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술, 부산에 살맛 나酒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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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막걸리·생탁 등 지역 전통주
우리나라 첫 ‘술 공장’ 탄생지 부산
대선양조 다이야 소주 전국서 인기
“전통주, 한주(韓酒)라고 불렀으면”
부산 술과 부산 사람의 삶’ 에 담겨

부산 사람들은 언제부터 술을 마셨을까? 신석기 시대 유적인 동삼동 패총전시관에는 술 거르는 데 사용한 깔때기와 뿔 모양의 술잔이 있다. 동삼동 패총에서는 탄화된 조와 기장도 나왔다. 부산 사람들은 신석기 시대부터 남은 곡물로 술을 빚어 축제나 제례 때 나누어 마신 것이다. 최근 부산연구원 부산학연구센터가 발간한 <부산 술과 부산 사람의 삶>에는 각종 부산의 술과 함께 술을 즐긴 부산 시민의 정체성이 잘 나타나 있다. 부산은 왜 술 권하는 도시가 되었는지, 그 사연 속으로 들어가 봤다.


글로벌 시대를 맞아 부산 술은 세계를 부산 사람으로 묶는 역할을 하고 있다. 사진은 ‘꿀꺽하우스’가 미국 양조장과 협업해서 만든 ‘에브리띵 막걸리’를 비롯한 라인업. 꿀꺽하우스 제공 글로벌 시대를 맞아 부산 술은 세계를 부산 사람으로 묶는 역할을 하고 있다. 사진은 ‘꿀꺽하우스’가 미국 양조장과 협업해서 만든 ‘에브리띵 막걸리’를 비롯한 라인업. 꿀꺽하우스 제공

먼저 전통주 분야다. 부산을 대표하는 막걸리에는 산성막걸리와 생탁이 있다. 산성막걸리와 박정희 대통령의 각별한 인연은 유명하다. 1960년대 박정희 정부는 식량 부족 등을 이유로 쌀을 주원료로 하는 주류 생산을 제한해 쌀막걸리는 밀주 취급을 당했다. 그러다 1979년 박 대통령이 부산을 순시하던 중 박영수 부산시장이 산성막걸리 허가를 건의했다. 박 대통령이 군수기지사령관 시절에 이 막걸리를 즐겨 마신 인연이었는지, 금정산성 막걸리는 대통령령 9444호에 따라 민속주 1호로 지정됐다. 전통문화의 가치가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첫 사례였다.


부산을 대표하는 산성막걸리의 유청길 대표. 부산일보DB 부산을 대표하는 산성막걸리의 유청길 대표. 부산일보DB

부산 시민이 가장 자주 마시는 막걸리는 부산합동양조가 만든 생탁이다. 부산합동양조는 1970년대 박정희 정부가 부산 곳곳에 있던 43개의 양조장을 하나로 통합시켜 만들어졌다. 덕분에 생산량이 늘고 유통망이 넓어졌지만, 맛이 표준화된 점은 다소 아쉽다. 부산합동양조가 처음 만든 술은 동동주였고, 생탁은 2005년에 나왔다. ‘생막걸리’의 ‘생’과 ‘탁주’의 ‘탁’을 결합한 이름은 단순하면서도 명쾌했다. 부산 막걸리 시장의 90%를 차지하는 생탁은 2024년 일본 온라인 막걸리 부문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 세계 시장으로도 뻗어가고 있다. 생탁의 장수 모델이었던 왕종근 씨가 교체되자 가짜 생탁이라고 의심하며 교환을 요구하는 웃지 못할 일도 생겨나고 있단다.

기찰막걸리로 잘 알려진 부산산성양조도 전통을 자랑한다. 이곳은 1970년대 부산합동양조에 합류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3대째 운영을 해 오고 있다. 막걸리는 수많은 이야기를 남겼다. 피난 시절 부산 남포동의 한 막걸릿집에서 작곡가 윤용하와 시인 박화목이 고향 이야기를 나누다 태어난 노래가 ‘보리밭’이다.

최근 부산에는 크고 작은 양조장들이 속속 들어서, 저마다의 개성과 스토리를 담아 막걸리를 빚고 있다. 이 가운데 지역 16개 양조장이 다음 달에 공식 모임을 결성한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가랑가랑양조장 이주운 대표는 “홍보와 판매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산 지역 전통주 양조장들은 공동 판매 공간이 절실하다. 또 쌀 계약 재배와 병 공동 구매부터 시작해 지역 조합 결성까지 논의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가랑가랑양조장 이주운 대표. 부산일보DB 가랑가랑양조장 이주운 대표. 부산일보DB

두 번째로 소주다. 전통적으로 남쪽 지방은 탁주, 평양을 중심으로 한 북부 지방에서는 소주 중심의 주류 문화가 발달했다. 조선총독부가 1915년에 작성한 ‘조선인의 의식주 및 기타 위생’에 따르면 당시 소주 알코올 함량은 28~38%였고, 6~8월이 소주가 가장 많이 소비되는 시기였다. 역사가 짧은 부산을 대표하는 증류식 소주의 기록은 아직 찾지 못했다. 하지만 1450년 문종 즉위년 기록에는 동래온천에 머물던 대마도의 왜인 사신에게 소주 50병을 하사했다는 내용이 있다. 또 성종실록 8년 기록의 일본 통신사에 하사하는 물품 목록에도 소주 50병이 포함되었다. 이 같은 조선 시대 기록을 통해 외교적으로 중요한 선물로 소주가 사용되었고, 당시 부산 일대에서도 상당한 품질의 소주가 만들어졌을 것으로 짐작된다.


미리내협동조합의 ‘석술’. 부산일보DB 미리내협동조합의 ‘석술’. 부산일보DB

1887년 일본인 후쿠다 마스효에가 부산에 세운 후쿠다 양조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술 공장이 되었다. 이후 다수의 양조장이 부산에 들어서면서 술의 대량생산 체제가 본격화된다. 1926년에는 일본인 이치마쯔가 부산 부평동에 마스나가양조소를 짓고 힛꼬(日光) 소주를 만들어 조선 전역에 팔았다. 이때 일본인들은 소주 시장의 잠재력을 깨달아 1929년 부산 범일동에 대규모 기계식 소주 공장을 만들었는데 대선주조의 전신이 되었다. 이때까지는 증류식 소주와 희석식 소주 두 종류를 모두 생산했다.


1970년 11월 30일 자 부산일보 4면에 실린 ‘제1회 부일리주회 인기투표’ 광고. 부산일보DB 1970년 11월 30일 자 부산일보 4면에 실린 ‘제1회 부일리주회 인기투표’ 광고. 부산일보DB

1930년대 전국 6개 공장 가운데 가장 많은 생산량을 기록한 곳은 평양이었고, 부산의 대선양조(대선주조의 전신)는 2위를 차지했다. 당시 대선양조의 대표 상품은 31.5도의 다이야 소주였다. 1934년부터 희석식 소주의 생산이 급격히 증가했다. 1945년 해방을 전후해 대선주조의 다이야 소주는 전국 판매량의 50%를 차지하면서 함경도까지 진출했다. 진로의 장학엽 사장은 부산 구포로 피난 내려와 1951년 동화양조회사를 설립하고 금련 소주, 낙동강 소주를 생산했다. 하지만 1954년 다시 서울로 돌아가 오늘날 진로에 이르고 있다.


다이야 소주를 내놨던 대선발효의 1964년 9월 26일 자 부산일보 광고. 다이야 소주를 내놨던 대선발효의 1964년 9월 26일 자 부산일보 광고.

대선주조의 히트상품 C1소주는 1990년대 초에는 부산 시장의 무려 90% 이상을 장악하기도 했다. 이때의 자신감은 “부산 싸람 아이면 마이 묵지 마라”라는 광고를 내놓을 정도였다. 2017년에는 대선블루를 출시하면서 대통령 선거 시기와 맞물려 ‘대선으로 바꿉시다’라는 중의적 광고 문구가 주효해 폭발적인 반응을 얻기도 했다. 전성기에 비해 지역 시장 점유율이 많이 하락한 대선주조가 최근 지방소멸을 경고하는 광고 문구를 내놓은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세 번째로 맥주다. 부산에는 맥주가 다른 지역보다 훨씬 일찍 들어왔고 수요도 많았다. 일본과 가까운 항구도시이자 일본인 전관거류지가 처음으로 조성된 곳이기 때문이었다. 1913년 9월에는 부산에 터를 잡은 일본 상인 11명이 모여 부산맥주판매조합을 결성했다. 당시의 맥주는 일본인이나 일부 조선 상류층의 전유물이자, 근대화 생활 양식을 드러내는 상징적 소비재였다.


지방 소멸 방지 문구를 내세운 대선주조의 포스터. 대선주조 제공 지방 소멸 방지 문구를 내세운 대선주조의 포스터. 대선주조 제공

1933년 조선맥주가 문을 열며 최초의 맥주를 생산했지만 부산과는 거리가 멀었다. 1953년부터 부산 대선발효(대선주조의 전신)가 저렴한 합성맥주(인공맥주)인 다이야 맥주를 생산했다. 하지만 1968년 대선발효가 조선맥주의 새 주인이 되면서 다이야 맥주의 생산은 중단된다. 1980년대 중반 이전까지 맥주는 대학생이나 일반 직장인이 즐기기에는 부담스러운 가격이었다. 1990년대 소비 수준의 향상과 함께 노래방의 대중화가 맥주 소비의 촉매 역할을 했다. 노래방에서 단연 인기 있는 술은 맥주였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노래방 문화의 출발점이 부산이었다. 1991년 4월 하단의 동아대 인근 한 전자오락실에 부산 기업 로얄전자가 개발한 노래반주기가 설치되면서 대한민국 노래방의 역사가 시작된다. 한 달 뒤인 5월에는 광안리해수욕장에 하와이비치노래연습장이 노래방으로서는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부산에서는 1980년대 중반부터 대학가에서 호프집이라고 불리는 생맥주 가게를 쉽게 볼 수 있게 되었다. 1990년대 세계맥주집들이 들어서며 외국 맥주가 본격적으로 유통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이후 맥주는 가볍게 마실 수 있는 술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동래아들’과 ‘매료’를 만드는 제이케이크래프트. 제이케이크래프트 제공 ‘동래아들’과 ‘매료’를 만드는 제이케이크래프트. 제이케이크래프트 제공

<부산 술과 부산 사람의 삶>은 부산에 크래프트 맥주 펍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며 ‘부산 수제맥주 양조장 매장 및 매장 위치도(부산일보 2023년 8월 3일 자)’를 인용하고 있다. 이 지도에는 2002년 개장해 부산 하우스맥주의 1세대로 꼽히는 허심청 브로이(온천동), 리치 브로이(사직동), 고릴라 브루잉(정관), 갈매기 브루잉(대저), 와일드 웨이브(정관), 부산 프라이드 브루어리(기장), 부산맥주(양산시) 등 주요 양조장의 위치가 표기되어 있다. 이 책은 “부산 크래프트 맥주의 특징은 저마다의 개성이 뚜렷하다는 점이다. 이 개성적인 맛은 과감한 재료 사용에서 비롯된다. 커피, 깻잎, 꿀, 자몽, 짭짤이 토마토, 조내기 고구마, 심지어 고등어까지 부재료로 사용하는 기발함을 보인다”라고 칭찬한다.


<부산 술과 부산 사람의 삶>. <부산 술과 부산 사람의 삶>.

공동 저자인 부산대 중문과 최진아 교수는 “태어나서부터 부산 사람도 있지만 술이 매개가 되어 부산 사람이 되기도 한다. 이제 글로벌 시대를 맞아 부산 술은 세계를 부산 사람으로 묶는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통주라는 용어 대신 미래지향적 가치를 담아 한주(韓酒)라고 부르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옛날에는 집에서 막걸리로 식초를 만들었다. 식초 빚는 항아리를 흔들면서 부산 사람들은 이렇게 읊조렸다고 한다. “초야 초야 니캉 내캉 백년 살자.“ 술이 식초로 무사히 변하기를 바라는 이 노래도 책에 QR코드로 수록했다. 이렇게 다채로운 부산 술의 이야기를 알고 마시면 더 맛있을 것 같다. 초하고 백년을 같이 살려면 조금씩 아껴서 마셔야 하고….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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