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안세영과 15점제
2001년 국제탁구연맹(ITTF)은 탁구공의 지름과 무게를 늘린 일명 ‘라지볼’을 도입했다. 그러면서 점수제를 21점에서 11점제로 바꾸었다. 라지볼(지름 40mm)을 사용하면 기존 공(38mm)을 쓸 때보다 랠리가 길어져 경기 시간이 늘어나고, 경기의 박진감이 떨어진다는 게 당시 국제탁구연맹의 11점제 채택 이유였다.
하지만 이 같은 국제탁구연맹의 결정을 두고 ‘중국 견제’라는 의견이 나왔다. 중국이 전 세계 탁구계를 휘어잡다 보니 파워에서 앞서는 유럽 선수들에게 유리하도록 규정을 개정했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14년 뒤 국제탁구연맹은 100년간 사용해 오던 기존 셀룰로이드 공 대신 플라스틱 공 사용을 결정했다. 셀룰로이드가 발화성이 있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였다. 여기서도 중국 견제 이야기가 나온다. 11점제에서도 중국 탁구의 독주가 계속되자 탁구공의 재질을 바꾸었다는 것. 플라스틱 공이 회전이 더 적어 기술 위주의 동아시아 선수에게 불리할 거란 전망에도 중국 탁구는 현재까지 세계 최강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요즘 ‘배드민턴 15점제’ 도입이 논란이다. 세계배드민턴연맹(BWF)이 기존 1세트 21점제를 15점제로 줄이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배드민턴연맹은 “15점제 도입은 현대 관전 트렌드에 발맞춰 배드민턴을 역동적이고 매력적인 종목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시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논의가 사실상 배드민턴의 ‘절대 강자’ 안세영의 독주를 막기 위한 견제책이 아니냐는 시선이 있다. 안세영은 올 시즌 무려 11개 대회(여자 단식)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여자 선수로는 최다승, 남자 선수까지 확대하면 최다승 타이를 기록할 정도로 독보적인 존재가 됐다. 특히 안세영은 강철 체력을 바탕으로 경기 후반에 전세를 뒤집는데 탁월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 15득점제가 안세영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정작 안세영은 이러한 제도 개편에 대해 담담하다. 안세영은 인터뷰에서 “당연히 초반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겠지만, 경기를 치르다 보면 적응하고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어떠한 경기 규칙 개정에서도 세계 최강을 지키는 한국 양궁과 중국 탁구에서 보듯 세계 정상의 자리는 경기 규칙으로는 절대 바뀌지 않는다. 경기 규칙 개정은 견제가 아닌 팬과 선수 보호가 최우선 고려돼야 한다.
김진성 선임기자 paperk@busan.com
김진성 기자 paper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