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와 공생하는 박쥐의 비밀 [질병과 건강 이야기]
장철훈 양산부산대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 전 부산의대 학장 대한민국 의학한림원 정회원
사스, 메르스, 에볼라, 코로나19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모두가 21세기에 등장한 신종 감염병이다. 그것 말고도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이 감염병들은 모두 박쥐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박쥐를 ‘질병의 근원’이라고 부른다.
약 5000만 년 전에 현재의 모습으로 진화한 박쥐는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바이러스와 공생해왔고, 어떤 종은 좁은 공간에 수백만 마리씩 떼로 모여 사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박쥐는 포유류 중에서 설치류와 더불어 가장 많은 종을 가진 엄청난 생존왕이다. 이런 박쥐의 생태적인 특징으로 해서 어떤 바이러스든 한 번 박쥐의 몸에 적응하면 오래 살아남을 수가 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박쥐는 이 많은 바이러스를 몸에 지니고도 멀쩡히 살아간다는 것이다.
박쥐가 바이러스와 공생하는 비밀은 박쥐의 독특한 면역 능력과 함께 비행할 때의 체온 상승에 있다. 박쥐가 하늘을 날 때 체온이 무려 40도까지 치솟는다. 이 정도로 높은 온도에서는 바이러스와 같은 많은 병원성 미생물들이 죽거나 최소한 증식을 멈춘다. 그래서 박쥐가 몸 안에 그 많은 바이러스를 갖고 있으면서도 병에 걸리지 않고 바이러스와 공존할 수가 있는 것이다.
사실 열로 병을 다스리는 것은 우리 몸이 자연적으로 하는 일이다. 누구나 감기나 폐렴에 걸리면 열이 나지 않는가? 항생제가 없던 시절에는 황당한 발열법으로 감염병을 치료한 적도 있었다. 20세기 초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 바그너 야우레크는 신경매독에 걸린 사람들이 열병을 앓은 후 매독 증상이 호전되는 것을 보고 매독 환자에게 일부러 말라리아를 감염시키기도 했다. 이 치료법은 매독균이 고온에 약하다는 점을 이용한 것인데, 기이하게도 이 치료법을 제시한 공로로 야우레크는 노벨상을 받기까지 했다.
체온이 올라가면 병원균이 억제되는 것 말고도 중요한 이득이 하나 더 있다. 면역력이 좋아지는 것이다. 우리 몸의 체온이 1도 올라가면 면역력이 50% 증가하고, 체온이 1도 떨어지면 면역력이 30% 감소한다. 온돌방에 앉아있거나, 온천물에 몸을 담그거나, 가볍게 조깅만 해도 우리 몸의 방어력이 좋아진다.
우리가 박쥐에 대해서 갖고 있는 선입견처럼 박쥐가 나쁘기만 할까? 현대 사회에서 중요한 위기로 다가온 신종 감염병 중 많은 것들이 박쥐에서 기원한 것은 맞다. 하지만 이것은 박쥐가 위험한 존재라서가 아니라, 인간이 박쥐의 서식지를 파괴하고, 박쥐를 날것으로 잡아먹으면서 박쥐가 인간과 접촉할 기회가 많아졌기 때문에 생긴 부작용일 뿐이다. 사실 박쥐는 인간에게 아주 유익한 동물이다. 우리가 좋아하는 바나나나 망고 같은 열대 과일들, 그리고 데킬라를 만드는 용설란도 박쥐가 꽃가루를 옮겨야 자란다.
박쥐는 비행할 때 생기는 열을 무기로 삼아서 수많은 바이러스를 몸에 품고도 건강하게 살아간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도 중요한 메시지를 준다. 하루에 한 번 땀을 흘리자. 그 단순한 습관 하나가 당신 몸의 방어력을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