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예술 작품에 기대어 ‘휴식’… ‘명품’ 도시 개발의 교과서 [벤치가 바꾼 세계 도시 풍경]

이은철 기자 eunche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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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 휴식에 작품을 더한 거리

노후화 심각했던 롯폰기 힐스
모리빌딩 예술적 재개발 성공
매년 4000만 명 넘게 찾아와
“예술 작품 벤치 더욱 감명 깊어”
“앉아 쉴 곳 많은 도심 더 즐거워”

롯폰기 힐스 초입에 있는 우치다 시게루 작가의 ‘I can’t give you anything but love’(내가 줄 수 있는 건 사랑밖에 없어요)에 한 시민이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다. 롯폰기 힐스 초입에 있는 우치다 시게루 작가의 ‘I can’t give you anything but love’(내가 줄 수 있는 건 사랑밖에 없어요)에 한 시민이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다.

하나의 문화 시설이나 예술 프로젝트가 도시의 경제, 관광, 창업 환경, 이미지 개선 등 다층적 효과를 만들어낸다. 도쿄 롯폰기 힐스는 일본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복합개발 프로젝트 성공 모델이다. 롯폰기 힐스 일대는 1990년대까지 30년 이상 된 저층 목조주택이 전체의 약 60%를 차지할 정도로 노후화가 심각했다. 모리빌딩의 예술적인 재개발을 통해 상업, 주거가 어우러진 복합문화지구로 다시 태어났다. 특히 중간중간 눈길을 끄는 예술과 휴식이 합쳐진 ‘스트리트 퍼니처’(도심 조형물)는 전 세계적 새로운 도심 개발의 교과서로 자리 잡은 상태다.

■낮-직장인과 주민들의 휴식처

도쿄 미나토구의 낙후 지역이었던 이 곳은 폭이 4m도 안 되는 작은 도로를 두고 무계획적으로 얽힌 목조 건물과 연립주택 단지가 뒤엉켜 있었다. 그러나 2003년 재개발 이후 이제는 해마다 40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 것은 물론 평일에는 직장인들도 쏟아져 휴식을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부산일보〉가 찾은 12월의 롯폰기 힐스의 주요 거리인 케야키자카길의 보도에는 디자이너 13명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감각적 공간’이 펼쳐진다.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작품은 우치다 시게루 작가가 재즈곡 제목에서 따온 ‘I can’t give you anything but love’(내가 줄 수 있는 건 사랑밖에 없어요)다. 새빨간색으로 칠해진 유려한 곡선의 벤치는 작품으로도 손색이 없다. 제법 찬바람이 부는 날씨에도 주민들이 벤치에 몸을 기댄 채 따스한 햇볕을 받으며 여유로운 하루를 즐기는 모습은 이 곳에서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었다.

도쿄의 심장부격인 이곳엔 점심 때면 거리에 쏟아진 직장인들에게는 오전 업무로 인해 지친 심신을 위로받는 장소가 된다. 아내와의 점심 약속을 기다리고 있다는 40대 모리타 씨는 일본 거장 구라마타 시로와 이세이 미야케로부터 디자인을 배운 요시오카 도쿠진의 작품 ‘Chair disappears in the rain’(빗속에서 사라지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는 취재진에 “사무실이 근처인데 도쿄 도심 한가운데 이렇게 앉아서 쉴 수 있는 곳이 흔치 않다”며 “예술 작품이라고 하니 이용자 입장에서는 더욱 감명 깊게 다가온다”말했다. 모리타 씨가 앉아 있는 요시오카의 작품은 말 그대로 물 속에 유리 파편을 넣으면 그 윤곽이 사라지는 듯한 부드러움을 통해 사용자에게 편안함을 안겨줬다.

이 밖에도 가구 디자인 전문가 론 아라드의 초록 잎이 가득한 ‘ever green’(상록수)과 시각 예술가 장 미셸 오토니엘의 조각 작품 ‘kin no kokoro’(사랑의 마음)이 있는 도심 속 정원은 시멘트로 가득한 삭막한 도시의 오아시스였다.

도심 속 정원으로 자리잡은 일본 도쿄 롯폰기 힐스의 벤치는 낮과 밤에 정다른 매력을 선보이며 이용자들에게 안식처가 되고 있다. 위쪽부터 모리빌딩 앞에 마련된 벤치와 시멘트색 도심 속 공원 풍경. 도심 속 정원으로 자리잡은 일본 도쿄 롯폰기 힐스의 벤치는 낮과 밤에 정다른 매력을 선보이며 이용자들에게 안식처가 되고 있다. 위쪽부터 모리빌딩 앞에 마련된 벤치와 시멘트색 도심 속 공원 풍경.

■밤-화려한 조명에 싸인 관광객 쉼터

저녁 노을이 살짝 내려앉은 뒤에는 ‘문화 도심’을 지향하는 롯폰기 힐스의 진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겨울이면 화려한 조명이 거리를 수놓는데, 일본인뿐 아니라 해외 관광객들 수백 명이 뒤섞여 즐기는 가운데에서도 롯폰기 힐스를 개발한 모리빌딩의 세심한 배려가 느껴진다.

도시의 숲에 뜬 큰 수면에 퍼져가는 ‘물결’을 형상화한 롯폰기 힐스의 중심에 있는 ‘ripples’(잔물결)는 일본 건축가 이토 도요의 대표작이다. 한국의 평상과 닮아있는 철로 제작된 작품이자 벤치는 케야키자카길에서 펼쳐진 화려한 조명 ‘일루미네이션’을 즐기는 이들의 안식처다. 자녀들과 함께 자주 롯폰기 힐스를 종종 찾는다는 요시토 씨는 “아이들과 함께 저녁 시간을 즐기러 나오기도 하지만 평소에 혼자서도 자주 방문한다”며 “수많은 관광객들이 있지만 벤치가 주는 여유로움이 더해지면 머리를 식히는 데 딱이다”고 말했다.

여자친구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틱톡에 올릴 영상을 한참 찍던 사이토 씨는 잠시 ‘Where did this big stone come from? Where does this river flow into? Where am I going to?’(이 돌은 어디에서 왔을까? 강물은 어디까지 흐를까? 나는 어디에 가는 걸까?)에 걸터앉아 웃음을 지어 보였다. ‘어디에서부터 무엇이 시작되었는지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게 한다’는 의미를 가진 작품 위에서 그는 “크리스마스를 기념해 함께 왔다”며 “여자친구가 근처에 살아 자주 오는데 예쁜 거리 풍경은 물론이고 특히나 앉아서 쉴 곳이 많다는 게 도심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많은 감정을 느끼게 한다”고 호평했다.

도쿄(일본)/글·사진=이은철 기자 euncheol@busan.com

※ 이 기사는 부산광역시 지역신문발전지원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이은철 기자 eunche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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