있어야
그게 ‘돌아오고 싶은 부산’ 만드는 길

지난달 스페인을 여행하며 마드리드 구시가지 센트로 지구의 한 라이브 음악 카페를 찾았다. 오래된 영화관을 개조한 이곳에는 매표소와 팝콘 가판대의 흔적이 아직 남아 있다. 주말 낮, 40대 밴드가 무대에 오르고 20대부터 60대까지의 사람들이 함께 술을 마시고 춤을 춘다. 이 공간을 영화관으로 기억하는 이들과 카페로 기억하는 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같은 장소에 대한 서로 다른 기억을 지닌 세대가 자연스럽게 섞여 있는 이 공간이야말로 이 도시가 지닌 힘의 정체였다.

부산 외곽을 운전하다 발견한 대형 실버타운은 이 장면의 정반대에 가까웠다. 노인을 위한 세심한 동선, 편리한 시설, 고급스러운 외관. 모든 것이 잘 갖춰져 있었지만, 사방이 대로와 도시 고속도로로 둘러싸인 그곳은 부산 시민의 일상적 생활권과는 분리돼 있었다. 부산시는 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시니어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2025년부터는 ‘부산형 시니어 적합 직무 채용 지원사업’을 통해 60세 이상을 고용한 기업에 인건비를 지원하고, 각 구마다 노인복지관을 운영하며 교양·문화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노인 인구가 빠르게 늘어나는 도시에서 자연스러운 행정 대응이며 필요한 절차다. 그러나 이 정책들은 멀리서 바라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보이지 않는 선을 긋고 있다는 점이다. ‘60세 이상 전용’, ‘노인복지관’, ‘경로당’이라는 명칭은 공간과 사람을 구분한다. 세대 분리는 정책 집행을 위해 단기적으로는 효율적일 수 있지만, 도시 전체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분리는 한 세대의 경험과 기억이 다음 세대로 자연스럽게 전달되는 경로를 차단하기 때문이다. 세대 간 교류가 사라지면, 도시가 품어야 할 다양성 역시 함께 줄어들 것이다.

1505년 폴란드에서 제정된 ‘니힐 노비(Nihil novi)’ 법은, 공동의 동의 없이는 새로운 결정을 내릴 수 없다는 원칙을 담고 있다. 훗날 ‘우리에 관한 일은 우리 없이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로 요약되는 이 원칙은 참여와 소통이라는 정치의 기본을 일찍이 제시한 사례다. 부산의 시니어 정책에도 이 원칙은 유효하다. 노인을 ‘분리’하고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여러 세대가 함께 기획하고 함께 사용하는 공간이 생활권에 필요하다. 각 연령층을 위한 독립된 지원 제도는 이미 충분히 마련돼 있다. 이제는 세대가 출발선부터 함께할 수 있는 구조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예컨대 노인복지관과 도서관, 청년 문화공간이 각각 따로 존재하는 대신, 하나의 생활권 안에서 동선과 기능을 의도적으로 겹쳐 설계하는 것이다. 오전에는 노년층의 프로그램이 중심이 되고, 오후에는 학생과 청년들이 드나들며, 저녁에는 세대가 섞여 머무는 공간. 세대를 구분하는 간판 대신 시간과 사용 방식이 공간을 나누는 구조다. 중요한 것은 그 공간의 목적과 언어가 특정 세대에만 과도하게 기울어 있지 않은지, 이용 방식이 어느 한쪽의 편의만을 전제로 설계돼 있지는 않은지 점검하는 일이다. 지나치게 외국어가 난무하는 환경, 특정 연령층의 사용 방식을 기준으로 한 안내와 동선은 의도치 않게 다른 세대를 배제한다. 특정 세대를 위해 새로운 건물을 짓거나, 특정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보다는 세대가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같은 공간을 쓰고, 같은 동선을 지나고, 같은 시간대를 공유하는 환경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 생각할 때다.

부산은 청년들이 떠나는 도시로 자주 언급된다. 그러나 동시에 많은 이들이 ‘언젠가 돌아오고 싶은 도시’로 꼽는 곳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오랜 시간 축적해 온 부산만의 도시적 감각 때문이다. 이 감각은 오랜 세월 부산을 일궈온 어른 세대들이 차곡차곡 쌓아온 것이다. 그럼에도 서로가 만나서 함께 어울릴 공간은 충분하지 않다. 이것이 지금의 부산이 안고 있는 모순이다. 세대 간 소통의 통로가 막혀 있으면 아무리 다양한 세대가 공존해도 도시는 그 힘을 활용하지 못한다. 위로부터의 정책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아래로부터 자연스럽게 섞일 수 있는 공간과 환경이다. 부산의 생활권 안에, 세대가 일상적으로 교차하고 각자의 기억이 공존하는 장소가 필요하다.

부산의 미래는 ‘노인을 위한 도시’도, ‘청년을 위한 도시’도 아니다. 서로 다른 세대가 같은 공간에서 만나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고, 자연스럽게 배우는 도시다. 마드리드에서 만난 카페가 보여준 역동성을 부산의 골목에서도 찾고 싶다. 20대와 30대만 모인 ‘유행을 좇는 공간’이 주는 활기와는 다른, 세대가 섞일 때만 생기는 온기를, 오래된 기억과 새로운 꿈이 충돌하지 않고 공존하는 공간을. 그것이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고 싶은 부산을 만드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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