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죽음 이후에 남는 힘… 1월 15일의 이야기
이철호, 민주항쟁도, 2002. 민주공원 제공
1월 15일. 1919년 이날, 로자 룩셈부르크는 독일 베를린에서 살해되었다. 혁명 직후의 혼란 속에서 사회민주당 정부는 우익 민병대 ‘자유군단’을 활용했고, 그녀는 체포되어 개머리판으로 머리를 얻어맞고 확인 사살된 뒤, 베를린 란트베어 운하에 던져졌다. 국가는 폭력의 뒤에 숨어, 그 폭력이 작동하게 하는 조건과 구조를 구축했다. 1987년 1월 14일 박종철의 죽음도 다르지 않다.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자행된 고문은 개인의 일탈이나 과잉이 아니라 시스템 속에서 이루어진 조직된 살해였다. 그리고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다음 날의 발표는 폭력을 은폐한 국가의 언어였다. 그러나 진실을 지우려는 권력의 시도는 죽음을 은폐하지 못했고, 오히려 평범한 시민들에게까지 분노가 확산되게 만들었다. 두 죽음 사이에는 68년의 시간과 대륙의 거리가 놓여 있지만, 질문은 하나다. 죽음은 어떻게 확산되어 역사를 바꾸는가?
부산민주공원의 ‘민주항쟁도’는 이 확산의 형상을 담는다. 이 그림에는 주인공이 없다. 박종철을 포함하여 누구도 중심이 아니다. 대신 연결된 몸들, 이어지는 사건들, 반복되는 저항의 장면들이 있다. 하나의 죽음은 고립되지 않고, 공동의 감각으로 번져간다.
안토니오 네그리는 이를 ‘공통체’(共通분, the common)의 생성이라 부른다. ‘공통체’는 국가나 제도가 부여하는 공동체가 아니다. 억압과 폭력에 맞서 사람들이 경험·분노·언어·기억을 공유하며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생산하는 과정 자체다. 로자의 시신은 운하에 가라앉았지만, 그녀의 사유는 노동자와 민중 사이에서 살아남았다. 로자가 살해되기 전날 남긴 “나는 있었다, 나는 있다, 나는 있을 것이다”라는 문장은 개인을 넘어서, 역사적 주체의 지속을 선언한 말이었다. 그녀에게 민주주의는 노동자와 민중이 스스로 사고하고 조직하며, 권력에 지속적으로 개입하는 과정이었다. 그녀에게 “자유는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의 자유”이며, 민주주의는 무엇을 성취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억압하지 않았는가로 평가되어야 했다. 박종철의 죽음 역시 개인의 비극을 넘어,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공통의 언어가 되었다.
‘민주항쟁도’는 단순히 과거를 재현하는 그림이 아니다. 그것은 죽음 이후에 형성된 공통의 감각을 다시 배열하고, 관람자를 그 안으로 끌어들인다. 우리는 이 그림 앞에서 역사를 ‘보는’ 것이 아니라, 아직 끝나지 않은 ‘공통체’의 일부가 된다.
1월 15일, 이날은 한 개인의 죽음이 어떻게 다시 공통의 힘으로 전환되는지를 묻는 날이다. ‘민주항쟁도’를 보면서 우리는 느낀다. 죽음은 개인을 멈추게 할 수는 있어도, 그 죽음을 계기로 형성된 공통의 경험과 연대의 흐름까지 멈추게 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미술평론가·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