촘촘한 휴식 공간 → 주변 상가 노출 → 상권 호황… 경제 지도 바꾼 벤치 [벤치가 바꾼 세계 도시 풍경]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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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연트럴파크 성공 비결
보행로·상권은 유기적 결합

서울 연남동 ‘연트럴파크’(경의선 숲길)의 모습. 보행로 양옆으로 자연스럽게 벤치 등 쉼터가 배치되어 있다. 서울 연남동 ‘연트럴파크’(경의선 숲길)의 모습. 보행로 양옆으로 자연스럽게 벤치 등 쉼터가 배치되어 있다.

대한민국 보행 도시의 패러다임을 바꾼 곳을 꼽으라면 단연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경의선 숲길’, 이른바 ‘연트럴파크’가 꼽힌다. 연트럴파크는 단순한 공원을 넘어 벤치가 어떻게 도시의 경제 지도를 바꿀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살아있는 교과서다. 지상으로 기차가 달리던 소음과 분진의 공간이었던 이곳은 철로 지하화와 함께 서울에서 가장 활발한 ‘체류형 보행로’로 탈바꿈 했다.

■‘공공 벤치’가 만든 빽빽한 휴식 밀도

연트럴파크의 성공 비결은 부산의 해안 산책로나 북항 친수공원과는 확연히 다른 ‘휴식 인프라’의 밀도에 있다. 이곳에선 보행로를 따라 빽빽한 공공 벤치부터 낮은 화단 턱, 나무 평상, 잔디밭까지 모두 ‘앉을 자리’가 되고 있었다. 〈부산일보〉 취재진이 현장을 찾은 이달 주말 아침, 연트럴파크에는 산책과 조깅하는 사람들이 언제든 멈춰 쉬고 있었다. 특히 연남동 구간의 성공은 철저히 ‘앉을 자리’의 확보에 있다는 게 눈에 띄었다.

이날 벤치에 앉아 쉬고 있던 한 노부부는 매일 아침 홍제천부터 시작해 연트럴파크까지 산책을 나온다고 말했다. 이홍자(76) 씨는 “걸으면 꽤 긴 거리인데 덜컥 나올 수 있는 것은 걷다가 앉아서 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맞은편에서 반려견과 함께 나온 한 외국인은 벤치에 앉아 반려견에게 물을 먹이고 있었다.

빽빽한 공공 벤치가 갖춰진 보행 환경 안에서 보행로는 남녀노소 경계없이 시민에게 열린 공간으로 재탄생되는 것이 보였다. 기존 공원들이 보행로를 따라 띄엄띄엄 등받이 의자를 놓았다면, 연트럴파크는 길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벤치로 설계했다. 이는 좁고 가파른 길이나 광활하지만 텅 빈 공간이 많은 부산의 보행 환경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제 없는 휴식’ 골목 상권의 부활

특히 주목할 점은 보행로와 상업 공간의 유기적 결합이다. 연트럴파크의 벤치에 앉으면 주변 골목의 작은 카페와 상점들이 자연스럽게 시야에 들어온다. 이러한 ‘시각적 노출’은 벤치에 앉아 쉬던 시민들을 자연스럽게 주변 상점으로 유도한다. 벤치나 휴식 공간이 잘 갖춰진 거리에서는 카페에 들어가지 않아도 공원의 벤치나 평상에 앉아 몇 시간이고 도시의 여유를 즐길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이 ‘무료 공간’은 주변 상권을 고사시키기는커녕 호황으로 이어진다.

최근 몇 년간 연남동은 개성 있는 카페, 소규모 식당, 공방들이 촘촘히 들어서며 도심 골목 상권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골목상권 활성화를 위해 지자체가 보행 환경 개선에 초점을 맞춘 것도 한몫을 했다. 마포구가 주도한 특화 거리 사업 ‘연남 끼리끼리길’을 통해 연트럴파크 일대는 철저히 방문객 중심의 보행자 거리로 개선되었다. 보행에 불편을 주던 주차장 일부를 없애고, 보도를 2배 이상 넓히는 등 ‘차보다 사람’이 먼저인 환경을 조성한 것이다. 이에 따라 혈관처럼 뻗어 나간 좁은 골목마다 새로운 풍경이 생겨났고, 소규모 식당과 공방들이 촘촘히 들어섰다. 구경할 것이 많은 특화 거리로 성장하면서 일대는 서울 도심 속 대표 핫플레이스로 거듭났다.

연트럴파크 사례는 부산이라는 대표 관광지를 완성할 마지막 퍼즐이 무엇인지 정확히 가리키고 있다. 시민들이 비용 지불 없이도 편안하게 풍경을 점유할 수 있는 ‘촘촘한 휴식 인프라’는 상권 활성화와 도시 활기로 돌아왔다. 앉는 자리가 곧 상권이 되고, 다양한 휴식 형태로 도시 생명력을 불어넣은 연트럴파크의 공식은 부산 보행 정책도 참고할 설계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글·사진=변은샘 기자

※ 이 기사는 부산광역시 지역신문발전지원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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