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지식재산처 부산지방청’ 설치, 더 이상 미뤄선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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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생 부산상공회의소 회장

양재생 부산상공회의소 회장. 부산일보DB 양재생 부산상공회의소 회장. 부산일보DB

생명의 온기는 심장에서 시작된 피의 순환이 말초까지 흐르기 때문이다. 경제도 이와 다르지 않다. 혈류의 순환이 멈추면 역동 쳐야 할 경제의 대동맥도 결국은 막힐 수밖에 없다. 산업과 경제를 움직이는 혈류는 혁신이다. 혁신이 흐르지 않는 기업과 경제는 지속 가능한 미래를 약속받기 어렵고 그 혁신은 기업이 보유한 지식재산에 의해 결정된다.

지식재산을 취득하고 보호하는 것이 오늘날 기업의 또 다른 경쟁이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지식재산에 대한 심사와 행정 지원을 하는 기관이 특허청이며, 지난해 새 정부 들어 지식재산처로 승격되었다. 그 중요성을 인정받은 결과지만 안타깝게도 지식재산처는 지방에 별도 조직을 두고 있지 않다. 현재 지식재산처는 대전에 있고 서울에만 사무소를 두고 있다. 혁신의 혈류를 만들고 펌핑시킬 심장이 지방에는 없는 것이다. 2024년 국내 특허 출원의 약 65%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 현실 역시 이와 무관치 않다. 수도권 기업의 높은 생산성과 부가가치는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부산에 지식재산처 지방청이 필요한 이유는 대전의 사례에서도 분명하다. 1998년 정부의 중앙행정기관 지방 이전 정책에 따라 서울에 있던 특허청이 대전으로 이전하면서 대전은 현재 인구 1만 명당 특허 출원 건수 전국 1위를 기록하며‘지식재산(IP) 중심 도시’로 성장했다. 심사관, 변리사, 법률·기술 서비스가 집적되면서 자생적 특허 생태계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혁신의 혈류를 돌릴 심장을 옮겨온 결과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그 온기가 지방까지 내려오지 않고 있다. 부산·경남의 특허 출원 건수를 보더라도 서울․경기와 비교하면 10분의 1 수준에 그친다. 당연히 다른 지방은 비교조차도 필요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성장에 소외된 지방의 구조적 취약성만으로는 그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부산을 포함한 동남권만 하더라도 수도권에 필적할 만한 규모를 갖추고 있고, 해양·물류·조선·기계·에너지·신산업이 집적된 국가 핵심 산업 클러스터이기도 하다. 또한 부산은 세계 최고 수준의 항만과 물류 인프라, 탄탄한 제조 기반을 갖추고 있다. 현장에 내재된 암묵적 지식재산이 상당하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지방의 지식재산 출원이 수도권에 비해 크게 못 미치는 것은 현장에 있는 유무형의 기업 자산을 끌어내지 못하는 인프라와 시스템 부재 때문이다. 수도권에는 지식재산에 대한 다양한 심사·지원 기능이 집중돼 있는 반면, 부산을 비롯한 동남권 기업들은 특허심사를 받기 위해 지금도 대전으로 직접 이동해야 한다. 기술 설명, 보정 협의, 대면 심사 대응을 위해 기업과 변리사가 반복적으로 장거리 이동을 해야 하는 현실은 결코 가볍지 않은 부담이다. 속도와 타이밍이 생명인 지식재산권을 고려하면 응급 환자에게 먼 병원 찾아가라는 격이다.

이것은 단순한 불편의 문제가 아니다. 시간과 비용의 문제며, 이는 기업의 경쟁력과도 직결된다. 특히 중소·중견기업과 기술기반 스타트업에게 이러한 물리적 거리와 행정장벽은 기술보호의 속도를 늦추고, 시장 선점 기회를 놓치게 만드는 결정적 요인이 되기도 한다. 혁신은 속도고 타이밍인데, 동남권 기업들은 출발선부터 불리한 조건에 서 있는 셈이다. 단 한 명의 특허심사관도 없는 지역에서 현장의 기술 본질을 이해하고, 산업 현장의 흐름을 읽으며, 기업과 발명가의 언어를 정확하게 해석해 낸다는 것은 어렵다.

지식재산에 대한 지역의 한계는 여기서 비롯된다. 조선, 해양, 기계, 물류자동화, 수소·에너지 등 부산의 주력산업은 현장 이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문서만 가지고 파악하기 어려운 공정과 구조, 산업적 맥락이 존재한다. 심사관이 지역에 상주하며 기업과 수시로 소통할 수 있을 때, 심사의 정확성과 효율성은 획기적으로 높아진다.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것은 개별 기업과 어느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며 동남권을 포함한 지방 경제 전체의 구조적 손실이다.

부산상공회의소가 1993년부터 줄곧 ‘부산지방특허청’ 설치를 정부에 요구해 온 것도 부산 경제와 기업의 혁신을 도모하고 지방 경제의 대동맥에 혈류의 온기를 불어 넣기 위함이었다. 최근 정부는 ‘5극3특’을 중심으로 한 국가균형발전 전략에 힘을 싣고 있다. 국가균형발전의 핵심동력은 언제나 경제와 산업, 기업에 있다. 그리고 기업과 산업, 경제는 혁신이 그 생명의 원천이자, 혈류다. 그 혈류가 힘차게 흐르게 하는 심장을 부산에 설치하는 것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허심사관과 변리사, 기술 전문가가 지역에 정착하고, 기업 현장의 지식을 특허 출원하고 분쟁 대응까지 전 주기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구조를 갖추기 위한 ‘지식재산처 부산지방청’ 설치에 다시 한 번 지역의 목소리를 높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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