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쓰오일 온산공장 사고 재판…경영진은 ‘무죄’·실무 팀장 ‘실형’
2022년 이후 1심 4년 걸려
노동계 “대기업 봐주기 판결”
검찰에 즉각적인 항소 촉구
2022년 5월 19일 오후 8시 51분 에쓰오일 온산공장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해 소방당국이 진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울산소방본부 제공
4년 전 10명의 사상자를 낸 에쓰오일 온산공장 폭발·화재 사고와 관련해 법원이 본부장급 이상 핵심 경영진과 하청업체 대표 등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반면 현장 실무 책임자에게는 실형을 선고하는 등 사고의 책임을 경영진이 아닌 실무진에게 지웠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온산공장 폭발 사고는 2022년 5월 19일 오후 8시 51분 부탄을 이용해 휘발유 옥탄값을 높이는 첨가제인 ‘알킬레이트’ 제조 공정에서 발생했다. 드럼에 저장된 부탄이 밸브 쪽으로 누출되면서 폭발, 화재로 이어졌다. 이 사고로 협력업체 직원 1명이 숨지고 원·하청 노동자 9명이 다쳤다.
울산지법 형사3단독 이재욱 부장판사는 15일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화학물질관리법 위반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정비본부장과 정비부문장, 하청업체 아폴로 법인과 대표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생산본부장 역시 폭발 사고와 직접 관련된 핵심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 판단을 받았다.
이에 반해 재판부는 사고의 직접 책임이 인정된 알킬레이션 생산팀장에게 금고 1년 6월을 선고했다. 또 임원급인 공장장은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나머지 생산과장, 생산운전원, 정비팀장 등 실무 관리자 5명에게는 금고 8개월에서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원청 법인인 에쓰오일에는 검찰 구형량(1억 원)보다 높은 벌금 1억 2000만 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수백명이 근무하는 대규모 석유화학공장에서 근로자 중 일부가 업무절차나 안전 규칙을 지키지 않는 경우는 어느 정도 발생할 수밖에 없고, 이는 정기적인 감사 등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야 할 사안이지, 경영자 등의 과실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사고의 원인을 회사의 구조적·시스템적 부실보다는 현장 실무자의 절차 미준수와 위험성 평가 소홀 등 개인적 과실로 판단한 것이다. 이에 따라 사실상 경영진 대다수는 사법적 처벌 대상에서 제외됐다.
에쓰오일 법인에 선고된 벌금 1억 2000만 원은 중대재해에 대한 양벌규정 적용과 사고 후 적발된 안전조치 위반 건이 합쳐진 액수다. 생산본부장에게 선고된 벌금 2000만 원 또한 폭발 사고 책임이 아닌 사후 안전점검 미이행에 따른 혐의가 적용된 결과일 뿐이다.
이번 판결은 사고 발생 3년 8개월 만에 나온 사법부의 판단이지만, 법조계 일각에서는 경영진의 책임을 지나치게 좁게 해석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 수사 단계에서 외국인 대표이사와 최고안전책임자(CSO)가 기소 제외(부산일보 2023년 5월 1일 자 3면 보도)된 데 이어, 법원에서도 본부장급 이상의 책임이 대부분 인정되지 않으면서 중대재해 책임자 처벌의 한계가 명확히 드러났다는 평가다.
지역 노동계는 즉각 반발했다. 중대재해없는세상만들기 울산운동본부는 이날 논평을 내고 “분노를 넘어 참담함을 느낀다”며 법원의 판결을 ‘대기업 봐주기’라고 강하게 성토했다. 이들은 “누구보다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할 책임자들은 모두 무죄를 받고 현장 관리자와 작업자들에게만 유죄가 판결됐다”며 즉각적인 검찰의 항소를 촉구했다.
이번 1심 선고에도 불구하고 경영진의 책임 범위를 둘러싼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판결은 향후 산업 현장의 안전 관리 의무와 경영진의 처벌 수위를 가늠하는 주요 선례가 될 전망이다.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